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서늘한 온기를 따라
사선으로 떨어지는 햇살
그늘은 길게 늘어져
차가워진 땅을 감싸 안는다
한때 푸르던 잎은
스스로의 무게에 지고
마지막 색을 내어놓는다
무르익은 열매는
손길을 기다리지 못해
하나둘 낙하한다
바람은 그 소리를 따라
묵은 냄새를 씻어 내고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듯
빛도, 온기도, 시간도
그 무게를 내려 놓는다
이토록 가볍게,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가는
가을의 낙하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은 건
더 높아진 하늘,
더 멀어진 구름,
그리고
너를 향한 마음
가을을 보며 낙하의 의미를 생각했다.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떨어진다.
잎도, 열매도, 마음도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가 있다.
떨어지는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라 믿는다.
떨어짐 속에서 비로소 멈추고, 그 안의 질서를 다시 세운다.
낙하는 끝이 아니라 재정비의 시간이다.
가볍게 내려놓은 것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나를 세우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