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여섯 살 난 딸아이가 있다. 둘째 아이는 아들이다. 그 아이 임신 막달, 나는 학교를 휴직하고 집으로 들어앉았다. 갓 태어나 엄마 젖을 내리 빠는 아들 곁에서 딸은 호시탐탐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놀아달라, 재워달라, 먹여달라......’ 둘째를 보고 나서도 나는 큰 아이와 정말 잘 놀아줬다. 놀아줬다? 표현이 정말 이기적이긴 한데, 힘들 때도 참고 함께 노느라 노력했으니 나는 저 표현을 굳이 쓴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놀이 본능을 장착하고 나오나 보다. 고 자그마한 녀석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놀아도 쉬이 지치지를 않는다. 녀석은 놀아줄수록 더욱 재미를 느끼고 더 갈증을 느낀다. 참으로 힘겨운 놀이 6년이었다.
놀이 6년이라 하니 새삼 그 시작이 궁금하다.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다 보니 몇몇 육아서와 만나게 된다. 그 육아서에서, 그 저자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글에서 나는 자못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아, 나도 저렇게 훌륭하게 키워봐야겠구나!’ ‘나도 저 엄마, 아빠만큼 잘해줄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다. 돌아보면 과정 과정마다 행복했다. 아이와 책을 읽고 수다스러우리만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기 전에 이미 놀이는 시작되었고, 지나가는 밤이 무색할 정도로 열심히 행복하게 놀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이 좋은 걸 다른 사람한테도 알려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날마다 책 속에서 자극을 받았다. 읽는 책마다 내게 속닥속닥 귓속말을 멈추지 않았다. ‘너의 경험을 팔아 상품을 만들라. 모든 것은 책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자기 계발서의 권고를 받아 들고 나는 아이와의 일상 놀이에 관한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작정을 한 뒤로는 희한하리만큼 아이와의 놀이가 재미있지 않아 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딸아이랑 쑥덕쑥덕 만들고 오리고 놀았던 그 놀잇감에도 어느새 심드렁해졌다. “또 그거야? 우리 새로운 거 해볼까?” 나는 서서히 헛된 욕심을 부려가기 시작했다. 책에 올릴만한 근사한 놀이를 계발하고 싶어 했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대느라 정신을 빠뜨리고 살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 곁에 붙어 앉아 간지럽히고 웃기고 웃으며 한바탕 즐겁게 놀았을 것을 ‘뭐, 원고 거리 없나?’ 두리번거리는 내가 아주 볼썽사나워졌다. 함께 논다는 것이 기껏해야 놀이 장면 장면마다 사진을 찍고 감탄하는 것 정도였다. 완전히 나의 모습을 잃었다. 노는 게 가장 좋은 이쁜 엄마샘? 이젠 노가리샘이라는 아이디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가 되어있었다. 노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두고 나면 기운이 풀리고 정작 아이들을 멀찍이 밀어냈다. 적당히 흥에 맞춰 주다가 블로그에 올릴 글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웃고 행복해하는 순간들을 죄다 놓치고 있었다. 아이들하고 노는 게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만만했던 나였는데...... 노는 게 너무 귀찮고 피하고만 싶은 무엇이 되어가고 있었다.
