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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원 Nov 06. 2017

우울의 지혜 1/3

심리학자 아빠가 혼자 키우는 딸에게 전하는 지혜의 서신

오늘 아빠는 마음속에 우울이 가득한 분을 만났어요. 


아빠처럼 혼자서 어린아이를 돌보며 살고 있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그분의 모습은 아빠와는 매우 달랐어요. 삶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희망이 새롭게 생성될 자리가 없을 만큼 내면에는 절망만이 가득 차 있었어요.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그분의 간절한 소망이었어요. 그분의 부모님은 친구들의 부모님과는 전혀 다른 분들이었어요. 약간의 어리광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하고 애정을 전혀 표현하지 않았어요. 그런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온 탓에 친구들이 들려주는 화목한 가정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품에 안고 웃으며 반겨주는 어머니, 퇴근 후에 먹을 것을 양손 가득 사들고 활짝 웃으며 들어오는 아버지는 그야말로 환상 속의 존재들이었어요. 행복한 미소로 포근하게 보듬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집은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어요. 그저 숨 막히게 만드는 장소였어요. 그 안에서 항상 혼자였고 너무나도 외로웠어요.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웃음소리가 멋진 사람을 만나서 한눈에 사랑에 빠졌어요. 아픈 기억들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활기찬 웃음소리를 지닌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과 함께라면 평생 웃을 수 있겠다."


시간이 흐르고 결국 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예쁜 아이도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토록 꿈꿔왔던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정을 드디어 만들게 되었어요. 일이 힘들고 육아가 고단했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어요. 편히 앉아서 쉴 시간조차 없었지만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생각에 그조차도 행복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평온하게 살아오던 세상이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버렸어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사고로 아이와 자신만이 세상에 남게 되었어요.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어요. 삶의 가치를 찾기가 어렵게 되었고,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하루하루가 끔찍하게 고통스러웠어요. 세상을 떠나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어요.


'딱 하루만 더 견디고 죽자.'


그렇게 괴로웠던 시기를 힘겹게 버티며 한참의 시간이 지났어요. 하지만 한 번 망가진 삶은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았어요. 잃었던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어요. 일상생활에서 즐겨하던 일들에서 더 이상 흥미나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무런 삶의 의미도 찾지 못하는 공허한 나날들이 반복되었어요. 식사를 거르는 순간들이 많아졌고,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누적된 피로에 활력을 잃어만 갔어요. 그런 모습으로 살아오면서 일과 가정 등 삶의 중요한 영역들이 붕괴되었어요.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아이의 삶도 같이 엉망이 되었어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고, 깨끗한 옷을 입히고, 함께 놀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들이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면서 아이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가엾게도 그분은 자신이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지 않았어요. 아니, 자신의 상황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았어요. 몸은 살아있지만 마음을 살아있지가 않았어요. 우울에 사로잡혀서 삶을 포기하고 있었어요.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울을 만드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도 아무런 경험 없이 우울을 마음속에 담게 되지는 않아요. 물론 선천적으로 우울에 노출이 되기 쉬운 성향을 지니고 태어날 수 있어요. 하지만 자기 자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아무런 후천적인 원인 없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던 무엇인가가 존재하지요.


여러 부정적인 경험들이 천천히 누적되어서 우울이 나타났을 수도 있어요. 혹은 몇 가지 강렬한 경험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갑작스럽게 송두리째 바꾸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그 결과 더 이상 노력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을 수 있어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신의 삶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을 지니게 되었을 수 있지요.

아니면 자신이 진정 원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주변의 요구에 맞추어 살아오기만 했던 것이 우울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어요. 타인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서 살아오는 과정에서 자신을 잃게 되었을 수 있지요. 막상 그것을 성취한 이후에 자신이 진정 원한 것이 아님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남는 것은 공허감과 후회뿐일 거예요.

혹은 이상적으로 바라는 삶과 실제 자기 삶의 지독한 차이로 인해서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되었을 수도 있어요. 그 순간에 변화를 위해서 자신이 선택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면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 밖에도 사람마다 우울을 가지게 되는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할 거예요. 그리고 우울의 늪에 깊숙이 빠져들어갈수록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에 대해서 합리적이지 못한 신념과 심상들에 사로잡히게 돼요. 자기 자신이 지닌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지 못하게 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될 수 있어요.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수도 있지요. 


어떻게 하면 우울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우울을 겪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빠의 생각은 다은 편지에 들려줄게요. 오늘도 사랑해요.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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