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쩐지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집니다. 슬럼프가 온 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전성기가 오지 않았는 걸요. 불경에는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하지만, 어디 글이 혼자서 간다고 될 일인가요. 저만 읽을 일기가 아닌걸요.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도 공감이 가는 글이여야지요.
추구하는 글의 양태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글이 쉽게 써지질 않아요. 단어가 쉽고 매끄럽게 읽히는 글을 좋아해요, 저는.
뭐 특별히 잘 쓴 것 같지는 않아, 하는 감정이 드는 '홑이불처럼 얇은' 글 말이요. 그러면서 원하는 정도의 포근함도 있는 그런 글 말이에요. 남이 써놓았을 땐 '별 대단한 것도 아니네' 싶은데 제가 쓰려고 하면 원하는 단어도 잘 떠오르지 않아요. 뻔한 이야기, 뻔한 단어, 뻔한 문장. 써도 써도 매일 같은 반경만 돌고 있는 기분이에요. 재탕 삼탕 고아내 더 이상 제대로 된 국물조차 우러나지 않는 사골처럼요.
가끔은 글만 쓸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워요. 어디를 가든 글을 쓸만한 카페가 있는지를 우선 살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 마음에 드는 단어를 메모하고 필요할 때 찬찬히 고르고, 글 쓸 시간을 적당히 안배하여 담담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그런 사람이요. 그러면 왠지 글이 늘 것 같기도 해요. 물론 가질 수 없는 여유라서 동경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요. 방학을 했지만, 제 시간은 더 부족해졌어요.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거든요. 아이에게 충실하면 제 시간은 없어지고요, 제게 충실하면 아이에게 죄를 짓게 돼요. 유튜브를 틀어주거나 게임을 하게 해야 엄마를 찾지 않으니까요. 아이가 엄마의 글쓰기에 관대한 시기는 반드시 올 거라는 어느 작가님의 말씀을 위안 삼고 기다려야 하는데, 당장의 현실은 너무 우울해요.
남편의 귀가가 어느 때보다 반갑고, 아이가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눈물 나게 좋아요. 그때야나 비로소 책 몇 줄이라도 읽고, 글 몇 줄이라도 집중해서 쓸 수 있으니까요. 아이는 제 삶의 기쁨인데, 글이 안 써지니 아이를 핑계 삼는 엄마라니 좀 너무하죠?
오늘은 아이의 놀거리를 잔뜩 챙겨 가방에 넣습니다. 몇 천 원 들여서 처음 해보는 공작 도구들도 샀거든요. 그리고 카페로 향하는 거예요. 그곳에서 저는 글을 쓰고, 아이는 공작을 하고 놀고. 그러면 조금이나마 저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브런치는 동료애가 넘치는 플랫폼인 것 같아요.
'라이킷'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동료로서의 화이팅'의 의미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소장을 하고 찾아보려는 의도로 '라이킷'을 이용하는데요.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다른 분들의 '라이킷'도 그 정도의 무게감을 두고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브런치에서 어떤 작가님의 글을 보고 '라이킷 품앗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그때 잠시 띵, 하는 기분을 느꼈어요. 비록 소수라도 저의 글을 소장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분들의 격려로 여겨 굉장히 기분이 좋았거든요. 사실 라이킷(like it)을 우리말로 해석해보면 '좋아요'와 같은 의미인데 말이죠. sns를 즐겨하지 않다 보니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하고 만 것이에요. 순간, 부끄러워지더라고요.
물론 브런치 동료분들의 격려가 작게 느껴진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다만, 상호 간 격려가 어느 순간 의무감으로 변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어요.새 글을 업로드하면 정기적으로 라이킷을 눌러주시거나 답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어쩌면 의무감에 반사적으로 ♡를 누르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 거 있죠.
제가 조금 앞서 걱정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특히 요즘 연재하고 있는 '제주 체류기'는 방학기간 동안 남편과 함께 지내기 위해 넘어온 제주, 그곳에서의 일상을 매일 전하는 신변잡기적인 글이다 보니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는 답글이 달릴까 봐 꽤 마음이 쓰였기 때문인 듯해요. 본래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남들의 평가를 의식하고 상대의 진심을 왜곡하기 일쑤잖아요. '저 사람이 왜 나를 좋아하지? 동정심인가? 아니면 나에게 다른 노림수가 있나?'이러면서요.