뭘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 1년을 방황하고 보니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내 삶이 온전해야 그것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아이와 잘 지내고 놀아낸 이후, 나는 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그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뭐가 그리도 조급한지, 이제 막 여섯 살이 넘어서는 아이를 데리고 뭔가를 해보겠다고 꿍꿍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저 놀 때인데. 아이 옆에서 같이 놀고 흘린 것 닦아주고 준비물 찾아주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줘야 하는 건데. 아이는 아직도 충분히 놀 생각인데 내가 먼저 손을 털고 일어나 그곳을 떠나려 했다. 그러니 촉이 좋은 아이는 불안했던 거지. ‘여태껏 나와 잘 놀아줬던 엄마가 멀리서 사진만 찍고, 나랑 즐겁게 놀지를 않네.’ ‘나는 엄마가 함께 얘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책 읽으며 웃는 게 참 좋은데...... 오늘도 엄마는 글을 쓴다고 하고 사진 찍는 휴대폰만 바라보라고 하네.’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닿자 아찔했다. 느리게 가더라도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순간순간 아이와의 놀이에 빠져들어라. 그리고 그 온전한 기쁨과 여유를 글로 풀어내자.’라고 마음을 먹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매실청을 담그면서 중간중간 과정 샷을 남기느라 흥을 뺏기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랑 잠들기 전, 실랑이를 하며 네댓 권의 책을 읽는 것이 다시 즐거워졌다. 나는 “이제 좀 자자!”라고 사정을 했다. 아이는 “엄마, 한 권만 더 읽어줘!”하고 아양을 부렸다. 이게 행복이다. 나는 놀이책을 근사하게 써서 ‘이렇게 놀아주는 거야!’라며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보여주는 놀이였을 때의 힘보다 온전히 놀아본 사람의 여흥을 전하고 싶다. 연령별 실내놀이, 창의놀이, 요리놀이를 제시해주는 선명함보다 어느 때고 아이 욕구에 맞춰 되는대로 즉흥적으로 펼쳐 놀아보는 놀이의 세계를 소문내고 싶은 모호함이 더 크다. 대상이 아이이다. 아이는 살아있고 욕구가 있다. 정해진대로 어디에서 본 대로 놀아본다고 그게 먹힐 리가 없다. 어느 집 아이나 다 각기 다른 성향, 강점, 욕구를 지녔다. 그 아이들이 살아 숨 쉬는 문화가 다르고 그 아이들이 만나는 엄마, 아빠가 나의 아이의 그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그래서 ‘놀이법’이라는 말은 애초에 어감이 낯선 용어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 아이와 논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그것이 왜 의미가 있는가? 6년을 놀아보니 이제는 확실히 아는 것이 생겼다. 부모가 아이의 놀이 세계를 왜 알아야 하는지, 아이 놀이를 흉내 내거나 최소한 방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신나게 놀아본 아이는 무엇이 다른지 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다. 이것들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어서 나 혼자만의 육아일기라고 접어두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 다소 보잘것없게 표현될지도 모를 나의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또 집필을 시작하는 이유이다.
첫 번째 나온 《엄마만 모르는 선생님이 들려주는 내 아이의 학교생활》은 내가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번 책은 집에서 만난 내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둘 다 같다. 이 세상에 나온 고집 세고 놀기 좋아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생명체들과의 평온한 공생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같다. 나는 14년간 초등학교에 있었다. 그간 내 기억에 남는 아이들은 공부 잘하고 학교 즐겁게 다니던 아이들보다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아이들이 훨씬 많다. 가정이 좀 더 탄탄하고 따뜻했다면 덜 힘겨웠을 아이들, 조금 더 자신들의 뜻을 펴보고 살맛 나게 놀았으면 싶은 안타까운 아이들이 있었다. 해답은? 사랑에 있다. 아이에게 사랑은 엄마, 아빠의 품이고 그들과의 ‘추억 쌓음’이라고 과감히 말해본다. 그 안에 놀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러 굳이 새로운 발걸음을 뗀다. 행복한 가정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취학 전 일상 놀이, 유년의 놀이 경험 쌓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1장에서는 일상 놀이가 무어인지 알아본다. 가족과의 화목한 외식을 위해 메뉴보다는 키즈카페 여부를 먼저 보고 식당을 고르는 때가 되었다. 휴대폰을 쥐어 주지 않으면 공공장소에서 난리 법석을 치는 아이 통에 외출이나 대중교통 여행을 두려워하는 부모가 많아졌다. 집집마다 알록달록하고 덩치 큰 플라스틱 완구들이 가득 들어앉은 아이 방을 심심찮게 본다. 모두 아이의 일상에 ‘놀이’가 허락되지 않아서 그렇다. 엄마표 놀이와는 다른, 대단한 창의성을 키워준다는 학습 놀이와는 다른, 꽉 막힌 실내공간에서 두 시간 동안 놀고 나오며 이용료를 지불하는 그런 놀이와는 다른 ‘일상 놀이’를 그 의미, 조건, 방향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2장에서는 아이와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팁을 공유한다. 아이에게 놀이가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다. 부모 역시 아이들을 돈 주고 사교육 기관에 맡기거나 놀이 선생님에게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은 그리 크지 않다. 웬만하면 어릴 적에는 곁에서 놀아주고 싶고 다른 사람 손이 아닌 내 품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욕망이 우리에겐 있다. 그런 부모들에게 어떻게 하면 화를 덜 내고, 수고를 덜면서 아이와 놀이를 즐길 수 있는지 간단한 비결을 소개한다. 놀이가 귀찮게 느껴지지 않게 해주는 마음관리와 놀이 환경 설정, 좋은 놀이 상대가 되는 법, 일상 놀이의 요소를 갖추는 비결, 놀이를 방해하는 것들로부터의 견제법, 놀이를 사랑하고 나아가 ‘삶은 놀이’라고 주창하게 되는 어른 놀이법까지를 다뤄본다.
