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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l 09. 2024

제 2화_뭐 이런 게 다 있어?

산은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평탄하지도 않았다. 경사가 높아져 조금 숨이 헐떡일 것 같으면 평지가 나오고 이 정도면 갈만 하겠다 싶으면 또 경사가 지는 곳이 나왔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걸었다. 다행히도 길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뭐 등산로가 없다더니 여긴 사람 다니는 길이고만. 무슨 헛소리는. 그나저나 진짜 지나는 사람 하나 없네.. 그럼 더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겠네.. 뭐... 여기서 가자.."


성준은 근처 적당한 곳을 골랐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약간의 공터가 있고 적당한 나무도 있었다. 뭐. 여기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부러 해가 잘 드는 곳을 골랐다. 평생소원이 햇빛 잘 드는 아파트에서 아내랑 아이랑 함께 가족을 꾸리는 건데 어느 하나 이룬 게 없다. 그래서 햇빛이라도 잘 드는 곳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생각했다. 곧 해가 질 테고, 달빛 아래 운치가 있을 것도 같다. 적당한 높이에 매듭을 묶어 만들어 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맨 정신에는 용기가 안 난다. 그럴까 봐 아까 소주에 육포도 사 오지 않았던가.. 


적당한 곳에 앉아 나무에 기대고는 깡소주를 들이켰다. 소주의 알코올이 목구멍을 할퀴고 지나간다. 금세 입안이 써 육포를 질겅 씹는다. 고기의 육향이 입안에 퍼지며, 또 소주를 부른다. 


"크으~ 이거 맛있네... 뭐.. 이것도 나쁘지 않아.."


세병을 사 온 소주를 두 병까지는 벌컥벌컥 마셨다. 마지막 세병째를 비우면, 자신도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까지 벌컥벌컥 마시던 소주를 마지막 병에는 찔끔찔끔 마셨다. 이미 육포는 다 먹었다. 씁쓸한 입안을 달랠 것이 없지만, 그게 내 인생 같기도 했다. 씁쓸한.... 뒷맛이....


산속의 해는 빨리도 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보름이라 그런지 초저녁부터 달이 밝다. 어둠이 눈에 익자 보름달의 빛도 꽤나 밝게 느껴졌다. 낮과는 또 다른 숲의 모습이 달빛아래 꽤나 운치 있어 보인다. 


"그때도 이랬는데... 독립하고 첫 지하방에서 올려다보던 그 가로등도 이렇게 달빛처럼 운치 있었는데... 그때는 그 달빛마저도 좋았지.. 훗... 세상 어찌 될지 모르고 신나던 시절이었는데... 참..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이게 뭐야... 방향이 잘못된 거야? 뭐 당시에 내가 가진 게 뭐가 있다고 다른 선택이나 눈에 보였나... 그저 앞에 놓인 길로 가는 수밖에 없었는걸... 뭐 가진 게 있나.. 빽이 있나... 능력이 있나... 그렇다고 누가 도와 주길하나... 참 세상 독고다이다... 뭐 이쯤에서 시마이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에라 그래 잘 살았다 치자... 담엔 부잣집에서 좀 태어나라... 어이구... 내가 지은 죄가 있는데 인간으로 태어날라고? 나도 참 욕심도 많다.... 에라 모르겄다."


성준은 남은 소주를 꿀꺽꿀꺽 들이키고는 하늘에 뜬 달을 바라봤다. 이제는 제법 높이 떠 초저녁보다 더 환한 한 밤중이다. 나의 밤도 이렇게 밝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마무리를 져야 하는데 취기도 오르고, 잠도 온다.. 누가 재촉하지도 않는데 아무렴 어떠냐... 한 숨자고 가자... 갈길도 멀 텐데...


"어라... 이놈 봐라... 세상모르고 자네..? 이놈아 여가 어디라고 죽을 자리로 찾아와 여기가 어딘 줄 도 모르고... 이놈의 자슥 다리 몽뎅이를 똑 똥가뿌까 보다. 팔자 좋은 놈일세.. 김 씨 거기 좀 잘 잡아봐.. 그래 그렇게... 어디 보자 대충 묶었고... 그냥 둘까? 아님 델고 갈까? "

"이래 봬도, 잠든 사람이랑 기절한 사람은 더 무거워... 우리 둘이서는 못 들어 그냥 이대로 두고 낼 아침에 와서 잠 깨면 지발로 걸으라 하자고. 난 이제 힘도 없어... 못해 못해.."

"그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도 어데서 한 잠자고 올까 봐"

"저짝에 집 한 채 있어.. 예전에 황 씨가 쓰던 거... 아직도 남아 있기는 하네... 거서 오늘 묵자고..."

"황 씨라... 얼마나 지났나? 서너 달 됐나?"

"뭐 그게 중한가... 이미 갔다는 게 중하지 뭐... 아무렴 어때 어제고, 한 달이고, 다 매한가지지 뭐"

"그려... 지나가면 다 마찬가지야... 그래... 으챠... 가보자고..."


