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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8. 2022

나와 식물 그 사이

 오랜 친구인 초록이들


 

초록을 사랑한다. 거실 안으로 들어온 고무나무와 테이블 야자, 블루스타 펀 고사리와 유칼립투스, 몬스테라가 매일 아침 나를  맞이한다.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그들의 빛나는 모습은 지겨울 일이 없다. 몇 발자국만 가면 보이는 것들을 더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에 집안으로 들여놓는 게 하나 둘 늘었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행복하다. 이들의 다양한 색들을 표현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내 단어 실력이 아쉽다. 살아 있는 색, 초록으로 향하는 마음은 지치는 법이 없다. 초록은 항상 미소 짓게 한다.  이들이 닫힌 공간으로 들어왔기에 답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물러 미안해질 때도 있지만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욕심을 부린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초록 잎들이다. 나무들은 가끔 전혀 기대하지 않던 특별한 선물을 전한다. 나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15년을 훌쩍 넘긴 고무나무 ‘브라운 고’에게 돌연변이처럼 큰 잎이 돋아났을 때가 그랬다. 이미 있던 작은 잎이 무성했던 나무에서 어느 카페에서 봤던 넓은 잎이 새로 돋아나더니 이제는 제법 튼튼한 가지를 이뤘다.      


식물을 곁에 두기 시작한 건 오래다.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 과수원 가는 길에 피어난 야생화를 꺾어서 집에 꽂으려 했지만, 순식간에 시들어 버린 꽃을 보며 실망했던 일은 아직도 선명하다. 짧은 충격이었던 이 일을 경험하며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제 자리를 잃어버리면 순간에 아름다움이 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5,6 학년 무렵에는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 화단을 가꾸며 풀을 뽑았다. 어른이 되어 회사를 다닐 때 역시 꽃과 나무가 삭막하고 긴장되는 하루를 달래주었다. 기분이 뒤숭숭할 때 머그잔에 물을 담고 와서 화분에 가득 부어주고 나면 속이 후련했다.      


멍 때리고 있을 때도 이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시선을 멀리 둘 필요도 없다. 가장 편한 자세로 가만히 멈춰 있으면 그들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가만히 정지된 듯한 그 상태에서 그동안은 만나지 못했던 소박 하면서도 정겨운 초록들이 다가온다. 계절의 변화에도 누구보다 빠르다. 아이비는 겨우내 추웠는지 잎이 갈색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초록 잎이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밖은 겨울을 보내기 아쉬워하는 봄이 갈등하는 듯 날이 오락가락하는데 우리 집 정원은 이미 새 계절로 접어들었다. 가끔 이들 덕분에 칭찬도 듣는다. 아이의 친구가 놀러 오면 하는 말이 있다.

“야, 너희 집 완전 식물원인데.”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고마운 감상평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럴 정도는 아닌데 살며시 부끄럽다가 좋게 봐주니 덩달아 어깨가 으쓱하다. 

식물이 주는 여러 가지를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관심 있다 말하면서도 식물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들을  외면한다. 아마도 게으르면서도 그리 치밀하지 않은 내 성격이 여기에도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여름 즈음에는 셀륨에 이상이 생겼다. 잎들에  반점이 생겼고 그것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미뤄두었다. 결국에는 더는 피해 갈 곳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약을 뿌려주었다. 그렇더니 조금은 좋아졌지만 아직도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미리 막을 수도 있었던 일이지만 미뤄두는 내 습성 탓에 식물들만 피해를 본 셈이다.    

 

식물 집사라 불리며 전문가를 능가하는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이들을 보면 부럽다. 그럴 때마다 “나도 한번 공부해야겠다”라고 마음먹지만 며칠을 넘기기 어렵다. 아는 만큼 보이고 더 잘 가꾸게 될 터인데 아직은 먼 얘기다. 초록 친구들이 내게 주는 만큼 나도 뭔가를 돌려줘야겠다고 생각이 머물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 할 일을 언제나 잘해나간다.  


그들은 한동안 돌보지 않아도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외면했느냐에 따라 잎이 마르거나 시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대로 잘 견뎌 낸다. 내 마음이 요동치거나 집에 일이 생겨서 허둥지둥 지내다 보면 이들을 잊게 된다. 그러나 문득 나가 보면 키가 자랐고, 안 보이던 잎이 하나둘 늘었다. “고마워”라고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은 순간이다. 그리고 이때 하던 일을 멈추고 샤워 호스를 든다. 내 키보다 더 큰 나무에 물을 뿌리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미안해진다.    


우리 집 식물의 상태는 내 마음을 보는 창이 될 때가 종종 있다. 나보다도 더 굳세게 살아내고 있는 게 이들의 매력이다.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보낼 때는 이들에게 물 주는 일 외에도 화분 위로 난 풀을 뽑아주는 것도 규칙적이다. 언제 물을 주었는지 되뇌어 보고, 손가락을 화분 깊숙이 넣어 흙이 얼마나 촉촉한지 확인한다. 화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알려주었지만 우리 집 환경과는 안 맞을 때가 많다. 그런 탓에 이렇게 흙을 살펴보면 식물이 잘 자란다.

    


식물과 함께 산다는 건 즐거움이 스미는 일이다. 아이가 선물한 라벤더는 꽃봉오리가 맺혔고, 튤립 키스넬리스는 꽃을 피웠다. 어느 겨울 정신없던 작업을 마치고 내게 선물한 몬스테라도 서너 개였던 입이 열 개로 늘었다. 너무 늦게 자라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 로즈메리는 올봄에 얼마나 커갈까? 살짝 손바닥으로 어루만져 주면 얼마간 남는 향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오래전 숲을 이룬 것처럼 큰 로즈메리를 반려식물로 하는 외국의 사례를 보고는 꿈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지금처럼 초록 식물이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희망을  키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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