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의 방
작은 창문에 단 암막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작은 창문에 단 작은 암막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12시 반이었다. 현관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쟈니가 일 나가는 소리였다. 조금 더 뒹굴뒹굴하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3박 4일을 머문 침대가 이제 막 익숙해지던 참이었지만, 쟈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나는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며칠 전 간단한 수술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탱자가 달려들었다. 다른 고양이들보다 한참 작은 탱자는 어째서인지 무척 힘이 셌다. 작은 맹수를 어르고 달래기에 너무 지친 상태였다. 반격할 틈도 없이 탱자에게 시달리고 마는데 뒤따라 들어온 쟈니가 얼른 탱자를 안아 들었다.
“힘들 테니까 내 방에서 지내.”
하루 종일 보호자 노릇을 했던 그 애가 자신의 방을 권유했다. 하도 무뚝뚝한 태도여서 다시 되물을 뻔했다. 그 말 진심이냐고.
주관이 뚜렷한 언니와 쟈니에겐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했고 탱자와 데면데면한 엄마에게도 작은 무법자로부터 분리된 방이 필요했다. 독립적이지 않고 탱자와 분리될 필요도 없었던 내가 책장을 파티션 대신 놓은 거실에서 지내기로 했다. 어차피 숙소에서 생활하기도 해서 공간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방을 가지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술 후 휴식이 필요한 지금 내게는 독립적이고 탱자와 분리된 공간이 필요했다. 피를 나눈 자매여서 저절로 아는 것인지 그냥 눈치가 좋은 것인지 쟈니가 자신의 공간을 선뜻 내어준 것이다.
"어차피 큰언니 방에서 지내진 못 할거 아냐."
재택근무를 하는 큰언니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나는 쟈니의 호의를 거절할 정신이 아니었다. 엉망진창인 내 공간과 아주 다른 세계인 것처럼 깔끔히 정돈된 쟈니의 방에 발을 들여놓는 게 미안했지만 표현을 하기도 전에 기절하듯 잠에 들어버렸다.
한참 자고 일어나니 밥시간이었다. 나는 기다시피 부엌으로 향했다. 나만큼이나 고생한 쟈니는 부스럭 소리에 깼는지 나를 향해 뭐라 뭐라 웅얼거렸다. 대충 밥 먹은 후 약 챙겨 먹으라는 뜻이었다. 알았다는 대답을 들은 그 애가 다시 잠에 들었다. 나는 수술 후에 먹으려고 만들어둔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항생제를 챙겨 먹고 물을 많이 마신 후 다시 침대로 향했다. 하도 쾌적해서 더부룩한 상태임에도 눈이 절로 감겼다.
쟈니는 공간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데에 큰 공을 들였다. 아침엔 늘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이불을 털어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갠 뒤 돌돌이로 침대보에 붙은 머리카락과 고양이 털을 떼어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청소기로 바닥을 밀었고 때론 걸레질을 했다. 입은 옷은 그때그때 세탁기에 넣거나 옷걸이에 정리했다. 양말을 뒤집어서 넣는다거나 영수증이 든 옷을 넣는다거나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내가 해내지 못하는 것 전부 쟈니는 당연하다는 듯 해낸다. 이렇게 해야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다는 듯이. 이십사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졌지만 그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건 쟈니뿐이다. 이를 기특하게 여기기에 나는 너무도 철딱서니가 없는 편이었다, 라고 쓰면서 정말 당황스러워졌다. 내가 어떤 타입의 인간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니 정말 게으르고 지저분한, 정리 정돈이라고는 오타쿠 굿즈를 예쁘게 배열하는 것 말고는 없었구나 싶었던 것이다.
