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Sep 05. 2019

어른 즈음에

뒤늦게 쓰는 편지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입 속으로 되뇌기만 하던 말도 내뱉고 나면 한층 더 그 힘이 공고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릴 적부터 나는 차마 내뱉지 못하고 뒤로 기꺼이 삼킨 말들이 많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내게는 오직 끈기만이 남았다. 어릴 적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니 아름다운 것이라 했었나. 잘하지는 못했으나 그런 까닭에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똑 부러지는 학문에 뜻을 둔다면, 나도 어쩌면 매사에 논리적이고 그럴듯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의학은 그러한 이유 아래에서라면 어떻게 보아도 더할 나위가 없어 보였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직접 마주한 의학은 수학보다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담보로 한 경제학에 가까웠다.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은 나는 파도를 만들지는 못할지언정 쉬이 휩쓸려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항상 불안하기 마련이었고 불안은 자꾸만 나를 고개 숙이게 했다. 고개는 숙일수록 눈앞의 것들도 어쩐지 멀어져 갔다. 삼킨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똬리를 틀고 조용히 목을 조여왔다. 숨이 자꾸 막히면서도 어리석은 나는 뱉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끈기는, 어느새 얕은 지식과 알량한 신념으로 무장한 고집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아늑하기보다는 어색했다. 공간과 공기는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대로인 것은 사람뿐이었다. 어느 주말 동안 엄마는 집에 없을 예정이라 했다. 금요일이 되기도 전에 눈빛이 닿기만 하면 엄마는 내게 계속해서 주의를 줬다. 밥은 얼려서 냉장고 둘째 칸에 놔뒀고, 반찬은 소고기 먹으면 돼. 볶기만 하면 되거든. 부족하면 저기 안쪽에 더 있으니까 그거 먹어. 괜히 시켜먹지 말고. 알았다고, 대체 몇 번 이야기하는 거냐고 계속 대답하다 어느 순간 웃음이 났다. 어린 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땐 마냥 놀기만 하고 싶었는데 언제 이렇게 돼버렸지.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도 나를 불러 휴대폰에 관한 잡다한 걸 자꾸만 묻고 시켰다. 눈을 곧잘 찡그리며 노트북을 보다가도 안경을 쓰고 벗기를 반복했다. 안경을 새로 맞추는 게 어떻겠냐 물으니 됐다고 하셨다.


작년보다는 덜 덥지 않냐며 친구와 이야기하며 들어온 날, 엄마는 등에 땀이 너무 난다며 더위를 잘 참지 못했다. 자꾸만 짜증이 나고 초저녁만 되면 졸려 밤에 자기가 어렵다 했다. 나는 물었다. 우울하지는 않아요? 당연하지. 얘. 요즘에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디 있니? 몇 가지를 더 묻고 나서 아무래도 갱년기 같으니 가까운 병원을 가서 상담을 받고 호르몬제를 처방받는 게 어떠냐 물었다. 그리곤 반사적으로 이어지는 엄마의 거절.


안타까운 마음에 몇 분 동안 호르몬 요법의 장단점에 대해 장황히 설명했다. 약을 먹으면 생활이 훨씬 수월해질 거라 해도 엄마는 말을 잘 듣지 않는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새 엄마는 울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은 덧셈이 곧이곧대로 먹히는 곳이 아니었다. 어쨌든, 엄마는 이야기를 함께 하며 시간을 같이 보낼 '내'가 필요한 것뿐이었다.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하니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내 불평은 문제가 처음에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던 길이었다. 창밖으로 힘겹게 짐을 지고 가는 할머니들과, 웃으며 점심을 먹으러 가는 회사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눈물이 왈칵 나왔다. 수많은 어머니들, 어머니가 될 사람들과 어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던 사람들. 가슴이 갑자기 울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정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구석이 많아 단순히 호르몬의 변화로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하다. 가끔은 설명할 수 없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선 놀라웠다. 그렇게나 이성의 신봉자였던 내가 스스로 가장 논리적이라 여겼던 학문을 공부하는데 드는 생각이 이것이라는 게.


일전에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그랬다. 재민 씨는 감성적인 것 같아요. 뭐 인스타 피드만 봐도 그렇고요. 말하는 게 뭔가 이과 같지는 않네요. 이성적이려고 하는데 자꾸 나도 모르게 감상적으로 되어서 싫다는 식으로 말하자 그분이 말했다. 그게 왜요?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무섭다. 엄마가 갑자기 어디로 가버릴까. 잘해드릴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렇지 못할까 봐. 요즈음엔 그냥 슬쩍 넘어가려는 말들을 목구멍에서 애써 집어 올리고 있다.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나는 대체 몇 번을 삼켰던 걸까.


이제 더는 삼키지 않을 테다. 그 순간을 참고 그냥 넘기지 않고, 엄마를 꼭 안고 말할 거다. 못난 아들이 이제까지 미안했고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