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이들 09화

열 명의 마음

by 안녕

(원래 쓰려던 이야기는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잠시, 다른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해마다 5월 15일이 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괜히 들뜨고 기분이 좋았던 건 신규 시절 잠깐이었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과 나를 비교하며 더 많은 이벤트를 받아야 더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적당한 민망함과 부끄러움으로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나를 더욱 쑥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편지’다. 담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억해 주고 때마다 연락해 주는 아이들, 편지를 보내주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내가 그 아이들의 삶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문득 ‘정말 그런 존재였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특별한 철학 없이 교사가 되었고 익히 설명했지만 답답한 학교에서 지내기 싫어 벗어나고 싶어 매일매일 안달이 난 사람이다. 아이들 앞에서 절대 말하지 않지만(아니 아주 가끔 엄청 편안함을 느끼는 아이들 앞에서는 슬쩍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지만) 나는 늘 학교 탈출을 꿈꾼다. 그런 내게 “선생님 덕에 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며 “정말 감사하다.”라고 인사를 보내오는 아이들의 편지는... 정말이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오늘 풀어낼 이야기는 스승의 날 즈음에 내게 마음을 전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짧고 굵게 전하는 약간은 오글거리지만 감동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1. 쪽지를 접지 못해 꼬질꼬질해진 편지 한 통

며칠 전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꼬깃꼬깃 접혀 있는 편지를 쑥스럽게 건넨 녀석을 뒤로하고 바삐 일을 마무리한 후에 읽어 보았다.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녀석의 편지인데 매끄러운 글씨체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이 보였다. 종종 쪽지를 건네는 녀석이라 어떤 내용인가 궁금해 보니, 선생님 덕분에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 굉장히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정성스럽게도 적어 주었다.



녀석을 만난 것이 2023년. 2년 동안 나의 모습을 가만히 돌아본다. 열심히 가르친다고 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나를 좋게 봐주고 내게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담임으로서 만난 것도 아니요, 내가 수업을 특출 나게 잘했던 것도 아닌데 어떤 부분에서 그런 마음을 느꼈을까? 책을 추천해 주던 마음? 편지를 적어주던 마음? 녀석과의 추억을 글로 적은 마음?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지만, 아마도 녀석은 “글쎄요. 어느 것 하나라고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라며 능청스러운 답을 내놓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나도 “도대체 왜?”라며 의문을 품지 않고 그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 보려고 한다. 조만간 답장을 써 주마 약속을 했으니 그때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풀어 보내볼 생각이다. 그때까지 녀석도 나도 한 뼘씩 성장해 있기를.



#2. 선생님 덕분에 국어교육과가 목표가 되었어요!

그 다음날 저녁. 아주 반가운 녀석에게 카톡이 한 통 도착했다. 2021년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가르쳤던 아이인데 벌써 고3이 되었단다. 그때 중2였던 녀석이 벌써 고3이라는 이야기에 새삼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메시지를 읽는데 말미에 또 한 번 나를 눈물짓게 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2021년에 선생님과 함께 국어 수업을 들었던 유 00입니다. (중략) 선생님과의 국어 수업 덕분에 저는 국어교육과를 희망하고 있어요!



내 덕에 선생님이 되고 싶다니. 내 수업을 듣고 나서 국어교육과를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니. 엄청난 찬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2021년은 어린 딸을 기르면서 왕복 다섯 시간이나 되는 먼 거리를 다녔던 시기다. 복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수업 준비는 허술했었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에 2주에 한 번씩만 오프라인으로 만나던 아이들이라 나를 기억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그때 가르친 아이 중 9반이었던 아이. 국카스텐을 좋아했던 아이가 나를 기억해 주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고1, 고2, 고3이 되어서도 나를 잊지 않고. 심지어 내 덕분에 교사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면서. 메시지에 답을 하는데도 부끄러움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그 아이들 앞에서 과연 모범이 될 만큼의 수업을 했던가? 지금 다시 그때의 학습지를 보면 부족하기 짝이 없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런 마음을 느낀 것일까?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돈다. 고맙다며, 선생님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었다는 것 자체에 너무나 큰 감동을 느낀다는 내용의 긴 답을 마치고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3.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나는 알지!)