나는 게으른 나를 변호하기 위해 쟈니가 유난스럽게 군다고 생각했다. 언제 또 이사 갈지 모르는데 굳이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늘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뿌리를 내려본 적 없으니 또다시 떠날 준비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청소기를 돌리는 쟈니에게 말하고 싶었다. 한 도시에 5년 이상 산 적도, 한 집에 2년 이상 지내본 적도 없는데 굳이 그러는 이유가 뭐냐고 짜증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은 이유는 쟈니라면 “언니는 어차피 죽을 거 왜 살아?”라고 받아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차가운 얼굴로 맞는 말을 할 걸 생각하면 왠지 얄밉고 짜증이 날 것이다. 3살 어린 쟈니를 말로 이겨본 적은 성인이 되고 거의 없다는 사실도 내 입을 다물게 하는 데 한몫했다.
그렇게 냉정하고 차가운 쟈니가 소중히 가꾼 공간을 내게 내어 줬다는 건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굴던 그 애가! 침대에 누울라치면 경기를 일으키던 그 애가! 이물질 취급하던 나를 자신의 방에! 머무르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오버할 만한 일이다)
그 다정한 배려 덕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요양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것들과 언제나 놀 준비가 되어있는 탱자, 그리고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공간의 보호를 받으며 나는 꽤 괜찮게 회복해낼 수 있었다.
떠날 시간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식탁을 닦은 행주를 깨끗이 빨았다. 그 뒤 꾹꾹 눌러 갠 빨래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양치질을 한 뒤 수챗구멍에 엉켜있는 머리카락을 긁어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마침 쓰레기봉투가 꽉 차 있어 새것으로 갈았다. 거실부터 부엌, 쟈니의 방까지 청소기를 열심히 돌렸다. 쟈니의 방에는 신세를 졌으므로 특히 더 신경 썼다. 이불을 정리하고 돌돌이로 먼지를 싹 걷어냈다. 비가 언제 올지 모르니 창문을 반 닫아뒀다. 이미 용돈 준 삼만 원이 수술 보호자에게 주는 거였다면 이건 방을 사용하게 해 준 답례. 나는 그 애의 정갈한 책상에 만 원을 한 장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간단하게 청소를 했고, 난 이만 가봐야 하며, 용돈을 놓고 가겠다, 적은 돈이지만 잘 쓰라는 고마움과 약간의 생색을 담은 메시지도 덧붙였다. 끝없는 업무에 지쳐 잠든 언니에게 작게 인사를 하고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탱자에게 뽀뽀를 했다. 그리고 미리 묶어둔 쓰레기봉투를 들고 현관을 나섰다.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우리 자매는 어딘가 붕 뜬 삶을 살아왔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작은 집에서 더 작은 집으로 옮겨 사는 삶은 우리를 부유하는 먼지같이, 레옹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화분처럼, 발로 차기 좋은 위치에 놓인 돌멩이처럼 키워냈다. 사랑하며 살기에 우린 모두 고단함에 절어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당장의 안락함을 필요로 했다. 당장 몸을 누이고 피로를 풀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우린 또 떠날 테니까. 그때를 대비해 공간에 정을 주지 않았다. 공간과 물건에 대해서만큼은 시종일관 시니컬하게 굴었다.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쟈니는 안락함을 위해 꾸준히 정돈을 해나갔다. 떠날 땐 떠나더라도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고 버리고 닦아서 광을 낸 자리에 몸을 뉘였다. 그 어려운 것들을 쟈니는 끝내 해내고야 만다.
문득 무서울 정도로 유난스럽게 구는 그 애의 태도가 실은 두려워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애는 너무 두려워서 아무것도 자신을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마음을 벼리듯 공격적인 청소를 하는 것이다. 쟈니만의 불안한 삶에 대항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정착하고 말리라는 굳은 선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렁한 나와 달리 쟈니의 단단한 자아는 그렇게 갈고닦은 방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경외감이 든다.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쟈니가 보낸 답장을 확인했다.
-ㄱㅅㄱㅅ
그 애 다운 단답이었다. 그런 애가 내게 해줄 수 있던 최고의 배려를 생각한다. 공간의 보호를 받아본 최초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지, 잃지 말아야지. 나는 그래서 일기에 오늘을 기록해본다.
2020.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