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단상들
버리고 있다. 신년 초부터. 연초엔 아무것도 버리지 말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방을 쓸더라도 바깥에서 안쪽으로. 복이 나가지 않게. 그가 해준 말이다. 내(게 할당된) 복은 내가 지켜야 하므로.
버리기
한 해의 끄트머리. 냉장고에 웅크리고 있던 묵은 음식들까지 모두 내다버리고도 홀가분하지 않은 마음. 무엇을 덜 비웠나. 무엇을 더 버렸나.
거울
낡은 손거울 목이 부러졌다.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욕실 세면대 옆에 놓여 있던 목 부러진 손거울. 어느 날 거짓말처럼 똑 소리를 내며 분질러진 손잡이 때문에 2년간이나 거울 몸통만 들고 사용해왔다.
뒷모습
손거울의 용도는 한 가지였다. (나는 볼 수 없는) 나의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것.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않을) 내 뒷모습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미리 점검하는 행위. 보기 흉하게 드러나는 뒷가르마는 잘 가려졌는지, 뒷머리가 납작하게 눌려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했다. 하얀 가르마가 조금이라도 드러나 있으면 머리카락을 흩뜨려 가려야 했고, 볼륨이 죽어 있으면 그럴듯하게 부풀려야 했다. 그게 내 뒷모습에 대한 책임이라 여겼다. 내가 잘 볼 수 없는 나의 (대개 취약한) 부분을 타인의 시선에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고 덮는 것. 책임과 강박은 종이 한 장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등지다
뒷모습을 보기 위해 나는 거울을 등져야 했다. 단단한 유리의 감촉을 등지고 큰 거울에 작은 거울을 비추어 보며 비스듬히 엿보았던 나의 뒤통수. 누군가 내 무방비 상태의 뒷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정면으로 거울을 보는 횟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메모장을 더듬어 '손거울'이라는 단어를 찾아본다. '목 부러진 손거울 속으로'라는 문구가 포함된, 쓰다 만 시를 발견한다. 그랬었구나. 2년 전에도 목 부러진 검은 손거울은 내게 강한 심상을 불러일으켰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완결된 시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
결심
손거울을 내 자의식의 유비(類比)로 삼는다. 상징적인 의미를 떠올리며 부러진 손거울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예컨대 이런 태도. 이제야 너를 버린다. 종내 거울의 목이 무너지고, 눈곱 낀 시야처럼 흐려진 유리를 새삼 확인하고 나서야. 버린다. 더 이상 뒷모습을 비추어볼 수 없다. 거울을 내다버린 날, “내가 나를 염탐하던 시간마저 버리려는 새해 결심"이라고 메모장에 적어둔다.
복
"나는 복이 모자라 복을 버리고, 구멍 난 복의 자리에 들어앉아 달력을 넘긴다"라는 문장도 덧붙인다.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쓸모
버리려고 끄집어낸 물건들. 그와 함께 당근 마켓을 이용해보기로 한다. 돈을 내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버리는 것. 그렇다면 버리는 것도 이득이 되니까. 오래되거나 사용하지 않은 물건에 가격을 매긴다. 문의해오는 사람들과 채팅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거래가 성사되고 새 주인에게 물건을 넘겨주면서, 한번 더 생각을 수정한다. 생각의 흐름은 다음과 같이 변화한다.
버리다 -> 돈을 내고 버리다 -> 돈을 받고 버리다 -> 버리는 것이 아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 본연의 쓰임새를 되찾아줄 주인을 새로 찾아주는 것. 그의 말에 크게 수긍한다. 이왕이면 새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길, 좋은 첫인상을 남기라고 마지막으로 쓸고 닦아준다.
이야기
내겐 오래된 물건이 남에겐 새 물건이 된다. 없던 쓸모가 새로운 쓸모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만난다. 중고 거래의 덤이다. 구매 후 거의 사용하지 않던 디지털 피아노는 "피아노를 몹시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 때문에 구매하고 싶지만 너무 높은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아이 엄마에게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간다. 그의 요구로 구매했다가 서너 번 사용하고 만 휴롬은 "요리에 관심이 많아 착즙기를 가지고 싶어하는 고등학생 아들"을 둔 특별한 사연의 엄마에게 좋은 선물이 된다.
찾아주기
신년 초부터 '물건에 새로운 주인 찾아주기'로 바쁘다. 새것과 다름없는 쓸 만한 물건들도 저렴한 가격에 타인에게 넘긴다. 차곡차곡 쌓이는 소액의 돈을 모아 그가 봉투에 넣어둔다. 총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본다. 작은 복을 하나 만든다.
들이기
계획을 조금 변경한다. 버린 물건으로 번 돈의 일부를 조금 헐어, 버린 물건을 대체할 새 물건을 내게 선물하기로 한다. 목이 튼튼한 작은 손거울을 다시 장만하기로. 달라진 게 뭐냐고? 내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동작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신, 조바심으로 훔쳐보지 않고, 흥미롭게 관찰하기로 마음먹는다. 버리고, 새로 들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간감, 새로운 사물성을 감각하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 소박한 복이다.
신춘문예
작년에 이어 두 명의 아는 이름을 발견한다. 얼굴과 이름을 아는 정도의 거리만 유지했고, 어쩌다 두어 마디 말을 섞었던 것이 전부였지만. 이상하게도 이름은 맹렬하게 날아오는 화살처럼 내 몸에 꽂힌다. 마치 내가 찾고 있던 이름처럼. 이름은 자극이 된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또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질투
질투와 시기는 같은 거라고 언젠가 그가 말했다. 나는 같지 않다고 항변했고 서로 각자의 생각을 개진했다. 질투와 시기의 뿌리는 하나일지도 모른다. 부럽다,라는 공통 감정. 그러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질투'는 심리적으로 납득할 만한 대상(혹은 대상이 이룬 성취)을 수용할 수 있는 건강한 감정. '시기'는 납득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다. 내 생각은 그랬고,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거울과 시
질투할 만한 시를 찾는다. 거울,에 관한 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침 거울을 버렸기에. 거울에 관한 시를 많이도 썼다. 무수한 시인들이 그랬고, 어쩌다 나도 그랬다. 거울은 닳고 닳은 유비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에 관한 시를 쓰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 시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어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은 존재한다. 시선은 지속된다. 바라보(려)는 마음이 멈추지 않는 한.
올해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를 옮겨본다. 당선자 남수우는 랩을 좋아하는 90년대생 20대 청년이다. 뒷모습, 거울, 먼 곳, 방, 문틈, 손잡이, 뒤통수, 모서리 같은 단어들을 놀랍고 신기한 마음으로 읽는다. 이 낯익고 애정하는 단어들에 매달려 시를 썼던 어느 때가 떠올라서. 그런데 이렇게 쓰지는 못해서.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그는 그 먼 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이곳이 아니길
이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의 탓은 아니지
거울에 남은 손자국을 따라 짚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삼킨 태양을 생각했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
따갑게 몸 안을 맴돌고 있을 거라고
뒷모습뿐인 액자를 돌려세운다
거울 속에는
하얀 입김으로 떠오른 민낯들이 너무 많았다
- 남수우,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전문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의 시처럼, 질투는 나의 힘이 될 수 있을까. 건강하게 질투할 만한 많은 대상과 마주치는 한 해가 되기를.
질투가 건강한 자극으로, 자극이 자족할 만한 반응으로 이어지기를. 질투할 대상을 만나는 것도 나의 복이 되게끔. 아니 나의 복으로 (기어코) 만들게끔.
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
(20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