또 한 녀석은 내가 정말 각별히 아끼는 녀석인데 그 녀석도 내게 손수 그린 그림과 함께 편지를 주었다.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해서 국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중3이 되어 다시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중1 때에도 나에게 자주 편지를 주던 녀석인데 변하지 않는 마음이 새삼 고맙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제 일을 성실히 하는 녀석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 글로 풀어낼 예정이다.




#4.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사이, 나의 첫 번째 제자.

첫 제자 중에서도 아직까지 연락을 주는 아이가 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녀석의 메시지는 언제나 나를 웃음 짓게 만든다. 스물일곱, 아니 여덟이 되어도 잊지 못할 선생님이라며 건네는 낯간지러운 메시지는, 아, 내가 아직은 교사로서 잘 지내고 있구나, 하며 안심하게 만든다. 그래도 나, 13년 동안 변하지 않았구나. 그래도 한 결같이 그 자리에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구나, 하고.



#5. 체스는 무조건 네가 이기는 걸로.

아! 주영이를 빼놓을 수 없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21년도에 가르친 아이. 내 책에 <체크 메이트> 부분에 실린 아이이다. 지금은 고3이고 자사고에 입학하여 체스왕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워낙 성실하고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라 고등학교 가서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멋지게 잘 살고 있다. 꼭 한 번씩 선물도 보내고(선물은 거절!) 카톡도 보내는 녀석인데 4년 동안 보질 못해 궁금하다. 어떻게 성장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만나면 체스 한 판을 꼭 두고 싶은데 무조건 질 것 같아서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다. 수능이 끝나면 한 번 보자 했는데, 약속이 잡히면 지금 제자들 중에 체스를 잘 두는 규영이와 진호에게 특훈을 받아 볼까 한다.



#6. 욕망을 가득 담아

작년에 가르쳤던 시후는 똘똘하고 영민한 아이다. 가르칠 때에는 어쩐지 어려운 마음이 들어(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조금씩 어렵다. 왜인지는 모르겠고^^;) 다가가기가 힘들었는데 학년이 바뀌고 수업에서 만나질 않으니 오히려 더 편하게 장난도 치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커피를 좋아하시냐고 물어서 안 좋아한다고 농담을 건넸는데 책상 위에 레쓰비 하나를 놓고 사라져 버렸다. 덤으로 편지 한 통까지! 국어 100점이 아니라 죄송하다면서 쓴 편지에는 서툴지만 따뜻한 마음이 묻어난다. 역시나 담임교사가 아닌, 그저 학년부장이었던 나를 소중한 존재로 기억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7. 간식을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재현이는 작년 국어 부장이었다. 순박한 눈망울에 성실한 녀석이어서 많이 애정했다. 다른 국어 부장이 매번 제 일을 까먹고 수업 준비를 돕지 않을 때에도 재현이는 놓치지 않고 늘 나를 찾아다니며 “오늘 수업은 뭘 해요?”라고 물어 주었다. 마침 올해에 동아리에서 만나게 되어 함께 활동을 했었는데 함께 했던 시간들이 고마웠나 보다. 길지 않은 문장 속에 담긴 마음에 살포시 웃음이 났다. 복도에서 만난 녀석에게 ‘고마워! 편지 잘 받았어!’라며 알은체를 하니 쑥스러워한다. 중3이 되면 또다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따뜻한 녀석이다.



#8. 영원한 나의 윤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잊지 않고 찾아 주었다. 편지와 함께 가져다준 쿠키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윤지는 할 말이 너무 많아 여기에 다 적을 수 없다. 잘 지내고 있고 잘 적응하고 있고, 제 성격 숨기지 않고 이것저것 하며 지내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 꼭 붙잡고 말해주었다.


“윤지야. 네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너는 너 자체로 소중하니까.”


