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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l 09. 2024

제 1화_낭떠러지

운이 좋았다. 성준이 먼저 그들을 발견했고, 망설일 틈도 없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달리면 더 눈에 띈다. 되도록 아무렇지 않은 듯 빠르게 걷고는 매표소에서 가장 빠른 버스티켓을 샀다. 행선지 따위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모르고 낯선 곳이라면 더 좋을 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곳을 그들이 어떻게 찾아올까 싶기도 하니까. 


천천히 하지만 민첩하게 버스에 오르고는 의자 깊숙이 몸은 묻는다. 커튼은 치고, 살포시 터미널을 살핀다. 낯익은 사내 몇이 승강장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다. 아마도 나는 찾는 거겠지? 째깍 거리는 초침이 느리게만 느껴져. 버스를 뛰어내려 반대 방향으로 뛰어야 할까 고민할 때쯤에 기사가 하품을 하며 올랐다. 버스는 천천히 미끄러지듯 후진을 하고는 솜씨 좋게도 터미널의 좁을 틈 사이를 헤치며 도로로 나섰다. 성준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깊게 파묻은 의자에 더 깊이 몸을 파고들었다. 


흥건한 손바닥을 펴보려 하는데 잘 안 펴진다. 너무 꽉 쥐고 있던 탓에 쥐가 난듯하다. 성준은 다른 손으로 굳어버린 손을 주무르며 버스의 종착지를 찾고자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바닥에 던져둔 버스표에 적힌 행선지를 발견하고는 집어 들었다. 


"경(境)림시"


어디였더라 경림시가?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여행이라도 다녀볼걸... 아니 공부라도 더 열심히 해 볼 것을 괜히 후회하며 눈을 감았다.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자신은 안전하다. 아마 경림시에서도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핸드폰은 진즉 버렸고, 카드도 쓰지 않는다. 이제껏 현금만 써왔기에 기록도 남지 않는다. 목적지가 연고지도 아니니 나를 알아볼 사람도 없을 것이다. 최소 며칠은 안전할 것이다. 일단 몸을 숨기자. 그리고 천천히 알아보자.. 


형들에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언제쯤 나를 데리러 올 수 있는지도..

그때까지는 잘 숨어 있어야 한다. 묘하다. 혼자 하는 여행은 첨이다. 혼자서는 갈 수가 없었고, 커서는 형제들과 함께만 다녔다. 별로 고민할 것도 없었고, 항상 떠들썩했는데 혼자 여행이라 적막하고 조용하다. 떠들썩하던 그 모습이 그립니다. 괜히 외롭고 두려워 의자에 몸이 찌그러질 것처럼 몸을 더 묻어버렸다. 이제 그는 혼자다. 


해가 지기 전에 탄 차는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터미널에 도착했고, 성준은 그 사이 꿀 같은 단잠에 빠졌다. 며칠 동안 이렇게 푹 잠에 들었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일어난 것도 기사가 도착을 알리며 그를 깨웠기에 잠에서 깨었다. 오랜만에 꿀잠이라 일어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금방 현실로 돌아왔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준은 터미널 근처의 허름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모텔에 들어가기 전에 성준은 편의점에서 소주를 한 병 샀다. 모텔 들어가기 전 소주로 가글을 하고는 자신의 옷에 향수 뿌리듯 뿌리고는 일부러 흐트러진 걸음으로 모텔에 들었다. 


"방... 하나! 줘요.. 딸꾹"


성준의 혀 꼬부라진 소리에 주인은 스윽 눈길을 거두고는 키를 던지듯 카운터에 내려놓는다. 구겨진 지폐를 받고는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다시 티브이에 시선을 돌린다. 성준은 터벅터벅 복도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철컥' 


문은 잠그고는 침대에 몸을 던진다. 몇 시간을 구부려 잠들었던 몸이 그래도 침대라고 으드득 소리를 내며 몸을 푼다. 뻐근함이 풀어지며 긴장도 풀린다. 골아떨어졌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가게는 해장국집 밖에 없었다. 7시의 해장국집은 해장하고 출근하려는 자들과, 해장하고 집으로 가려는 자들로 뒤섞여 있다. 같은 행동을 하지만 그 끝은 각자 다르다. 성준은 출근하는 쪽으로 섞여 바삐도 그릇을 비웠다. 어린 시절 버릇 때문인지 항상 식사 속도가 빠르다. 그렇게 먹다 보니 소화가 안 되는 날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다. 살려면 그렇게 먹어야만 했다. 


