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창피해’의 진짜 의미
아이가 어릴 땐 그랬다. 유치원 앞에서 나를 보면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친구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안겼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달라졌다. 등굣길에 손을 내밀었는데 슬쩍 뿌리치는 느낌이었다. 친구들 앞에서 나를 못 본 척하기도 했다.
“아빠, 제발 학교 앞에서 기다리지 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 당황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언제부터 이런 거였지?
사춘기가 찾아온 것이다.
아이가 갑자기 부모와 함께 다니는 걸 피할 때, 부모의 첫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나를 부끄러워하는 거야?’, ‘창피하다는 게 말이 돼?’ 하지만 아이에게 그 말은 곧 ‘나는 이제 독립적인 사람이야’라는 선언과 같다. 부모가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면 아이는 더욱 움츠러든다. 그러니, 이 시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지가 중요하다.
부모가 창피한 게 아니라, 독립을 연습하는 중
부모는 보통 아이의 거리두기를 ‘단절’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부모가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는 걸 점점 깨닫는 시기다. 유치원 때는 부모와 한 몸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아니다. 친구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던 부모를 본 아이가 멀리서부터 한숨을 쉰다. 친구들이 뒤에서 지켜보는 걸 신경 쓰면서, 최대한 무심한 척 부모를 지나친다.
“엄마, 왜 또 마중 나왔어. 나 혼자 갈 수 있어.”
이 말을 들었을 때 부모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그래, 이제 컸으니까 너 혼자 오고 싶겠지.” 하고 웃으며 물러서거나,
“엄마가 네 걱정돼서 그러지. 엄마가 창피해?”라며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부모가 후자의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더욱 불편해진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데, 부모가 여전히 자신을 어린애로 여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 아이는 반발한다. 더 멀어지려 한다. 결국 부모가 원하는 결과와는 정반대로 가게 된다.
부모가 흔히 하는 실수 – 아이의 반응에 예민하게 굴기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갑자기 자신을 피하는 게 당황스럽다.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보통 이런 반응이 나온다.
“넌 언제부터 엄마(아빠)를 창피해한 거야?”
“너 요즘 왜 이렇게 차갑니? 부모가 부르면 대답도 안 하고.”
“부모랑 같이 다니는 게 그렇게 싫어?”
이런 말들은 결국 아이가 더 문을 닫게 만든다. 아이의 변화는 부모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춘기란 시기가 왔다’는 신호일 뿐이다. 부모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아이는 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친구들과 있을 때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면 민망해지는 것처럼,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지나치게 앞서면 아이는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건강한 거리 두기를 배우는 과정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아이의 거리 두기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너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가 다가가려 할수록 아이는 더 멀어진다.
오히려 “그래, 네가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좀 거리를 두고 싶을 수도 있겠다”라고 받아들이면 아이가 편해진다.
아이가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신, 부모가 여전히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학교 앞에서 기다릴까?” 대신 “너 학교 끝나고 간식 생각나면 연락해” 정도의 가벼운 접근이 좋다. 아이가 “필요하면 부모에게 말하면 된다”는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관심은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결국, 아이는 부모에게 다시 돌아온다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다. 하지만 부모는 그 거리를 적절히 인정하면서도, 아이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따뜻한 자리를 남겨두어야 한다.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엄마, 내일 학교 끝나고 같이 밥 먹을래?”
그 순간을 맞이하려면, 지금은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부모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중일 뿐이다. 그리고 그 세계가 완성될 때쯤, 부모가 여전히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하면 다시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살짝 거리를 두더라도, 마음만은 그대로 두자. 우리 아이는 결국 부모에게 다시 돌아온다. 우리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