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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Jul 01. 2023

N빵의 룰을 논하다

몇 백 원 푼돈까지 나눠야 하나 싶은 애매한 순간



1,800원의 행방은?


어느 화창한 날 점심이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 중인 오늘의 등장인물 4인은 아직 점심 메뉴를 정하지 못해 느린 발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질러 회전문으로 향했다.

편집/제작 : 그림형제 (일러스트 이미지 from Pixabay)


"뭘 먹지?"


늘 메뉴 고르는 것을 귀찮아하는 K 차장이 먼저 화두를 던졌다. 4명이 모두 회전문을 빠져나와서도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즉석 떡볶이 어떠신가요?"


P 사원이 제안했다. K 차장은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라 정해주기만 하면 아무것이나 먹는 것을 P 사원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K 차장은 옆에 있던 E 차장의 의견을 묻더니 오늘의 메뉴가 즉석 떡볶이로 정해졌음을 공식 선언했다.


즉석 떡볶이 집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여성 직장인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아 앉은 등장인물 4인은 '2인 세트'를 2개 주문하고, 매운맛은 1단계, 김말이와 각종 튀김류가 포함된 '사리세트 A'를 추가했다.


"지난 주말에 나 로또 당첨됐어."

"우와~! 축하드려요. 얼마요?"

"얼마 안돼. 백만 원 정도."

"대박! 팀에 커피라도 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주말에 E 차장이 로또 3등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커피를 좋아하는 S 과장이 부러움 반, 얻어먹겠다는 의지 반 섞어 축하해 주었다.


"사장님, 저희 쿨피스 하나 주세요."


체격이 큰 S 과장은 남들보다 연비가 낮은 신체 환경을 가지고 있다. 즉, 남들보다 많은 양을 먹어야 오후를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당분 섭취도 잊지 않는다. 물론, S 과장은 식당 주인이 가져다준 쿨피스를 컵에 따라 동료들의 앞에 놓아주는 친절함도 발휘한다.


즉석 떡볶이의 대미를 장식할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서야 템페스트처럼 몰아쳤던 식사가 끝이 났다. 식사가 끝난 후에 다음과 같은 견적이 나왔다.

평소에도 더치페이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던 등장인물 4인은 각자 카드를 꺼내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가게로 들어선 손님들로 일순간 카운터 앞이 복잡해졌다. 각자 계산할 몸짓을 보이는 4인을 보고 식당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기서 선택의 순간이다. 1/n로 하면 인당 10,450원이다. 지금 막 새로 들어온 손님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장님에게 각자 10,450원씩 계산해 달라는 건 왠지 민폐일 것 같다. 아무래도 한 사람이 계산하고 일행끼리 정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해결할 문제는 남아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E 차장의 손에는 영수증이 들려 있다.


(위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상의 인물일 뿐, 실제 인물과 관련이 없음을 밝혀둔다.)







N빵에 관하여


먼저 개념과 용어의 정의를 정리해두어야 하겠다. 많이들 혼동하는 개념이 '각출'과 '갹출'이다.

'각출'은 말 그대로 각자 지출하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중국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고 해보자. A는 짜장면, B는 짬뽕을 먹었다. 계산을 할 때 '각출'은 A가 짜장면값을, B가 짬뽕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반면, '갹출'은 의미가 좀 다른데, 여럿이 함께 치킨을 먹은 경우, 치킨 값을 함께 먹은 인원이 나누어 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나누는 방식은 N분의 1이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더치페이 : 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남에게 한 턱 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영국인들에 의해 뜻이 왜곡되어 전해지면서 자신이 먹은 음식값을 자신이 내는 것으로 의미로 오늘날에 쓰이고 있다.

· 와리깡(わりかん) : 분할하여 감당한다는 할감(割勘)의 일본 발음. 더치페이와 같은 의미이다.

· 뿜빠이(ぶんぱい) : 분배(分配)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된 말이다. 분배의 방식은 1/n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N분의 1 : 발생한 비용의 총액을 참여자 인원수로 나누어 분담하는 방식을 말한다.

· N빵 : N분의 1을 속되게 일컫는 말이다.





이렇게 비용 분담의 개념 정의도 알아보았으니, 본격적으로 문제의 1,800원의 행방을 정해보도록 하겠다. 이 문제를 정할 때의 기준은 전적으로 필자의 기준에서 작성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 Disclaimer

1. 본 주제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결론이 다를 수 있다. 이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기술해 본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기술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도해 보기 바란다.

2. 이 글의 내용은 법률적,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았고 정답이 아니다. 또한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웃고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 Set-up

1. 위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친분관계는 고려하지 않는다.

2. 대표로 41,800원을 지불한 E 차장은 구성원들로부터 알아서 정하라는 전결권을 위임받았다.






N빵의 학설


위의 비용 분담의 정의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1,800원의 행방을 정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1/N(또는 N빵)은 아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N빵으로 추진하되 자투리 금액은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으로 하고자 하는 경우 누구에게 자투리 금액을 몰아줄 것이냐를 정하는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 합리적 기준을 논함에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제안자 부담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먹자고 얘기한 사람이 돈을 낸다는 룰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갑자기 회를 먹고 싶다며 만나자고 해왔는데 다 먹고 계산을 내가 했다고 생각해 보자. 특별히 내가 베풀어주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상황의 친구가 아니라면? 그렇다. 한국인이여.