다 안다고 말하는 그 눈빛을 보니 이제 짜식, 다 컸구나 싶다. 22년에 1학년 2반 담임할 때에 함께 상담하며 눈물짓던 그 시절이 이제는 다 흘러갔나 싶다. 여름방학 때, 날 잡고 만나면 윤지, 은수, 재인이랑 같이 밥 먹자고 약속을 잡고 헤어졌다. 곧 7월이니 한 번 더 만날 수 있음에 행복하다.



#9.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줄 걸

세아는 나에게 잊지 못할 아이다. 오랜만에 담임을 하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을 준 아이. 내가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더 품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일로 마음의 상처가 많았을 녀석을 잘 품어주지 못한 것 같은 생각에 늘 미안했는데 졸업하고 씩씩하게 찾아와 내게 편지와 비타 500을 건네고 간다. 중1 때 담임 선생님을 기억하고 챙겨주다니. 세아의 삶에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 것 같아 기쁘다. 조만간 글로 풀어내고 싶다.



#10. 조용하지만 든든했던 너에게

유빈이는 국어 부장이었다. 말도 많고 시끄러웠던 1학년 3반의 국어 부장인 유빈이는 2학년에 올라가서도 늘 변함없이 인사를 건네곤 했다. 듣자 하니 2학년 때에도 성실하게 활동해 선생님들께 신망이 두터운 것 같았다. 1학년 때에도 그랬다. 시끄럽고 정신없던 3반에서 차분하게 제 일을 하던 녀석이 떠오른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내려간 마음이 고맙다.






가끔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을 나올 때 ‘내가 도대체 오늘 뭘 가르치고 나온 걸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이미 학원에서 다 배워온 아이들은 내 수업을 듣지 않는 것 같고, 진도가 빠듯해 자습서 그대로 가르쳐야만 하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낄 때 더욱 그러했다. (최근 4월에 부쩍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언젠가 선생님이란 직업은 AI로 대체되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그때 내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끝을 맺곤 했다. 한 없이 파기 시작한 땅굴이 멈추지 않아 최근에 아주 조금 자주 우울했던 것도 같다.



사명감 없이 시작한 일이라는 부끄러움도 조금은 있었다. 나는 사범대 출신이 아니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고, 나는 국어교육의 전문가(?)는 아닌 것도 같아서. 게다가 올해는 일이 정말 미친 듯이 많아서 조금은 더 불행하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기도 했고. 담임이 아니니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어디엔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때, 그럴 때면 내가 학교에서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한 적이 왕왕 있었다.



우울함과 부정적인 기운의 끝자락에서 일으켜주는 것은 결국 아이들. 10명의 마음은 시시각각 여러 가지 형태로 다가와 일으켜 세워 주고 있다. 글로 정리된 마음이든, 복도에서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00 선생님~~~~”하며 손짓하는 마음이든, 부끄럽고 쑥스러워 선물을 놓고 가는 마음이든. 어떤 모습으로든 나에게 다가와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 선생님. 쌤은 아직 학교에 계셔도 돼요.

- 쌤 덕분에 저는, 살아갈 힘을 얻어요.

- 쌤. 정말 감사해요.



라는 그 마음이 모여 나를 다잡는다. 잘 가르치지 못해도, 매일같이 실수를 반복하고 때로는 어리바리하더라도, 그래도 나의 말 한마디가, 나의 행동 하나가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까지는 교사로 살아갈 이유가 있다.






이것은 에필로그.



편지를 보내준 10명에게 전하는 한 마디.



- 내가 만난 너희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 중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았을 때, 나와 함께 했던 시절이 삶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였으면 좋겠어. 분명, 꼭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너희들 덕에 교사로서, 선생님으로서 존재할 수 있듯이.






덧 붙이는 이야기 하나 더.



도대체 나란 사람은 오글거림과 진지함을 조금 덜어낼 수 없나?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담백하게 쓰려고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이 글을 보고 있을 나의 소중한 제자들이, 이 글을 보고 오늘 하루가 더욱 행복해지고 평온해지며 즐거울 수 있다면, 언제고 오글거리는 말을 적어줄 마음이 있다. 원래, 마음을 전달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그리하여 스승의 날 특별 편으로 작성한 길고 긴 이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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