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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원 Nov 05. 2017

불안의 지혜 3/3

심리학자 아빠가 혼자 키우는 딸에게 전하는 지혜의 서신

불안을 다루는 부정적인 행동 양식을 수정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건강한 행동 양식을 지니는 좋은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나요?


불안에 대한 두 번째 편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문제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관리하는 행동 양식은 무의식적인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져요. 마치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자신이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말을 수없이 듣고 따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아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말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거치며 어느새 자신만의 행동 양식을 갖게 되지요. 

하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행동 양식을 배우는 것은 학습의 난이도가 달라요.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어려운 것만큼 새로운 행동 양식을 얻는 과정도 쉽지가 않아요. 사랑하는 딸이 앞으로 어떤 언어에 흥미를 지니게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영어와 중국어 등의 외국어를 공부해 본다면 금방 이해가 될 거예요. 때로는 난관에 부딪혀 좌절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거듭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바로 새로운 언어나 행동 양식의 습득인 것이지요.

이처럼 언제 어떤 순간에 익히느냐에 따라서 언어도 행동 양식도 습득의 방법과 수준이 다르게 돼요. 만약에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에서 태어났거나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만 생활했다면 지금 쉽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와 같아요. 건강한 행동 양식을 지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건강한 행동 양식을 배울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에요. 그들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행동 양식이 익숙해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요.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부모예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 관계를 형성하고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대상이 부모이기 때문이지요. 부모와 함께 하는 상황에서 불안을 경험할 때,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다른 행동 양식을 배우게 돼요. 


아이가 무엇인가 잘못을 하고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웃음을 보이고 괜찮다는 말을 하는 부모. 

부모를 바라보며 표정이 굳어있는 아이가 다시 웃을 수 있도록 유머를 사용하는 부모.

무엇을 잘못했는지 꼬치꼬치 따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가르치는 부모.

아이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다그치기만 하는 부모.


다른 사람과 다툼이 생기는 상황에서

웃으며 부드럽게 대처하는 부모.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 부모.

앞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뒤에서는 욕을 하는 부모.


부모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불안을 다루는 전혀 다른 방식을 익히게 돼요. 웃음으로 불안을 다룰 수도 있고, 자신의 불안을 어떻게든 타인에게 넘기려고 할 수도 있고, 혼자 억누르며 고통스러워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부모와의 관계에서 처음 만들어진 행동 양식은 이후에 교사, 친구, 애인, 동료 등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치며 자신만의 것으로 완성이 돼요. 이 과정 속에서 어떤 사람들과 만나서 어떤 모습을 보고 어떤 피드백을 받으며 지내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모습의 행동 양식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후천적인 과정만이 영향을 주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타고난 성향을 경시할 수는 없어요. 애초에 어떤 자질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서 같은 상황에서 같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더라도 다른 양식이 만들어지게 될 거예요. 어쨌든 명심해야 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기에 후천적인 과정이 건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아빠가 사랑하는 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에요. 어쩌면 아빠가 무엇인가 부족한 성향을 지니고 태어나게 했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살아가면서는 건강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긍정적인 행동 양식을 지닐 수 있도록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정성껏 노력할게요.


사랑하는 딸은 어떤 행동 양식을 지니고 불안을 다루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나요?


아빠의 편지를 읽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딸이 성장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참 궁금해요. 언제나 주위의 아이들을 챙기는 지금 모습 그대로 자란다면, 아마도 문제 상황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돌보는 행동 양식을 통해서 자신의 불안과 타인의 불안을 모두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한 행동 양식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무조건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아야 해요. 항상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어야 해요.


불안에 대한 첫 번째 편지에서 아빠가 말했던 분은 결코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분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살피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이었지요. 그럼에도 그분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자신과 타인의 경계선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분이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버지에게 당혹감이나 아픔을 전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아버지가 원하는 바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게 될 일들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해서였어요. 그래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바람을 충족시키려고 했어요. 그렇게 자신과 타인 간의 균형을 잃으면서 모든 고통을 혼자 부담하게 되어버렸지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것보다 타인이 원하는 틀에 자신을 맞추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어요.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맹목적으로 타인의 요구를 수용하는 행동 양식이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분란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결코 바람직하다거나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 관계에서는 자신의 욕구가 효과적으로 표현되거나 이루어질 수 없기에 결국 그 욕구가 미해결된 과제로 남게 돼요. 그렇게 해소되지 않은 욕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억지로 억눌렀기 때문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꿋꿋이 남아있게 되지요. 자신의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게 돼요.


아빠는 사랑하는 딸이 자신과 타인의 행동 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다른 이의 긍정적인 행동 양식의 형성과 변화를 돕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요. 하지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는 않아요. 어떤 순간에도 자신과 타인의 바람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과 타인 간에 발생하는 불안을 적절하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혼자서 모두 받아들이며 고통스럽게 감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딸이 행복한 삶을 위한 건강한 행동 양식을 익힐 수 있도록 언제나 아빠가 응원할게요. 오늘도 사랑해요.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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