연장자 부담설

우리나라 밥값을 책임지고 있는 연장자 또한 불문율 같은 것이다. 심지어 연배가 위인 선배나 상사를 모시고 식사를 한 후 밥값을 계산하는 것은 결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마저 있다. 마찬가지로 예를 간단히 들어보겠다. 팀장님과 팀원이 단 둘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밥값은 누가 낼까? 역시 그렇다. 한국인이여.


소득 기준설

위의 두 가지 학설은 역사와 전통이 있었다면, 소득 기준설은 소득 양극화 등 최근 우리 사회의 가슴 아픈 일면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많이 버는 사람이 밥값 정도는 내라는 것인데, 굳이 급여계좌를 서로 까보지 않더라도 함께 식사한 일행 중에 누가 봐도 월등하게 소득이 높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밥값의 제왕이 된다는 설이다. 유병재(88년생)와 손흥민(92년생)이 밥을 먹었는데 손흥민이 밥값을 냈다고 가정해보자. 뭐, 그럴 수도 있지.


섭취 기준설

요새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학설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술값이 포함된 모임 식사비용을 분담하여야 하는가는 깻잎 논쟁 이후 인터넷 토론의 장을 달군 화두이다. 아직도 이에 관해서는 맞다 틀리다를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다만, 누가 보아도 섭취량의 차이가 있는데도 무시한다면 맹렬한 논쟁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저하고 명확한 차이가 있다면 차등 부담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개인적 의견이다.


이렇게 알아본 N빵의 학설 중에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용되어야 할 것은 어느 것인가. 어느 한 가지 학설에 의해 정하는 것보다는 우선순위를 정해 순서대로 정하는 방식이 유효할 것 같다.

아래의 디시전트리(decision tree)를 따라 Y냐 N이냐를 선택하다 보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편집/제작 : 그림형제 (일러스트 이미지 from Pixabay)


어떤 학설이 먼저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필자의 주관적 의견이 반영된 것이므로, 동의가 되지 않는 독자들께서는 각자의 방법으로 디시전트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종 단계까지 도달해도 결정이 쉽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다리타기'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다. 손으로 그려서 할 수도 있지만, 카카오톡 '정산하기'를 이용하면 간단하게 랜덤 N빵을 해결할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제작/편집 : 그림형제


※ 카카오페이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지원을 받은 바 없습니다. 설명을 위해 사용하였으며, 가능하다면 금전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건조하고 경직된 사무실 공기에서 잠시 벗어나 세로토닌을 충전하고 허기진 배도 채울 수 있다. 거친 사막을 가로지르던 여행자가 잠시 머물러 목을 축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오아시스처럼 말이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동네 미용실 같은 존재이다. 동료들과 업무 외의 일상적인 소재의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도란도란 모여 자식 자랑이며, 배우자 험담이며 사는 이야기 나누며 가까워지는 동네 미용실처럼 말이다.




'점심으로 먹은 밥값을 나눠내는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것은 귀중한 점심시간의 가치를 훼손하는 기분이다. 어서 해결하고 잠깐이라도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는 것이 좋겠다.' E 차장은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한 E 차장은 결국 1,800원을 자신의 부담으로 돌렸다. 얼마전 당첨금으로 생긴 꽁돈을 생각하면 그깟 1,800원 쯤은 무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역시나 남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일은 한국인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N빵 하니 NRG라는 옛날 아이돌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아재 감성의 한계다.




참고자료

- 브런치 : 생각구토 더치페이

- 브런치 : 다시청년 내 밥값은 내가! 더치페이는 매너

- 브런치 : 우창균 더치페이, 어디까지 해야 되나요?

- 브런치 : 민트초코숲 돈 안 내면 음식 안(못) 먹는 더치페이 논쟁

- Facebook : 카카오페이 주변에 이런 사람 꼭 있다! 복잡한 더치페이, 세상 똑똑하게 받는 법

- MBC뉴스 : iMBC연예 '라스' 곽윤기, 더치페이 필승전략 공개

- 한국리서치 : 여론 속의 여론 [별난리서치] 더치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by 이소연

- 네이버 포스트 : 오늘의 해시태그 같이 시켰으니 안 먹어도 돈은 내야 한다는 남친의 이상한 더치페이 논리

- 네이버 블로그 : 우체국  나의 더치페이 유형은? 우체국 간편결제 어플 포스트페이로 스마트하게 더치하자!

- 네이버 블로그 : 기획재정부 경제e야기 2030세대의 더치페이 문화, '깔끔하게 N빵!'

- 유튜브 : 라이프코드 LIFECODE 안주만 먹었는데 술자리 술값 더치페이 해야할까?

- 나무위키 : 더치페이

- 네이버 지식백과 : 추렴




Main Photo : Polina Tankilevitch from Pexels

Illustration Images : Lustoz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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