눈앞이 빠알갛도록 햇살이 내리쬔다. 감은 눈에서도 태양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한 낮이다. 푹 자고 일어난 성준은 크게 기지개를 켜려다 몸이 굳은 것을 알아챘다. 


"어! 뭐야 이거 시발.. 뭐야 이거"


어제 다른 용도로 쓰려했던 로프가 어느새 성준의 몸을 뱀처럼 또아리 틀어 묶여 있었고, 성준은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잠은 푹 잔 것 같은 개운함도 들었다. 


"햐... 이거 웃기네... 뭐야 이거?"

 예전 같으면 놀라고, 불안하고, 당황했겠지만, 독한 마음을 먹은 후라 그런지 무슨 일이 생겨도 그저 놀랍고, 재미날 따름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일이 다 흥미로웠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산 중에서 자신을 꽁꽁 묶어대는 사람이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묶어만 놓은 것 보면 자신을 해할 목적은 아닌 듯하다. 그럼 벌써 세상 하직하고 말았을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성준은 이 상황이 재미있어졌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무언가 원하는 게 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자신의 장기쯤 떼어가는 것일 텐데.. 좀 아프긴 하겠지만, 죽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 죽는 게 나으려나? 


"어이~ 거기 누구야 나 좀 풀어봐~ 어이~"


"젊은 놈이라 그런지 잠도 잘 자는구먼... 난 집이 아니면 등이 배겨 통 못 자겠던데 말여. 이놈아 일찍 좀 일어나지 그랬냐."

"당신들 누구야? 이거 풀어봐.. 내가 들어줄 테니.. 어차피 죽일 거였음 진작 죽였을 테고..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나 그냥 여기 죽으러 온 거니까.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풍장 치를 테니 이거 좀 풀어봐. 엉? 뭐? 내게 원하는 게 장기야? 콩팥? 눈? 심장? 그럼 풀어주고 기다렸다가 내 숨이 끊어지면 그때 가져가. 줄게.. 그러니까. 이거 풀고 말하자고.. 응? 팔다리 쥐 나잖아!"

"얼씨구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잘한다. 잘해.. 이놈아 내가 기껏 그거 떼 가자고 널 묶어놨겠냐? 장기가 필요하면 묶어 놓고 바로 떼어 갔지 이놈아 어디서 유세는 유세야.. 넌 여기가 어딘 줄이나 알고 온 거야? "

"여기? 여기 숲이잖아 조용하고, 쾌적하고, 녹음이 푸르르고 누구 하나 죽어나가도 잘 티도 안나는... 안 그래? 그런 숲 아냐 여기? "

"얼씨구.. 이거 아무런 생각 없는 놈이 들어왔네... 어째 정기사는 이런 놈을 끌어들인겨? 요즘 일이 힘든가? " 

"누구? 택시기사? 그 기사도 한패야? 어째 뭐가 이상하더라니... 니들 뭔 조직이야. 통나무 장사야? 어? 막 사람들 장기 떼어다가 팔아먹고, 그러고.. 막 그래? 니들... 어째 알아봤어 어라 그 기사가 찍어 넣고 이쪽으로 데리고 오는구먼... 아무도 없는 숲에서 깨끗이 수술하고 갔다 버리면... 그래 뭐 감쪽같겠네.. 뭐야 이거 아주 재수 옴 붙었네.."

"김 씨 저 노마 저거 머라고 소설 쓰는겨? "

"몰러... 그냥 더 재울까 대굴빡을 한 대 콱 쳐서?"

"에이 괜히 들고 가기 힘들어... 그래서 어젯밤에 우리도 여기서 잔 거잖어 등배기는 밖에서.."

"그르네.. 어서 아야... 너 나 쫌 보자... 여기는 말여 잠은 숲이여. 잠의 숲...!"

"그니까. 그놈의 잠의 숲이 뭐냐고... 썅.!@  어제부터 이놈이나 저놈이나 잠의 숲, 잠의 숲... 그래서 나도 늘어지게 자빠져 자려고 이리 온 거라고.. 그니까 나 좀 내버려 두지? 곱게 뒤지고 동물들에게 인신공양하려는데 좀 내버려 두어 봐... 사람하나 살리는 셈... 아니 사람하나 곱게 보내는 셈 치고... 나 거둬줄 필요도 없어.. 정말..."


"이놈 이거 아무것도 모르네? 뭐 이런 게 다 있지? 여기는 니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냐. 여기는 죽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고. 여기서 감히 죽을 수가 없지... 죽고 싶어도 여기서는 못 죽어.. 허락받기 전에는.. "

"뭔 소리야 내가 뒤지겠다는데.. 누가 그걸 말려... 참 별 그지 같은.."


그때였다. 사내가 갑자기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나이프를 하나 꺼내고는 팔을 죽 그었다. 얼마나 날이 잘 섰는지 금세 팔은 근육이 벌어지고 뼈가 보이고 피가 튀었다. 성준은 기절할 듯 놀랐다. 


