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딸아이가 툭 던지듯 말했다.
“아빠, 나도 내 생각이 있어.”
순간 머리가 띵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내 품에서 잠들던 아이였는데. 아침마다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던 그 아이가 맞나 싶었다. 나만 보면 활짝 웃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딱히 크게 반항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서서히 멀어진 느낌. 예전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 하고 부르던 아이가 요즘은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는다. 저녁 먹자고 몇 번을 불러도 “나중에”라고 하며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솔직히, 서운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작고 따뜻한 손을 감싸 쥐며, 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있는 것 같다.
사춘기.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부모들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릴 땐 그렇게 잘 따르던 아이가 갑자기 말도 줄고, 툭하면 짜증을 내고,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다. “아빠가 뭘 알아?”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는 날도 있다. 어느 날은 다정하다가, 다음 날은 차가운 태도를 보인다. 이런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보면, 부모가 하는 말이 늘 “가르치려 드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아이는 단순히 부모와 멀어지려는 게 아니다.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거다.
나는 여전히 이 아이가 어린 시절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이는 점점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내 보호 아래 있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부모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여전히 아이를 “내가 키운 존재”로 바라보는 거다. 물론 사실이지만,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점점 자기 생각을 갖게 되고, 독립적인 사고를 하려 한다. 그런데도 부모는 자꾸 아이를 이끌려 하거나 통제하려 한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 친구랑 약속 있어요.” “무슨 약속인데? 몇 시까지야? 누구랑 가는데?”
이 질문들은 부모 입장에선 당연한 걱정에서 나온 거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같은 대화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오늘 친구랑 어디 가?” “재밌겠다! 맛있는 거 먹고 와.”
부모가 대화의 방식을 조금만 바꿔도 아이는 ‘감시받는 느낌’이 아니라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아이는 더 이상 나만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이의 세상엔 친구도 있고, 자신만의 관심사가 있고,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다.
아이가 말하면 진지하게 들어주기
사소한 결정이라도 아이가 직접 하도록 맡기기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물어보기
“아빠 생각은 이렇지만, 네 생각도 궁금해”라고 말해보기
이런 변화가 쌓이면, 아이도 부모를 ‘권위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느끼게 된다.
부모는 결국 아이를 보호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는 거다.
아이와 거리가 생길까 봐 불안한 마음에 계속 간섭하려 들면, 오히려 관계는 더 멀어진다. 대신, 아이가 원하는 만큼 거리를 두되 필요할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어느 날, 아이가 문득 다가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빠, 나 요즘 좀 힘들어.”
그때 “그래, 네가 힘들다는 거 알아”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이미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춘기가 지나면, 아이들은 결국 부모의 품을 떠난다. 하지만 떠난다고 해서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니다. 건강한 거리 두기를 배운 아이는 결국 부모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자.
오늘 저녁,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네 생각이 궁금해.”
그 한마디가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