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Jul 09. 2024

제3화_넌 아니야?

성준은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주량이라고 해야 기껏 한 병을 마시면 인사 불성이기에 웬만하면 술자리를 잘 가지 않는다. 특히나 형님들과의 술자리는 길고도 험난했다. 술을 부어라 마셔댔고, 술만 마시면 여자를 찾았고 비싼 양주를 우롱차처럼 들이켜는데 아주 이력이 났다. 성준은 어떻게든 술자리에서 버티려 노력했지만, 결국 웨이터의 등에 업혀 나오곤 했고, 등신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그래서 성준은 술을 싫어한다. 


그런 성준이 어제는 세병의 소주를 마셨다. 안주도 없이 깡소주로 세병을 마셨다. 평소대로라면 아직도 자리에서 머리를 붙이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정을 보며 토하거나 앓는 소리를 내면서 시간이 지나기만을 빌고 있어야 할 텐데.. 오늘은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아침부터 한참을 걷고 땀을 흘려서인지. 공기 좋은 곳에서 마시면 술이 취하지 않는다는 형님들의 말이 진짜인 건지. 아니면 이미 나는 죽었고 이곳이 사후 세계라 그런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어찌 되었던 몸이 말짱해지니 정신도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아 작전이라는 것을 세워보기로 했다. 


저녁쯤에 몇몇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창밖으로 둘러본 동네는 조용하기만 하고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간혹 보이는 사람들도 정말 종교 단체의 교인들마냥 차분하게 걷거나 산책하는 정도다 지금까지 열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수가 얼마인지 몰라 섣불리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문은 잠가 두었고,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단 목조 건물이라 불이 나면 다 타 죽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고 여차하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어제 그곳까지 가는 길은 아침에 대충 익혀 두었고, 어제 술을 마시던 그곳에 도착하면 산 입구까지도 멀지 않으니 곧장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어디로 가지? 산을 내려가 봐야 지금 성준이 갈 만한 곳은 딱히 없다. 이미 수중의 돈은 따 떨어졌고, 성준의 조직에서도, 상대 조직에서도 성준을 불을 켜고 찾으려 한다고 하니. 이래 쫓기나 저래 쫓기나 쫓기는 몸은 마찬가지다. 최소한 이곳 사람들은 조직 사람들처럼 무자비하게 신체를 훼손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잡혀도 여기서 잡히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굳이 이곳을 벗어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사람들을 구워 삼고, 호감을 얻어서 이곳에서 필요한 만큼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곳은 전화도, 인터넷도 잘 되지 않을 것 같고, 이 숲 속으로 나를 찾으러 올 단서는 하나도 없는뿐더러, 그렇게까지 내가 미울까 싶기도 했다. 밖에 돌아다니다 눈에 띄면 본보기로 된통 당할 테지만, 여기서 가만히 짱 박혀 있으면 굳이 나를 찾아 이곳까지 조직원을 보내는 수고까지 할까 싶다. 고작 피래미인 나를 찾으려 그렇게 까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 가라면 모를까 그전까지는 좀 여기서 비벼봐야겠다.' 

성준은 결론을 내렸고, 최대한 마을 사람들에게 협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아니라니까요? 아니라고요"

"뭐가 아니야? 그럼 넌 멀쩡하다고? 다? 그럼 진짜 죽으러 여길 온 거라고? "

"예~ 진짜라고요. 전 아픈데도 없고, 죽을 날 받아 둔 것도 아닌데.. 그냥 사는 게 힘들어서 콱 죽으려 이 산에 온 거라고요."

"허... 참... 이런 미친.... 놈... 어이구.... 잘났다..."


나무 그루터기를 의자 삼아 열댓 명의 주민들이 앉았다. 그저 적당한 자리에 앉아 새로운 이방인에게 이것저것 질문해보고자 했다. 으레 그랬듯 얼마나 남았는지.. 어떤 병인지부터 성준에게 물었다. 


"여기 김 씨는 위, 이 씨는 췌장, 박 씨는 뇌, 장 씨는 폐, 남 씨는 난소, 저기 황 씨는 혈액.. 뭐 여기 사람들은 몸에 다 몸 쓸 것들을 하나씩 달고 오는 사람들이라고, 그나저나 자네 이름은 뭔가?"

"저요.. 저는 박성준이라고..."

"응? 박가여? 박 씨라고? "

"... 예... 그게 왜??"

"아니 이게 무슨 일이데.. 성씨가 겹쳤어. 박 씨 자네 오고 여기 박 씨가 온 적 있어?"

"없지... 뭐 나만 없나? 다들 자기 말고 성씨가 겹치는 사람들이 있어? 하나두 없지? 그래서 우리가 서로 성만 부르는 거지. 성만 불러도 충분하니까.? 자네 정말 박 씨가 맞아?"

