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짧은 파편
도서관 1층, 엘리베이터 앞
책을 반납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벽면 게시판의 포스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문화행사, 강연, 체험수업.
평소 같았으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흘깃 보고 말았을 것이다.
그날은 조금 달랐다.
느긋한 토요일 오후.
책을 반납한 김에, 새 책도 몇 권 빌리러 도서관을 찾았던 길. 문득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 앞에 멈춰 섰다.
포스터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하나를 살폈다.
올해 나에게 붙인 키워드는 '도전'이었다.
낯설고 불편한 것을 향해 아주 조금씩, 나만의 속도로.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을
이제는 '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친구 아이의 독서지도를 맡은 일이었다.
어느덧 6개월.
익숙해지는 만큼 또 다른 자극이 필요했다.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았다.
지금의 나로도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작은 흔들림을 원했다.
그날 내 눈에 들어온 포스터의 문구.
<힙한 독서법: 생각 채집 편>
금요일 저녁 7시-9시까지. 무료강연.
예전 같았으면 '식사시간인데' 같은 생각으로 미뤘을 테지만 기계적으로 신청버튼을 눌렀다.
스스로와 약속했다.
'신청했으면 고민은 금지. 그냥 가는 것'
금요일 저녁.
후다닥 저녁을 먹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조금 이른 시간, 강의실에 들어서니 몇몇 사람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낯선 기분.
오랫동안 드나들던 도서관인데,
오늘은 책을 고르러 온 게 아니라, 배우러 왔다는 사실 하나로 공간이 다르게 느껴졌다.
강의는 젊은 작가님이었다.
카피라이터이자 [생각채집]의 저자, 성미희 작가님.
'힙한 독서'라는 주제로 강연을 풀어갔다.
"힙하다"라는 말이 나에겐 익숙하진 않았지만
강사님이 설명한 정의는 꽤 인상적이었다.
'힙하다는 건,
노력하지 않음
애쓰지 않음에서 나오는 것'
결국 힙하다는 건 '나답다'는 말과 닿아있는 게 아닐까?
강의를 듣다가 기억나는 문장 하나가 있었다.
비우려면, 먼저 나의 곳간을 채워야지.
내 안의 곳간을 채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충분히 채워졌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문장’들이 스스로 걸러지고 모인다.
Q&A 시간이 되자, 참가자들의 손이 올라갔다.
나는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질문하고 싶었지만 망설였다.
극내향인에게는 손을 드는 행동부터 도전이다.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 지나면 다시 안 볼 사람들이야'
누가 손을 잡아 올리듯,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었다.
생각보다 질문하는 순간 주변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힘입어 질문을 하나 더 했다.
두 번째 질문까지 마쳤을 때,
오늘 두 가지 도전을 해낸 셈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도서관은 아직 문 닫지 않는 시간.
여운을 안고 나는 서가를 천천히 걸었다.
강의 중 '고전을 다시 읽어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책장에서 문득 눈에 들어온 한 권.
예전에 읽다 만 <양들의 침묵>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기분 좋게 도서관을 나왔다.
적당히 어둑해진 여유로운 금요일 저녁.
가로등 불빛은 따뜻하고,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생각했다.
결국 좋은 독서란,
잘 맞는 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겐 '힙한 독서'였다.
덧붙이는 다짐
-다양한 강연을 더 찾아다녀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그걸 오늘 해냈고, 그 덕분에 하루가 조금 괜찮았다.
재미가 붙었다.
독서법 강의가 1회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곧 이어지는 '표현채집 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남편도 꼬셔서 함께 신청했다.
6월의 도서관이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줄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