피씨방에서 찾은 도시의 모습은 참 별것 없었다. 인구 몇 만의 소도시. 농업이 주업이며, 도시 남쪽으로 꽤 큰 산림이 들어서 있다. 터미널 근처의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변변찮은 거리도 없다. 이런 도시는 숨어 있기에 불편하다. 주민들이 건너 건너 다 알기에 낯선 이들의 등장은 소식이 빠르게 퍼진다. 번화가가 적으니 묶을 곳도, 뻔하다. 내가 사람을 찾는다면 가야 할 곳들의 리스트가 빠르게 정리된다. 성준은 그곳부터 리스트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허... 여긴 아무것도 없어... 젠장"

혼잣말이 솔직하게도 튀어나왔다. 누가 들었을까 주위를 살폈지만 평인 아침의 피씨방에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있는 게 수상할 정도다. 성준은 주변의 적당한 도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규모가 적당히 있어야 숨어 지내기 좋다. 너무 사람이 없는 곳은 오히려 눈에 띈다. 아니면 아예 숲에서 자연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형님 저 성준이에요"

"야! 이 새끼야. 어이구... 몸은 괜찮고? "

"예 형님 전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잘 안되었습니다."

"뭐 됐다. 다 지난 일인데 뭐. 그나저나 다친 데는 없냐? "

"전 괜찮습니다. 근데... 그게... 제가 지금 좀 돈이."

"너 지금 어디에 있던지 꼼짝 말고 숨어 있어라."

"예 형님 안 그래도 한동안 잠수 타려.."

"아니이~~ 그게 아니고.. 너 죽은 듯이 살라고. 기어 나오지 말고!"

"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성준아... 너 잘 들어라... 넌... 밑밥이었다고.. 밑밥.."

"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번 일만 잘하면 저도 이제 제대로 사업하나 맡기신다고.. 큰 형님이.."

"이 새끼야 그냥 넌 버려진 거라고!! 성준아.. 너 다시 올라오지 마. 세상으로 나오지 마. 지금 저쪽에서도 너 잡는다고 눈에 불을 켜고 애들 풀었다. 그리고 큰 형님도 너한테 연락 오면 그냥 그 선에서 정리하라고. 소문 없이 처리하라고 애들한테 오더 내렸다고.! 너 누구한테 잡혀도 니 목숨 아니라고. 성준아 너 어디 있던지 나오지 마라. 나도 그래서 너한테 안 물었다. 너 어디 있는지.. 이게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다. 난 니 전화 안 받은 거야. 제발 나오지 마라.."

"형님... 혀.. 형님..."


전화는 끊겼고, 성준의 머릿속에 끈도 끊어졌다. 

와.... 완전 엿 먹었다. 이래 봐야 다른 도시로 이동해서 숨어 있을 수도 없다. 이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도망 다닐 돈도 없다. 


하...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는데.. 괜히 취해서 긴장을 놓칠까 도망 다니면서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이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마트에 들러 소주 서너 병과 로프하나를 샀다. 그 와중에 육포를 하나를 무심코 넣고는 성준도 본인이 웃긴지 피식 웃었다. 

'죽겠다는 놈이 깡소주는 싫다 이건가? 웃기네 아주'


검은 비닐 봉다리를 가만히 흔들며 마트를 나섰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뭐 그리 신나나 할지도 모르겠다. 


마트를 빠져나오는데 대 여섯 살 꼬맹이가 꺄르르 웃으며 부모를 찾아 뛰어간다. 부모는 너무도 환한 표정으로 아이를 번쩍 안고는 마트의 과일이며, 과자며 한껏 구경을 한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아니 뭐가 그리도 부러운지... 성준은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장면에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마트를 나섰다. 아직 해는 머리 위로 뜨지도 않았다. 


아침에 피씨방에서 본 남쪽의 숲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아니 무작정 걷기 시작했지만, 머지않아 걸어갈 길이가 아님을 알고는 택시를 세웠다. 


"아저씨 남쪽 산에 등산로 입구로 가주세요?"

"남쪽산? 아~ 거는 등산로가 없는데? "

"네? 아니 산이 저렇게  큰데 등산로 하나 없는 게 말이 돼요?"

