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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일기] 불만이 아니라 의견을 말하세요

내 불만이 받아들여지려면...

by 최호진

벌써 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정말 휙휙 지나갑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회사 출근 도장을 찍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나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저는 휴직자 모드에서 직장인 모드로 금세 돌아가 버렸습니다. 물론 휴직을 하면서 만든 루틴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지만, 삶의 축이 직장생활로 많이 옮겨진 것도 사실입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루의 가장 긴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했으니까요. 얼마 전 아내와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내가 한 마디 하더군요. 이제 죄다 회사 이야기 뿐이라고요. 뭔가 가슴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뭔가 직장생활에 찌든 것 같달까요?


복직 초기엔 여유로워 좋았는데 그 사이 하나 둘 일도 쌓여가고 있습니다. 요며칠은 정말 정신이 한 개도 없었는데요. 덕분에 멘탈도 나가 너덜너덜 해졌습니다. 단순히 바빠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리한 일이 잘 안돼 꽤 삐걱거렸습니다. 숫자도 몇 개 틀려서 지적도 받았습니다. 우리 회사는 숫자에 매우 예민한데 말이죠. 이런 일이 벌어지면 참 저 자신에 대한 회의감도 많이 듭니다. 아 실컷 쌓아놓은 자존감이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요?


"나는 회사랑 안맞는 인간일까? 다시 휴직을 해야 하나?"


혼자서 농담처럼 되뇌었지만 말도 안되는 생각입니다. 지금 그런 생각은 도피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다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러니 월급을 주는 거라며 말이죠. 회사 일이 재밌으면 돈을 내고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말이죠.


불만이 쌓이네


오랜만에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하나 둘 불만도 쌓여갔습니다. 쓸데 없는 일들이 여전히 많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조직의 관리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너무 형식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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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매월 한 번씩 소비자 교육이라는 걸 하는데요. 해당 부서에서 문서를 내보내면, 우리는 그 내용을 열람했다고 서명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 내용은 대부분 안 보고 넘어가고요. 시험도 치러야 하는데요. 이미 공유된 답안으로 문제도 읽지 않고 답을 씁니다. 굳이 이렇게 하면서까지 내 시간을 갉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히려 소비자 교육을 한답시고 힘든 교육을 안시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문서를 보고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워드 문서로 보고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려고 봤더니 속 내용은 PPT인 것들이 많습니다. 알고보니 문서는 doc 파일이었는데 PPT처럼 그림도 들어가고 그렇습니다. 그럴거면 그냥 PPT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도 순간 하게 됩니다. 워드로 보고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는 단순히 문서를 워드로만 쓰자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자기 광이나 팔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말도 안되는 걸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직장인으로서 예절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불만도 이래저래 조금씩 쌓여갑니다. 아 제가 너무 불만족하며 살아가는 걸까요?


불만이 아니라 의견을


꼭 불만만 쌓이는 건 아닙니다.(라고 변명을 해봅니다.) 좋은 점도 "더러" 있는데요. 얼마전에 들었던 점심시간의 유튜브 라이브 강의는 신선하면서도 유익했습니다. 우리 회사 연수 담당 부서에서 기획한 강의였는데요. 최신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는데, 회사 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학습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돈주고 들을 강의를 공짜로 듣게 해주니 감사하더라고요. 와인 구독업체인 퍼플독의 대표님께서 구독이 단순한 정기 배송을 넘어 취향을 저격해야 한다는 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배달의 민족에 계신 분이 들려준 UX 이야기도 재미있었고요.


특히 배달의 민족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는데요. 고객의 소리를 단순한 민원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회사 제도의 개선 사항을 찾아내는 데 활용한다는 것도 좋아보였습니다. 10살 아이의 이야기까지 귀담아 들으려는 직원들의 태도가 오늘의 배달의 민족을 만든 것 같아 보였고요. 대표와 직원들의 허물없는 대화는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 회장님이 진행하신 직원들과의 대화와 느낌도 사뭇 달라 보였고요. 우리 회장님의 대화는 뭔가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배달의 민족 사진은 그래 보이진 않았거든요. 물론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제 느낌적인 느낌일 뿐이겠지만요.


그런데 곰곰이 강연을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사실 대표의 관점이 아니라 직원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 수 있을지 알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 라이브에 댓글로 질문을 남겼습니다.


"대표와 잘 소통하려면 직원들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다소 추상적인 질문이었는데요. 강사님의 답변이 조금 충격적이어서 머리가 띵했습니다.


"직원들은 불만이 아니라 의견을 말해야 해요. 단순한 개인적 불만인지 회사에 필요한 상황인지 분별해야 하고, 그것을 의견으로서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불만이 아닌 의견을 말하라는 게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불만과 의견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개인적인 것이냐 진짜 조직을 위한 것이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대안의 존재 여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가 불만을 제기하면서 개선점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의견이 될 수 있겠지만 그냥 불만만 이야기 한다면 구시렁대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불만도 필요합니다. 배달의 민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불만이 개선사항을 찾아가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불만이 좋은 것이라며 그것만 늘어놓는 것은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불만없이 살아가리라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회사에서 내가 쌓인 불만에 대해서 그것을 의견으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강의를 통해서 할 수 있었습니다.




김호 작가의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에서는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나옵니다. 책을 읽다보면 질문 뿐만 아니라 말 자체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꼭 좋은 질문이 아니더라도 좋은 말만 해도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괜히 말 한 마디에 천냥빚도 갚는다고 할까요. 불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불만이 아니라 의견을 말하는 연습을 지금부터 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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