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by 고운로 그 아이


한파가 똬리 튼 삼거리에서

언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길가에 모여 있는 노신사의 무리를 본다

그들은 김을 뿜어 내는 붕어빵을 한 개씩 들고

어릴 적, 얼음을 지치며 놀던 때처럼

추위 따위는 가볍게 제치고 서 있다

마주 보며 붕어빵을 베어 물고 있는 그들에겐

검버섯 대신 장난기가 얼굴을 뒤덮고 있다


그들은 해맑게 웃는다

무겁도록 자란 세월을 목마 태우고도

서로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소년 시절, 갯버들이 햇살을 간지럽히던 따스한 날

개울로 달려가 바짓단을 걷어붙였을

피라미, 버들치를 잡을 때까지

따라오는 해를 멀찌감치 따돌려 가며,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빠져나가는 물고기들을 붙들려고

신발은 통발이 되었 것이다

그들만큼 잔꾀가 많아진 물고기들도

요리조리 재간만 늘어갔을 이기에


소년들은 물고기를 잡았을까

개울이 개천으로 흐르고 강과 바다로 나아가는 동안

그들의 꿈도 작은 송사리에서 큰 메기가 되었겠지만

이제 다시 그들은 붕어빵 한 개를 손에 들고

마치 개울에서 건져 올린 갓 잡은 붕어인 양

더는 바랄 것 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본다

그들이 인생에서 올린 것은

에 있는 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통발에 걸려든다


약삭빠른 피라미 한 마리를 못 잡아

흙탕물을 함께 뒤집어쓰던 유년의 한가운데로

돌고 돌고 돌아온,

노년의 그들








며칠 전 길을 가다가 길가에 서서 붕어빵을 먹고 있는 노신사분들 네댓 명을 발견했다.

모임 날이었는지 세미정장을 입은 그들은 한 손에 붕어빵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엄동설한의 길거리에서 그 붕어빵이 따뜻하고 맛있어서 웃고 있었을까. 그들은 어릴 적부터 많은 것을 함께해 온 사이 같아 보였다. 딱지치기, 공차기, 참외 서리, 물놀이 등. 함께 놀고 함께 커온 사이일지 모른다.

혼자서는 하지 않을 행동도 친구와 함께라면 배짱과 용기가 생긴다.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먹는 행동도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을, 공모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탈의 하나일 수 있기에 웃음이 나오는 것 아닐까.


그들에게 서로는 이제 버릴 일 없는 내 사람인지 모른다.

요즘 인문학 강의로, 손절해야 하는 유형에 대해 많은 영상들이 소개되어 있다. 나이 들수록 많은 사람이 필요 없다,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런 논리를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나는 이런 강연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랄까. 나에 대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해주어야 참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식들부터 손절해야 할지 모른다. 잔소리는 싫어해, 요구사항은 많아, 내가 준 만큼 돌아오지 않아, 약속을 어겨 등등 그들이 말하는 손절 조건에 해당되는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식들을 손절하기는커녕 그럴수록 더 사랑하고 품어주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굳이 등가교환의 법칙을 적용시킬 필요가 있을까.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밥을 함께 먹는 그 순간이 즐겁기라도 하다면, 내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설고 설레는 장소에서 함께하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완벽하진 않아도 그저 나와 같은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이유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이 관계를 유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도 나를 너그러이 수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립을 자처하기보다는 얕은 관계라도 공존을 택하면 좋지 않을까. 고립은 정신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니.


영국 정부에는 외로움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고 한다.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가 신설되었다.

외로움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서 정부 차원에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부서라고 한다. 고립된 개개인을 사회적으로 연결해 주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수립하여 A connected society(연결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한 말이 소소한 감동을 주었다.

'인생은 너무나 남루한 것이어서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괜찮은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다.'

무심코 들은 말이지만 큰 공감을 준 말이었다. 자주가 아닌 가끔이라도 밥 한 끼를 함께 하는 사이라면 그 사람과는 인생에서 꽤 의미 있는 사이란 생각이 들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와 밥까지 먹을 정도의 사람은 지구상의 지극히 일부분뿐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고작 그 정도의 기쁨을 내게 주는 사람이라 해도 나에게는 희귀한 존재들이고, 그런 여러 관계가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요일 연재
이전 17화링(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