3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기술했다. 부모 주도가 아닌, 아이의 자연스러운 놀이 흐름에 맞춰 놀 수 있는 12가지 노력에 대해 공유한다. 모두 내가 그간 해온 것들이다. 그중, 핵심적이고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로만 간추려 하나하나 알아본다. 아이를 그대로 따라 하는 미러링, 계획대로 아이를 이끄는 것이 아닌 적극적 팔로우십, 아이의 행동과 판단을 되도록 믿고 보는 노터치 정신을 이야기한다. 아이 삶에 깊숙이 들어갔다 멀찍이 물러서는 줌인 줌아웃 전략, 놀이에 살고 놀이에 미치는 놀이 홀릭, 회유와 거절보다는 수용을 경험케 하는 예스맨 기법, 미니멀리스트 흉내내기를 통한 놀이에의 단순함, 유년기의 꽃인 교집합 존(Zone) 만들기, 한 끗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저지레와 놀이 구분법, 한계 없는 놀이의 힘, 아이 삶의 세 바퀴인 놀이, 책, 대화에 대한 글을 모두 3장에 실었다.
4장에서는 놀이의 힘을 강력히 전파하려고 힘을 쏟았다. 놀아보니 알겠다. 월급 주는 직장 생활을 마다하고 나라에서 보조해주는 보육비를 마다하고 내가 아이와의 일상 놀이를 택한 이유에 대해 최대한 진심으로 전한다. 아이에겐 놀이 아닌 것이 없다. 아이랑 잘 지내는 법은 아이랑 잘 노는 것이다. 잘 놀아보니 뜻하지도 않게 수많은 것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놀이보다는 학습에 더 어울릴법한 각종 능력, 일컨대 문제해결력, 의사소통력, 창의력, 구상력 등을 아이가 서서히 갖추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굳이 일정을 짜가며 외부 시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교육이 저절로 되었다. 놀이는 남는 장사, 최고의 교육임을 확신한다. 3장에서 제시한 몇 가지 기술들만 섭렵하면 집에서도 충분히 아이와의 놀이, 교육을 맨몸으로 일굴 수 있다. 물론 약간 수고스럽고 벅찰 때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어릴 적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저런 놀이를 하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돈도 절약되고 일상도 단조로워진다.
5장에서는 좌충우돌 놀이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표면적으로는 하수, 중수, 고수의 놀이법이라고 칭했지만 나의 놀이육아 궤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모든 가정, 모든 아이에게 딱 들어맞는 육아법, 놀이 형태는 없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내 아이와 놀면서 겪어왔던 시행착오와 도전들을 아낌없이 나누려 한다. 나는 아직도 놀이 중수다. 나 혼자 하는 어른 놀이에서는 거의 놀이 천재급에 가깝지만 아이와의 놀이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어렵지만 이 길이 아름답고, 가치 있고 행복한 길인 것을 알기에 여러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걸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6장에서는 초등 입학 준비도 놀이로 끝내는 신묘한 코스를 소개한다. 나는 초등교사이다. 1학년 담임을 3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떻게 친구와 어울려 가고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는지 많이 보아왔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 펼쳐질 삶과 그 이전의 가정생활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는지, 어떤 놀이와 경험이 아이의 학교 적응에 도움이 되는지, 놀이력이 어찌하여 아이의 공부력이 되는지를 알아본다.
끝으로, 행복한 놀이 동행에 첫발을 디딘 여러분을 환영한다. 아이들의 놀이 동반자가 되어 아이의 유년을 따뜻하게 수놓아줄 부모님들이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그런 부모 곁에서 더욱 행복하게 그들의 삶을 누릴 아이들을 상상해본다. 삶은 놀이다. 어른도 놀고 아이도 논다. 놀지 못한 부모들도 아이 곁에서 참다운 놀이를 해보라. 삶이 신나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