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하는 싱글맘의 나홀로 김장

91년생 엄마

by 테토솜

지난주, 퇴근하고 혼자 김장을 했다.

김장하는 날엔 굴보쌈

김장하기 전날 절임배추 10킬로를 주문하고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서

김치에 넣을 생새우를 한 근 샀다.

시장에서 구입한 생새우 1근 12000원


우리 집 엉아들이 김치를 너무 좋아해서

다양한 김치들을 집에서 직접 해 먹는다.


배추겉절이, 깍두기, 동치미, 열무김치, 파김치,

알타리 정도 소량씩 만들어 먹었다.


사 먹는 게 더 편하지만 해 먹는 게 더 저렴해서 번거로워도 그때그때 해 먹었는데

이제는 아이들도 많이 커서

김치를 많이 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월이 되면 어딜 가나 김장으로 분주한 집들이 많다. 그리고 난 김장철이 되면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엄마, 외할머니, 할머니.

엄마와의 김장은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외할머니, 친할머니가 김장을 하시면 우리 식구들 김치까지 챙겨주셨다. 늘 손에 무와 배추향을 묻히며 나와 아이들을 위해 김치를 담가주셨다.

엄마가 먼저 떠나시고 외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시고, 할머니도 오래전에 떠나셨다.
지금은 나는 김장을 '받는 사람’에서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과일육수로 만든 김장 양념에 생새우 넣고 남은 생새우는 새우젓 만들기
양념 버무리고 통에 담으면 김장 끝

싱글맘이 되고 나서 집밥을 지키는 건 어느새 ‘버티는 힘’이 됐다. 김장을 한다는 건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김장거리들을 하나씩 씻으면서
“이제 이걸 내가 이어가고 있구나.”
그 생각이 들면 혼자여도, 조금 서툴러도,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일하면서 김장을 하려면 시간과 체력을 쪼개 써야 한다. 다른 집들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하는 김장인데 나는 주방 한편에서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한다. 주변 지인들은 혼자 김장을 어떻게 하냐며 질색팔색한다. 근데 나는 오히려 재밌다. 힘들어도 김장통에 김치를 채우는 순간만큼은 묘하게 뿌듯하다.
“아, 올해도 해냈다.”
작은 성취감이 마음에 차오른다.

내가 만든 김치로 아이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언젠가 아이들도 알게 되겠지.
김장이라는 게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양념 묻은 손을 씻고 나면 괜히 어른들 생각이 난다. 어릴 때처럼 “고생했다” 하고 쓰다듬어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나를 칭찬해 준다.

“올해도 잘했다.”

나의 김장은
나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작은 의식이다.

내년 이맘때가 올 때까지 잘 버텨야지
조용히, 묵묵히,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3화출근 전 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