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 낙하

자연

by 여름

서늘한 온기를 따라

사선으로 떨어지는 햇살


그늘은 길게 늘어져

차가워진 땅을 감싸 안는다


한때 푸르던 잎은

스스로의 무게에 지고

마지막 색을 내어놓는다


무르익은 열매는

손길을 기다리지 못해

하나둘 낙하한다


바람은 그 소리를 따라

묵은 냄새를 씻어 내고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듯

빛도, 온기도, 시간도

그 무게를 내려 놓는다


이토록 가볍게,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가는

가을의 낙하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은 건

더 높아진 하늘,

더 멀어진 구름,


그리고

너를 향한 마음



가을을 보며 낙하의 의미를 생각했다.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떨어진다.

잎도, 열매도, 마음도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가 있다.

떨어지는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라 믿는다.

떨어짐 속에서 비로소 멈추고, 그 안의 질서를 다시 세운다.

낙하는 끝이 아니라 재정비의 시간이다.

가볍게 내려놓은 것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나를 세우는 법을 배운다.



keyword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