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부름에 답한 그는 절름발이가 됐지
올해로 서른다섯. 나와 띠동갑인 이등병이 한 달 터울 동기로 입대했다. 내 침대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C는 곧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왔다. 바짝 삭은 그의 얼굴을 본 동기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나는 조심스레 나이를 물어보았다. 서른다섯. C는 우리 소대장과 동갑이었다. C는 외국에서 대학 교수로 일하다 왔다고 했다. 그대로 지내면 되지 왜 군대에 왔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인으로서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답했다. 근사한 이유로 둘러대긴 했지만 한국 국적을 따기 위해 입대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대답은 윗분들의 콧대를 간질이기에 충분했다. 연대장은 정신교육 시간마다 C를 앞으로 불러내 그의 올곧은 정신을 드높였고 간부들도 일반 병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C를 대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C는 곧 우리 곁을 떠났다. 일병 때 풋살을 하다 발목과 무릎이 나갔고, 그 뒤 일 년 넘게 군병원을 전전했다. 수술이 잘못돼 입원이 길어진다는 전언이 달마다 들려오다 이내 뜸해졌다. C의 존재도 빠르게 잊혔다. C의 근황을 다시 전해들은 건 전역할 무렵이었다. 부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는 후문이었다. 나라의 부름에 답한 그가 절름발이가 됐다는 소식이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렇듯 나 역시 온전한 몸으로 전역하지 못했다. 축구를 하다가 간부의 무릎에 얼굴이 차인 건 이등병 때였지만, 코뼈가 부러지고 턱관절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상병이 되고 나서였다. 군의관은 코뼈는 부러져도 고통이 없어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대로 살아도 문제는 없지만, 원하면 흉측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줄 수 있다고. 비용은 무료였고 대위님이 직접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미묘하게 틀어진 턱관절은 그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입을 벌릴 때마다 왼쪽 턱관절에서 두둑, 파열음이 나는 사람이 됐다.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군대에서 잃은 걸 떠올리는 사람이 됐다. 나는 군대에서 건강을 잃었다. 하지만 잃은 건 건강만이 아니었다. 시간을 바쳤다. 어른들이 무엇보다 귀하다고 말하는 시간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시간을 바쳤다. 그 시간에 원하는 걸 하지 못한다는 기회비용도 컸지만 간접비용도 컸다. 연속성이 중요한 물리학을 전공한 내게 2년의 공백은 치명적이었다. 놓친 분량을 따라잡기 위해 남들보다 두세 배의 노력해야 했다. 복학 시기마저 꼬이며 제때 못 듣는 수업이 생기자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꿈을 포기한 순간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군대에서 많은 시간이 주어지니 이 시간을 잘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전례 없는 국방변혁으로 인권의식이 잔뜩 오른 요즘엔 요즘에는 그런 비아냥이 더 많으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본 사람이라면 알 테다. 남는 시간을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선 남은 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루 종일 밖에서 훈련하고, 별의별 이상한 작업들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가 쌓인다. 간부와 선임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늘 긴장해야 하며 후임 앞에서 쪽팔리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육체·정신적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의 자유 시간은 말 그대로 휴식 시간이 된다. 전투화도 벗지 않은 채로 좀비처럼 누워있는 시간이 일상이 된다. 군복을 벗고 씻으러 가는 일조차 버거운 날이 많아진다. 그런 이들에게 낙오의 책임을 떠넘기는 건 잔인하다. 나는 군대에 다녀와 인생이 각박해졌다는 말이 비겁한 변명이 아닌, 정당한 항변이라 생각한다. 너만 힘들어? 다들 하잖아, 라는 말은 방어적 개인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더는 유효하지 않다. 무엇을 잃었는지 당당하게 말하고 응당한 보상을 요구해야 할 때다.
우리는 국방의 의무라는 미명 아래 건강과 시간을 희생해 왔다. 국방의 의무는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의무가 아니기에 합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최저시급을 적용해달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민감한 주제지만 나는 오래 전 사장된 군 가산점제가 부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군 가산점제가 위헌으로 판결이 난 원인은 간단하다. 군대를 갈 수 없는 여성과 장애인을 차별한다는 이유와 희생이 아닌 의무이기 때문에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차별의 사전적 정의는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뜻한다. 우리는 차별을 말할 때 불평등한 대우에만 방점을 찍어왔지만 중요한 건 평등한 지위라는 전제다. 군대에서 2년을 허송세월한 집단과 그 시간 동안 공부도 하고,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외국어 자격증도 따놓은 집단은 평등한가. 군 가산점제는 특혜가 아닌 불평등의 시정으로 봐야 한다. 의무이기에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 역시 앞뒤가 맞지 않다. 그렇게 엄밀하게 헌법을 따진다면 국민의 절반이 지지 않는 '국민의 의무'는 아무런 위헌 소지가 없는가.
하지만 나는 위헌 판결이 난 이유가 당시 많은 비군인이 군 가산점제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본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며, 그 원인은 제도의 이름에 있다고 본다. 군 가산점. 뭔가 군필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뉘앙스다. 군대를 갈 수 없는 이에게 거부감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애초부터 군 보상제라는 이름이 붙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보상에는 손해가 전제돼 있는 만큼 청년들이 무엇을 잃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을까. 또한 위법성을 따지기 전 정도의 문제를 따졌다면 좋았을 테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부가 문제라고 전부를 버리는 선택을 했다. 그리하여 군 가산점제는 폐지됐고,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수많은 청년들이 건강과 시간을 잃고 낙오자로 전락했다. 누군가는 절름발이가 됐고, 누군가는 꿈을 포기해야 했다. 군 가산점제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2010년 대 중반 군 가산점제에 찬성하는 비율이 70%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남녀를 불문한 수치였다. 우리는 유례없는 불평등을 시정하는 움직임의 변곡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남은 건 관련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