"아이 그게 아이고... 참... 뭐라 해야 하나... 거기는 오르는 산이 아니여.. 와? 거 갈라고? 아재... 내리소 그만.. 참.. 아침부터 정말... 에이..."

"뭐? 지금.. 승차거부 하는 거야? 이 사람이 지금 누구를 개X으로 보나 이 XXXX가 진짜 XXXX 할라고 XXXX 지금 장난쳐?"

"아... 아이... 그게 아니고... 그니까..."

"그니까 뭐? 가라고!! 확! 눈에 뵈는 것도 없으니 뒤지기 싫으며 가자고."

"알았다.. 간다.. 간다고... 아따 그 젊은 놈이 승질은 참...지랄같네 진짜.. 내가 뭐... 내 생각해서 그러나? 거가 어데라고 거길 올라간다는 건지 참... 마.. 하긴 거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어디 인생 종 치는 거 같은데... 그랴 자리도 잘 골랐다 허... 참... 에이"

"뭔 말이 그리도 많아.. 진짜.. 거기가 어디길래 지랄도 지랄이야 진짜.."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간다니까.. 내가 알리주께... 거는 잠의 숲이다. 잠의 숲..."

"뭔 소리야? 잠의 숲이 뭔데? 허이고... 팔자 좋은 숲인가 보네... 퍼질러 잠이나 자고 잘 됐네 가자고 거기로... 퍼질러 잠이나 푹 자면 되겠네..."

"하이 고마... 그래요.. 그러소... 거서 푸욱 주무시면 되겄소...그럼 갑니다. " 어디 사투린지도 모를 사투리를 마구 섞어 쓰는 기사가 툴툴거리며 차를 출발했다.


택시기사는 꼬불 꼬불 국도를 한참을 지나 어느 산간 도로 중간에 차를 세웠다. 이런 곳에 차를 왜 세우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도로였다. 나아가는 곳도, 지나온 곳도 아무리 봐도 지나는 차 한 대가 없고, 풍경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성준은 이곳을 찾아오라 해도 찾을 자신이 없어 보였다. 정말 배수진을 친 기분이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어 보였다. 


"아재! 산은 어디로 오르는 건데?"

"아따... 마 성격도 급하긴 저어기 도로 건너서 저기 보이재? 낮은 철제문... 그거 제끼고 가면 오솔길이 보일겨. 그 길로 계속 가면 당신이 찾는 곳이 보일지도 모르지... 뭐.. 뭘 찾는지 나야 모르겠지만서도. 그럼 일 보소"

"얼만데? 요금은? 요금 안 받아가?"

"됐소... 여기 오는 사람들 돈 안 받아.. 노잣돈 받아서 어따 쓸라고.. 에이.. 길이나 잘 찾으소."

"도대체가 뭔 소린지... 암튼 소리친 건 미안해요... 내가 좀 상황이 그렇다 보니.. 욱했어요... 사과하게요.. 미안합니다."

"헐... 그래도 천지 분간은 할 줄은 아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뭐... 그래요.. 사과는 받을게... 어디 보자... 혹시 이거 내 명함인데.. 혹여나 누가 뭘 물어보면 이 사람이 데려다주었다고 하소.. 급한 일 있으면 연락하고.. 싸게 태워주게"

"뭐... 곧 죽을 놈이 무슨... 암튼 잘 가세요... 그럼... 전 갑니다. "

덜렁덜렁 까만 비닐 봉다리를 소풍 가방 삼아 도로를 건넜다. 택시기사의 말대로 낮은 철제 쪽문이 있었다. 오래된 쪽문은 한참 녹슬어 열릴까 싶었다 손을 대기도 싫어 발로 꾸욱 밀었고, 문은 특유의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성준은 문을 따라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거기... 젊은이 하나 올라가... 아직은 봐야겠지만... 거칠기는 한데 경우는 있는 놈이야... 근데 명은 길어 보이는데... 이상해... 혹시 모르니까. 테스트 한 번 해봐 봐... 그래... 그럼 잘 지내고... 애는 잘 지내나? 그래... 다행이야.."


한껏 풀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는 택시기사는 성준이 오른 산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차에서 내려 녹슨 문을 닫았다. 아까보다 더 큰 쇳소리가 산중에 울리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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