"니가 아침에 눈을 떠 처음 생각 나는 사람이 언제나 나였으면 내가 늘 그렇듯이, 좋은 것을 대할 때면 함께 나누고픈 사람도 그 역시 나였으면... "
이런 노래 가사가 있어요. 이 노래처럼 저도 매일 아침에 눈을 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언제나 브런치였어요. 특히 글을 쓴 후에는 더 그래요. 아! 알겠어요. 짝사랑을 하다 보면 나만 늘 상대를 생각하고, 나를 바라보지 않는 상대에 대해 무궁무진한 상상을 하며 자기 비관을 하잖아요. 저도 그런가 봐요.
동료의 격려이든 소장의 의미이든 라이킷이 글을 쓰는 동력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브런치에 바라건대, 제가 생각하는 라이킷의 무게와 다른 용도로서의 라이킷이 구분되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책갈피'같은 기능과 분리되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요.
저는 캬라멜 마끼아또를 시켰고요, 아이는 딸기요거트 라떼를 주문했어요. 디저트는 햄치즈 잉글리시 머핀이고요. 오랜 시간 머물 것 같아서요.
새로운 공작 도구에 몰두해 있는 동안 잠시 글을 써요. 방해를 받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은 핸드폰이지만 오늘은 죄책감을 조금 덜어 보려고요.
요즘의 글쓰기는 두 시간 집중해서 쓰면 완성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두 시간 집중하기란 쉽지 않아요. 아이가 말을 걸어오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글이 완성되면 그 후에 가끔씩 다시 읽어보며 고쳐요. 적당한 사진을 넣는 것으로 마무리를 해요.
그런데 제주 사진이다 보니 사진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찍는 족족 다 예뻐 보여서 말이죠. 글은 사진을 보지 않아도 그 모습을 충분히 생생하게 살려낼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궁금증을 자아내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그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내공이 부족한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보다 사진에 무게중심이 기울어지나 봐요. 원치 않으면서 말이죠. 남편도 요즘 글에 사진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보는 이들도 저의 글보다 사진에 초점을 맞출까 염려된다고요. 남편은 가장 훌륭한 비평가이자 팬이니까 그의 의견을 흘려들어선 안돼요.
글쓰기에도 적당한 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오늘 아침 아이와 함께 병에 쌀을 넣을 때였어요. 깔때기를 병 입구에 꽂고 쌀을 붓는데 아이에게 도움을 청했지요. 역할이 주어지는 걸 즐기는 나이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쌀을 쏟는 힘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만 와장창 바닥에 쏟아져 버렸어요. 깔때기 속의 쌀이 넘칠 듯하면 쏟는 양을 줄이면 되고 깔때기의 양만큼만 부어줘야 하는데 말이죠. 아직은 어른만큼 힘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남자아이라 힘은 세어졌는데 힘을 조절하는 능력을 보니 아직 아이구나 싶더라고요.
어른스러움이란 '힘을 조절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글쓰기도 이와 같을지 몰라요. 때로는 힘 있게, 때로는 힘을 빼고. 그 중도의 힘을 익히면 사진이 없이도, 또는 사진을 넣더라도 그 비율도 잘 조절해가며 글 자체로 맛이 나는 훌륭한 글이 탄생할지도 모르죠.
남편의 전화가 와요. 벌써 퇴근시간이네요. 남편 출근했는데 팔자 좋게 카페 놀이냐고 타박하지 않아요. 이 시간이 저에게 힐링을 주는 것을 남편도 알고 있거든요. 가끔은 너무 더워서 집 밖 외출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날이면 오히려 더 곤한 기색으로 남편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집에 있으면 식사 준비라도 해야 하는 의무감도 들고요. 그런데 이렇게 밖에서 남편을 만나면 서로를 향한 격려의 말이 먼저 나오게 되더라고요.
"고생했어. 오늘 되게 더웠지?"
"그러게. 당신도 하루 종일 겸이랑 노느라 고생했어. 오늘은 글 많이 썼어?"
이렇게요.
아이가 저녁은 짜장면을 먹고 싶대요. 근처에 끝내주는 짜장면집이 있어요. 저는 이만 식사하러 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