"예 뭐 주민등록증이라도 보여드려요? "

"아냐... 그냥... 그런 일이 없었다고 이제까지... 건강한 사람이 온 적도 없고, 성이 겹치는 사람이 나타난 적도 없어..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 아니... 내가 더 미치겠다고요. 나는 지금 무슨 말들을 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어디 종교 단체예요? 수련원 같은데? 사회에서 헌금들 좀 하시고 말년을 여기서 보내시는 거예요? 뭐 그런 거 같은데... 다들 옷도 똑같이 입고, 이 산속에 그럴듯하게 집도 있고 전기도 들어오고... 참 팔자들 좋게 사신다. 다들 신선 같은 삶을 사시네요 아주... 편안하시겠어요. 제가 마음에 안 드시면 갈게요. 내가 애당초 여기 오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고, 괜히 자고 있는 사람 꽁꽁 묶어다가 데려와놓고는 이름이 어쩌네.. 저쩌네.. 이런 적이 있네 없네... 알 수 없는 소리들만 해 대시니 나는 답답해 미치겠다고요. 그냥 저 가게 두세요. 알아서 묫자리 찾아 콱 뒤져 불라니까."


"흠.. 흠... 그럼 내가 이곳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함세 그럼... 일단 이곳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야. 대부분 말기들이지 병원에서는 언제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중증이며, 어찌 보면 걸어 다니는 송장에 가깝지. 아마 밖에 있었다면 벌써 장례치르고도 남았을 사람들이지.  그런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곳으로 찾아와. 다들 오는 길은 달라. 누구는 꿈에 이곳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고, 누구는 호스피스라고 듣고 오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네처럼 죽으로 오는 경우도 있어. 모두 같지 않은 방식으로 이곳에 모였어. 아무도 이유를 몰라. 암튼.. 그런데 이곳에 오면 안 아파. 내가 말했지 다들 시한부 인생이라고, 병원에서는 다들 링거에 콧줄에 제대로 움직이도 못했던 몸뚱이들이야. 지금 봐봐 다들 멀쩡해 보이잖아.. 아니 실제로 지금 여기서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다들 병을 모르고 살아. 그래서 여기에 사는 거지.. "


"허참 무슨 꿈같은 소리들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뭔 영화도 아니고,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말이 안 되지.. 근데.. 자네 어제 내 팔 봤지? 스스로 지혈도 되고 피도 멎고 곧 아무는 거... 여기가 그래. 왜인지는 아무도 몰라. 게다가 아팠던 사람들이 안 아프니까. 그냥 그게 고마운 거야. 그래서 그냥 다들 살아."


"그럼 좋으신 거네.. 다들 안 아프고 사시면 근데 저한테는 왜들 그러셔요. 그냥 두셔도 되지. 왜 굳이 사람을 여기까지 끌고 오셨냐고요.."


"자네가 올 때 택시기사가 알려줬어. 누가 올라간다고. 우린 그래서 마중 나간 거야. 그냥 그뿐이라고, 택시기사가  무얼 주거나 한 게 있어? "


"뭐.. 자기 명함이라고 연락처를 하나 주긴 했는데.. 그거라도 준거라면야... 어디.. 아! 이거요 "


성준은 택시기사가 전해준 명함을 그들에게 건넸다. 여느 택시기사들의 명함과 다를 바 없는 명함이었다. 그런데 뒤에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메신저일 수도'


급하게 쓴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자네... 자네 이야기를 더 해봐... 여기 어떻게 온 건지..'

성준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지금까지 인생에 대해 말했다. 일단은 최대한 협조하고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목표였기에, 어차피 숨길 것도 없는 인생이기에 그간 살아왔던 삶을 사실들만 추려 말하기 시작했다. 


"뭐... 일단 사고무친 고아원 출신에. 스무 살 넘어 조직에 들어갔죠. 그냥 선배들 따라 이 일 저일 하면서 주먹도 쓰고, 하며 살았습니다. 아직 깜빵에는 안 갔고요. 이번에 조직에서 경쟁 조직 부두목을 교통사고를 내라고 오더가 내려왔죠. 사고 내고 빵에 잠시 갔다 오면 사업체 하나를 맡겨보겠다고. 그게.. 막판에 뭔 생각인지 핸들을 꺾었죠... 참... 나도 이리 맘이 약해요 내가... 하... 그냥 콱 밀어 버렸어야 했는데 내 팔자 내가 꼰거죠..무슨 양심이 남았다고. 암튼 내가 히트맨인걸 들켰으니 경쟁 조직에서는 나를 찾으려 눈에 불을 켜고 있고, 난 그래도 내 조직이 날 보호해 줄거라 생각했는데 조직에서는 뒤통수를 맞았죠.. 뭐? 내가 단독으로 한 범행이라나?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내게 연락 오면 날 처리하고 그렇게 마무리할 거라 하더라고요. 


졸지에 여기서도 저기서도 쫓기다가 서울 터미널에서 경쟁 조직원들을 피해 무작정 버스를 탔더니 여기네? 그러다 어찌 택시를 탔더니 산을 안간다하잖아요. 기사한테 승차거부하냐고 쌍욕을 욕을 멕였더니 그 아저씨가 나를 여기로 델타 주고는 명함 한 장 준 게 다예요. 뭐... 말하고 나도 별거 없긴 한데.. 그게 다라구요.. 내 인생.. 별거 없어요.."


"넌 아니라고? 정말? 그럼 확인 한 번 해보자"


김 씨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지고 있던 나이프로 성준을 찔렀다. 노을만큼이나 진한 피가 튀었다. 


"아니... 썅.... 이거 피할라고 여기까지 숨어들었는데.... 이런 ㅆ....."

이전 02화 제 2화_뭐 이런 게 다 있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