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

사춘기 아이와 거리두기

by 성준

아이의 거리두기,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집 안이 조용하다. 거실은 깨끗하고, 식탁 위엔 저녁이 차려져 있다. 아내가 말한다.

"딸 방에 있어. 오늘 하루 어땠는지 한번 물어봐 봐."

문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노크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짧다.

"그냥... 괜찮아."

예전엔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를 먼저 찾아왔다. 친구 얘기, 학교에서 있었던 일, 좋아하는 가수까지 쉴 새 없이 얘기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문이 닫혀 있는 시간이 더 길다. 부를 때도 잘 나오지 않고, 방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서운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혹시 나를 싫어하게 된 걸까?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날부터 아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등굣길에 손을 잡던 아이가 어느새 멀찍이 걸어가고, 친구들 앞에서는 인사도 살짝 피하는 듯하다. 함께 영화를 보던 아이가 자기 방에서 혼자 영상을 본다. 변한 것 같지만, 사실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부모는 아이가 거리를 두는 걸 단절처럼 느낀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예전엔 고민이 생기면 부모에게 먼저 말했지만, 이제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부모가 해주던 선택도 스스로 하려고 한다. 부모를 멀리하려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는 연습을 하는 거다.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부모는 더욱 초조해진다. 내버려 둬야 할지, 먼저 다가가야 할지 고민된다. 과거엔 문을 열고 들어가 “오늘 학교 어땠어?”라고 자연스럽게 물어봤는데, 이제는 문 앞에서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 괜히 물어봤다가 "귀찮아, 그냥 내버려 둬"라는 말을 들으면 또 상처받을까 봐 조심스럽다.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


아이가 멀어진 것 같아 다가가고 싶어진다. 말도 걸어보고, 관심도 더 주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요즘 기분이 왜 그래?" "우리 대화 좀 하자."


그런데 이런 말들이 오히려 아이를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너무 깊이 파고드는 질문이나 감시받는 듯한 느낌을 싫어하는 거다. 아이는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부모가 자꾸 다가가면 그게 부담이 된다.


아이가 친구들과 있을 때 부모가 옆에서 갑자기 말을 걸면 당황하는 것처럼, 아이의 일상에도 부모의 개입이 예상치 못하게 들어오면 답답해질 수 있다. 가끔 아이가 부모의 눈치를 보는 듯한 순간이 있다. 예전에는 내게 기대던 아이가 이제는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잘 지내”라는 짧은 말만 남기는 경우도 많다. 아이는 부모가 걱정하는 걸 알고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세상을 지키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관심은 주되, 간섭하지 않는 것.


아이가 대화를 원할 때만 자연스럽게 응해주기

"오늘 어땠어?" 같은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기

지나치게 사생활을 침해하는 질문은 삼가하기

아이가 혼자 있고 싶어 하면 조용히 기다려주기


대신, 부모가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저녁 차렸어. 같이 먹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너 좋아하는 간식 사왔어. 먹고 싶으면 가져가."

이런 가벼운 말 한마디가 아이가 안심할 수 있는 신호가 된다.


사춘기의 거리두기는 영원한 게 아니다. 아이들은 독립을 연습하는 중일 뿐, 결국 필요할 때 부모를 찾게 된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기다려주면, 부담 없이 다시 다가올 수 있다.


어느 날 밤, 습관처럼 아이 방 앞을 지나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아빠."

나는 멈춰 섰다.

"응?"

"그냥, 잘 자라고."

그 짧은 한마디가, 아이가 멀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줬다.


거리를 둔다고 해서 멀어진 게 아니다.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이제는 아이가 문을 닫을 때도 너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방 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더라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 다시 나올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아이는 결국 다시 부모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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