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따던 소녀 성장기
바람과 햇살 향이 머리를 맑게 한다. 어수선했던 여름은 막을 내렸다. 며칠 전 엄마는 택배 상자 가득 가을을 담아 보냈다. 초록 지붕 집 앤의 주근깨를 연상시키는 점박이 귤이 상자에 가득했다. 겨울을 지나 봄부터 여름까지 바지런히 움직인 소중한 결실이다.
제주의 가을은 귤빛으로 물든다. 얼기설기 쌓은 돌담이 포근히 안아주는 과수원 초록 숲 사이로 태양과 황금의 중간 어디쯤일 찬란히 빛나는 열매를 만난다. 귤 농사를 짓는 시골에서는 깊은 겨울이 오기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귤 따러 가는 부지런한 농부들의 경운기 소리가 잠자는 새벽을 깨운다. 하루가 다르게 싸늘해지는 날씨는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다. 눈은 농사꾼에게 가장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누군가는 귤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은 겨울 풍경을 보고 시를 읊조리지만 농부에게는 아픔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없던 농부의 딸
초등학생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가을은 현실적인 계절이었다. 농부의 딸로 태어났기에 숙명처럼 날씨에 민감했다.
“와아 눈 온다. 내일은 눈싸움할까?”
“일요일이고 크리스마스잖아. 뭐해? 같이 놀자”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단짝 친구는 성탄절을 함께 보내자며 내게 물었다. 당연히 휴일은 과수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놀 수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친구는 큰 용기를 내어 완행버스를 타고 시골 우리 동네를 찾아왔다. 공중전화에서 나를 불러낼 생각이었다. 아기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정신없는 귤 수확기의 농촌 상황을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구는 대답 없는 수화기를 탓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 집으로 돌아갔다.
“나 그때 엄청 속상했어. 작정하고 네 집에서 놀려고 그리 오래 버스를 탄 것도 처음이었는데…. 정말 발이 안 떨어지더라.”
지금도 만나면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부모님을 돕는 일이 우선이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살아가는 부모님의 삶이 몸에 밴 까닭이다.
‘지금 밭에서 막 나왔어요’ 하고 말을 건네는 듯한 귤 하나를 들었다. 얇은 껍질을 벗기는 동안 은은히 퍼져 나오는 향이 찌뿌둥한 몸을 깨운다. 알맹이를 입에 넣었다. 톡 하고 순간 느껴지는 신맛 뒤에 이어지는 달콤함에 기분이 좋다.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고향집과 과수원을 머릿속 도화지에 그려본다.
# 귤 수확은 인내와 수고로움의 하모니
손보다 장갑이 더 컸던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베이지색 도톰한 면장갑을 끼고 가위를 들고 주말이면 과수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내가 유일하게 칭찬받았던 일은 귤 따기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귤이 아무리 풍년이어도 나무에 달린 것들을 거둬들이는 일이 급선무다. 귤을 수확하는 과정은 쉬워 보이지만 나름의 노하우와 정성이 필요하다. 가위질을 잘못해서 상처를 내거나 나뭇가지를 마구 자르게 되면 이듬해 나무의 성장에도 영향을 준다.
나무 하나를 정하면 자리를 지키고 주변을 돌면서 꼼꼼해 따줘야 한다. 눈에 들어오는 건 가지가 부러질 만큼 잔뜩 달린 녀석들이다. 누구에게나 구미가 당기는 이들보다 깊숙이 숨어 있는 애들까지 챙기는 꼼꼼함이 필요하다. 하늘로 고개를 쳐들거나 땅 밑에 굽어 절하듯 숙여 있는 이들 모두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아야 한다. 적당한 인내와 수고로움, 바구니에 담긴 귤의 무게를 이기고 컨테이너까지 들고 가야 하는 힘도 필요하다.
찬 겨울바람이 무리 지어 달려들 11월 무렵이면 귤을 거둬들이는 절정이다. 해가 얼굴을 내밀지도 않은 시간에 밭으로 향한다. 과수원 한 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몸에 냉기를 데우고 나면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에 짹 각하는 가위질 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무슨 얘기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절로 웃음주머니가 터진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성적 걱정에 편한 날일 없었다. 과수원에 오면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휴일이면 가방을 자취방에 던져 놓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고생하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에 잡념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하는 귤나무와 씨름하는 가위질의 매력 때문이었다.
# 농부의 소리 없는 전쟁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던 과수원이었다. 사방이 탐스럽게 익은 귤 천지였지만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노동의 현장이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여러 집을 돌며 귤을 사들이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옆집 귤이 얼마나 팔렸는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진다. 그 바쁜 와중에 누가 말을 옮겼는지 신기했다. 동네의 기준 가격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품질에 따라 값이 매겨지고 농부들은 어느 때보다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가을은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스릴 넘치는 계절이기도 했다. 언제나 가격이 맘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귤을 싸게 사려는 상인과 가능한 높은 가격을 받고 싶은 이들의 거래가 이뤄지는 순간은 묘한 긴장감과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성을 다해 지은 농사이기에 타이밍이 중요했다. 수십 년 경력의 농부의 연륜과 직감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할 때다. 조금이라도 시기를 놓치면 큰 손해를 보기 일쑤였다. 기쁨도 크지만 다른 때보다 예민해졌다. 잘살아보려는 농부들의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 관찰자로 고향을 감상하기
가을 제주를 방문하면 이성 대신 감성이 지배하는 시간을 보낸다. 넘실대는 억새밭과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내는 햇살의 빛나는 귤밭 풍경 때문이다. 마치 외국의 어느 마을을 방문한 것처럼 사진 찍기에 바쁘다. 어릴 적 주말이면 달려가는 밭은 언제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린 귤들이 예뻐 보이는 건 눈 깜짝하는 순간뿐이었다. 과수원을 떠난 지 20여 년이 흘렀다. 어느덧 이방인이 되어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흙냄새 바람 소리, 이름 모를 풀꽃마저도 특별하다. 그저 관찰자로 즐기고 싶어 진다.
어느 해 겨울 예쁜 카페로 변신한 귤 과수원이 TV에 나왔다. 천장 높은 카페는 농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창고였다. 지금도 친정집 마당에는 30년의 세월을 간직한 저장 창고가 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랜 그곳은 농기구와 귤을 보관하거나 아버지의 오랜 농사 친구인 경운기가 겨울 한철 추위를 피하던 장소였다.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공간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스타일의 변화가 세월만큼이나 놀랍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평생 일터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휴식을 맛본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감상한다. 걷는 것으로는 모자라 열심히 뛰어다니던 과수원 오솔길을 지난여름에 걸었다. 멀게 느껴지던 그곳이 이제는 몇 걸음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됐다. 모든 게 변했다. 과수원을 휘저으며 소리 높여 말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워간다. 우리 과수원도 엄마 혼자 지키고 있다. 언제까지나 엄마의 향기가 어린 귤을 받아먹고 싶은 욕심이다. 바람 한 자락이 전해오는 가을 기운에 오늘도 귤은 찬란한 빛으로 익어가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