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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Nov 01. 2019

잠깐, 담배 한 대만 피울게요

(연애실패소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7



그는 또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유진'마저도 밀어내고 너를 만났는데. 나는 그에게 그저 순진한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그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그의 말이 떠올랐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금방 또 다른 여자 사귄다고 하면, 아무리 친구라도 '쓰레기'라고 생각할까 봐..."


너도 니가 쓰레기란 걸 알긴 알았구나.


그런데, 본인 스스로 쓰레기 같다고 한 이야기의 전제는 내가 아니라 전 여친이라던 바로 '그녀'였다. 




그의 얼굴과 이름, 사는 곳 이외에는 모두가 거짓이었다.


"아직 잘 만나지. 티격태격해도. 김종 그 새끼가 바람기가 있어서 여친이랑 벌써 몇 번 헤어졌다 만나긴 했어도. 얼마 전에 무릎 꿇고 싹싹 빌고 나서 요샌 좀 잠잠한 거 같던데? 집에 인사도 시켰다고 들었고. 날짜 잡을 거 같던데, 조만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진작에 이 언니를 만났어야 했는데! 


그 자식이 이 언니에게도 비밀로 하자고 했다. 역시 '동일한' 이유로. 남친이 다른 사람에게 쓰레기로 보이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놈은 이렇게 반응할 내 마음까지도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 모두가 계획된 거짓말이었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그 둘이 사내커플이라는 사실. 그것도 같은 부서의. 자기의 '진짜 여친'을 매일 눈앞에 두고, 나를 만나겠다고 외근을 나오고, 나를 자기 회사 앞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한, 간 큰 파렴치한이었다.


복수를 다짐했다. 




처음에는 PS건설에 다니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지인 가운데 PS계열사에 있어 내부망으로 업무 연락처 정도는 알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그의 '진짜 여친'과 연락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 좀 이상한데?"

"왜?"

"그 여자 이름이 내부망에 뜨긴 하는데 PS건설은 아니야."

"그럴 리가. 분명 사원증을 봤는데?"

"그게... PS본사를 출입하기 위해서 하청업체 직원들에게도 사원증 같은 거를 발급해 주는데 아마 그거인 거 같아."

"하청업체? 그럼 PS건설 소속이 아니라고?"

"응. 쉽게 말하면 전속계약 하청업체야. 업체 이름은 'P•ES'. 읽으니까 똑같네? 뭐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네. 흐."


친구의 실없는 농담에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쪽팔리기도 했고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아 멍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친구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하필 그녀는 연차 휴가 중이었다. 급한 일이어서 그런데 혹시 개인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하필 회사 연락처만 저장해 놨다 하며 업무상 필요를 강조하니 의심 없이 알려주었다. 이제 그녀와 통화만 하면 된다. 




심호흡을 하고 숨을 가다듬었다. 토요일 오전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될 그녀를 떠올리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놈은 처절하게 부숴줘야 한다. 그리고 그녀도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같은 여자로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었다.


"여보세요. 아, 김경남 씨 되시나요?"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혹시 김종 그 개색... 아! 아니, 김종.. 씨 여자 친구분... 맞으시죠?"


그녀는 대답에 뜸을 들였다. 휴일 오전부터 자기 남친을 거론하는 수상한 전화가 걸려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네, 맞는데요. 도대체 누군데 그런 걸 묻는 거예요?"


그녀는 이미 예민해져 있었다.


"제 말이 믿기지 않겠지만... 김종이 저를 속이고 만났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전화로는 어려워요. 여자로서 저를 좀 믿고 만나주실  수 있으세요? 시간 오래 뺏진 않을게요."


'남자 친구의 이름'과 '여자'라는 단서만으로 그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간 남친의 바람 경력으로 이런 일에 잔뼈가 굵어졌을 그녀가 아닌가. 내 말의 의도를 바로 이해했다.


"그런 문제라면... 저는 여자들의 말을 더 신뢰해요."


두 시간 뒤에 영등포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김종보다 3살이 아래니까, 그녀는 나보다 4살 연하다. 젠장! 왜 이렇게 4살 연하들이랑은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거야! 어쨌든 나이 많은 언니로 보이면 안 된다. 외모로 초라해지진 말자.


만나기로 한 카페에 들어서자 그녀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내 전화에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잠깐 담배 한 대만 피울게요."


김종이 말했었다. 자긴 보수적이라 그런지 담배 피우는 여자는 별로라고, 너도 안 피우는 사람이라 좋겠다고, 전 여친들 모두 다행히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할수록 괘씸한 놈이었다. 버젓이 흡연가 여자 친구가 있는 놈이 아예 상반된 이상형의 조건을 말했던 걸 생각하니. 그나저나 나야말로 담배 피우는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다. 꽤나 놀 것 같은 그런 류의. 시작부터 나는 그녀의 기에 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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