"아이 씨발... 뭐야? 왜 그래? 아저씨... 뭐야..!! 어?? 어????"


성준은 사내의 행동에 놀라고, 피에 놀라고.. 곧이어 피가 멎고 근육이 아물고, 남자가 수건으로 스윽 닦아내니 옅은 흉터만 남긴 채 상처는 봉합되어 있었다. 사내는 조금 얼굴을 찡그리긴 했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팔을 툴툴 털고, 피를 닦아 내었다. 


"봤지? 여기가 이래... 여기서는 죽고 싶어도 못 죽어..."

".... 헐.... 나 이미 뒤진 건가? 이거 꿈이야? 뭐야...."

"그니까.... 가자 좀 인나봐...니 발로 걸어보라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사내의 왼쪽에는 아직 핏자국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벌써 상처는 아물었고, 팔은 멀쩡했다. 성준은 앞을 걸으면서 사내의 팔만 보였다. 성준 모르게 무슨 트릭을 쓴 건 아닌가 살펴봤지만.. 아무리 봐도 저 냄새나 그 칼질은 진짜였다. 정말 피가 흘렀다. 죽으려 했는데 자꾸 재미난 일이 생긴다. 이게 무슨 일인지만 알고 죽어야겠다고 성준은 생각했다. 남성들은 앞뒤로 성준을 에워싸고는 걸었다. 손이 뒤로 묶여 강아지가 된 듯했지만,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고, 되도록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머리를 굴렸지만, 성준이 아는 세상의 이치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성준은 포기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생각했다. 


강아지 산책시키듯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쉬다가 하며 길을 걸었다. 성준이 앞장서 길을 헤쳐나가고 싶었지만, 간혹 가다 나오는 갈림길에 포기하고 말았다. 남자들은 이곳을 잘 아는지 주저하지 않고 방향을 택했고, 한 시간을 걸어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국립공원에 있는 산장 같은 집들이 몇  채나 있었다.. 옅은 안개가 낀 마을에 도착하자 남자들은 크게 기지개를 켜며.. 성준의 로프를 풀었다. 


"저기 보이재? 저 오른쪽 두 번째 검은 지붕... 거기가 네 집이여... 가서 쉬어"

"뭔 개소리야.. 저기가 왜? "

"거 가면 먹을 것도 있고, 옷도 있으니까 적당이 요기도 허고, 씻어 쫌.. 냄새나... 한 잠 쉬고... 저녁쯤에 보드라고... 해줄 말도 있으니까... 그럼 이따 보자고... 어이구야 몸이 찌뿌둥하네... 어구구"


남자들은 성준을 풀어주고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마을로 들어서 어느 집들로 각자 들어갔다. 하..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뭔 영문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야 할지 다시 돌아나가야 할지.. 여기가 어딘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단 최악의 상황만 면하게 생각 보기로 했다. 


'어차피 죽으러 온 거. 뭐 더 나빠질 일이 있겠어. 저녁때 보자고? 뭐.. 저 아재 말대로 좀 쉬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나가면 되지 그리 멀리 온 것도 아닌 것 같고, 길도 대충은 알 것 같은데... 지금 나가봐야 갈 데도 없는데 여기는 갑자기 집이 생겼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자'


성준은 사내가 알려준 집으로 주뼛거리며 걸었다. 문은 잠기지 않았고, 집에 들어서니 스위치도 있었다. 달깍 전기도 들어온다. 산골에서 어찌 전기를 끌어왔나 싶게 신기하다. 뭐 아무렴 어때하며 집안을 둘러보니 냉장고에 적절한 음식도 있고, 소파도 있었다. 방에는 싱글 침대도 있고, 옷 장에는 성준의 사이즈 인 옷들이 몇 벌 걸려 있었다. 모두 똑같은 옷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내들이 입은 옷과 같다 여기 무슨 종교단체 같은 건가 보다 하고 성준은 생각했다. 가장 가까워 보이는 답이다. 


아마도 어느 종교 단체의 수련원 같은 곳인 듯하다. 순진한 사람들의 눈먼 돈을 뜯어다 이 깊은 산중에 수련원이라 지어놓고 또 사람들을 끌어들여 돈을 삥 뜯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똑같은 옷에 집이며, 아마도 성준의 추측이 맞을 거 같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팔의 상처는? 미처 성준이 발견하지 못한 것일 뿐 아마 신도들을 속이기 위한 마술 트릭 같은 것이겠지 두고 봐라 내가 무슨 트릭인지 금방 밝혀 낼 테니까. 


성준은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간단히 요기를 하고는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도 나오고 샴푸 비누 다 있다. 면도기도 있을 정도니 뭐. 며칠 살아도 충분하겠다 싶다. 씻은 김에 옷도 갈아입기로 했다. 좀 찜찜하지만 옷장에 걸린 유니폼 같은 활동복을 입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지.. 그래 니들이 원하는 게 뭔지 보자... 어디.."


곧 죽으려던 사람이 갑자기 목표가 생겼다. 어젯밤 보름달처럼 성준의 눈빛에 푸르른 광채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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