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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라 Apr 10. 2020

애착: 회피형, 쓰레기인가? (하)

지난 주에 이어서, 회피형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temptationz/19

https://brunch.co.kr/@temptationz/21






8. 회피형은 ‘~성격’이라는 말들. 


: 틀렸다(!). 정확히는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배려심이 없다, 겉은 차갑고 속은 따뜻하다, 차도녀다, 엄친아다, 소심하다, 생각보다 겉으로는 사교적이다 … 회피형은 ‘이러이러한 성격이다’ 라고 일반화를 많이 하는데, 그런 성격의 회피형을 만나서 그렇다. 



애착과 성격은 아예 다른 개념이다. 



성격은 한 사람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심리학적 정의: 환경에 대해 한 인간이 취하는 독특한 행동 패턴


https://brunch.co.kr/@temptationz/5


애착과 성격 사이에는 ‘친밀감’ 이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애착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형성된 정서적 유대감이다. 한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친밀감이 쌓이고 나서야 애착을 형성할 수 있기에, 애착은 친밀감을 기본 전제로 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성격은 친밀감과 상관 없이 보인다. 




예를 들어보자.

지나가다가 쉬는 시간 운동장에 가장 먼저 뛰쳐나와서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봤다. 오래 만나보지 않았어도 그런 장면을 몇 번 보면, 우리는 그 아이의 성격은 활발하다고(혹은 외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도 그 아이의 성격을 소심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그 아이의 애착이 어떤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해 보자.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상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아무도 반대로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둘과 오랜 시간 개인적으로 교류한 경험이 없음에도. 하지만 두 사람의 대외적인 모습을 통해 애착유형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9. 마지막 오해, 회피형은 공감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


: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 명제를 부정하려고 했다. 

글을 쓰고 있는 스스로부터가 변화의 산물이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에게 공감능력 자체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못했겠지. 못한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애착 클래스를 열고, 누군가의 사랑과 관계와 인생이 더 행복해지게끔 돕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니까.라는 일종의 도취감에 빠져서 부정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사실이다. 

회피형은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공감 능력이 없는 거든, 공감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든. 이유야 알 게 뭔가.

어쨌든 겪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똑같다. 




회피형 애착의 두려움은 머리로 하여금 가슴을 뒷전으로 두라고 말한다.



사랑이 무섭다.


회피형은,

나의 감정을 누군가 아는 것이 두렵고,

내가 누군가의 감정을 아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이성을 감정보다 우선시한다.

나의 감정에 몰입하고, 너의 감정을 외면한다.

나의 사랑은 이성이고, 너의 사랑은 감정이기에. 합리화 대마왕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다. 머리가 아니고 가슴으로 한다.

상처받기 싫고, 미래는 어떤 이유로든 100% 확실하지 않고, 무섭고 낯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을 머리로만 깨닫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알고 느끼기 전까지 회피형들의 공감능력은 잠시 이성에 의해 묶여있다. 회피형이 공감 능력이 없는 싸이코패스는 아니지만, 회피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는 특성이다. 







세상에는 회피형인 쓰레기도, 회피형이 아닌 쓰레기도 있다. 

회피형 애착 유형은 이기적이고, 예의 없고, 무개념이고, 공감능력을 상실한 사람을 위한 면죄부가 아니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겁이 많은 사람들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따뜻하고도 낯선 감정이 무서운 사람들.

그래서 도망가는 선택지밖에 못 보는 사람들.


상처로부터의 회피,

친밀감으로부터의 회피,

갈등으로부터의 회피,

관계로부터의 회피,

사랑으로부터의 회피 …


회피형은 사회에서 치워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지만, 

도망가고 피하는 와중에 상처받고 다시 상처를 주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스스로 찾아내야만 한다.

사실 바라던 건 모두,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곳에 있다는 걸.







0. Epilogue.



쫓고 쫓기는 지독한 사랑. 

내가 마음을 주고, 사랑을 준 사람이 

되려 나에게 남긴 끔찍한 외로움과 상처. 


내가 너라는 지옥에 들어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도 나로 인해 불행해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행복하려고 사랑을 시작했는데,

행복할 줄 알았던 사랑의 끝은 왜 지옥이어야 했을까. 

관계의 끝이 이렇게 잔인해야만 했을까. 


너무나도 싫었다. 

너도 나도 고통받는 끝이.

우리는 서로 사랑했는데.

나는 너의 아픔을 바라지 않았다. 내가 아프고 싶지도 않았다. 



불행하게 끝난 8년 전 사랑의 기록을 관조하면서부터 사랑에 대한 탐색은 시작되었다. 




사랑은, 나에게 지옥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애착은 ‘변하지 않는다’가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포기한다는 말은 지옥에서 매일을 보낼 거라는 최후통첩과도 같았다.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그럼에도 애정을 갈구하다가 다시 숨막힐 듯 두려워 도망가고.

한 줄기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마음 속에서 자꾸만 커져서 언제 나를 잡아먹을지 모르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다시 마주치는 지옥.   


구원은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무엇을 외면해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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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aling.me/Talent/Detail/2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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