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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리

by 고운로 그 아이


그 자리는 늘 행간(行間) 같은 곳

복잡한 문장을 해석하느라

어깨가 묵직해질 때

아버지는 그곳으로 가셨다


머그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

먼산에 시선을 던져 놓기도 하고

화초를 돌보려고 베란다에 나가

귤나무 잎을 닦거나

쓰러진 꽃기린의 줄기를

지지대로 세워 놓기도 하셨다

때때로 스포츠 중계방송을 크게 틀어 놓고

가벼운 환호와 탄식을 반복하며

짓누르던 무게를 내려놓으셨다


행간에 머무르다 보면

무거운 문장이 정리되고

알 수 없던 관용어가 이해되기도 한다

물음표가 마법처럼 느낌표로 바뀌면서

다음 행을 마주할 힘이 난다

비로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잡초가 자라 있는 아버지의 행간에 들어와

떨어져 있는 질문을 주워 들었다

어쩌면 나도 아버지에게 행간이 아니었을까?

나의 그늘 안에서 아버지의 미소는

유월 햇살처럼 언제나 따사로웠다







모카레몬 작가님의 장미와 우산이란 글을 읽고, 그동안 나는 엄마에 대한 글은 수없이 쓰면서도 아버지를 주제로 한 글은 쓴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미와 우산은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가정을 일구시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은 글입니다.


저희 아버지 역시나 가정을 위해 책임을 다하시는, 자상하고 착실한 가장이셨습니다.

더구나 막내인 저를 참으로 귀하게 여기시고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결국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저 자신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을 알고 작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그리움 담아서 많이 쓰시면 되지요, 토닥토닥'


그리하여, 오늘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한없이 부족한 시 한 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행간 같은 머그잔을 참 좋아합니다.

어쩌면 머그컵은 내게 영혼이 자유로운 시간을 뜻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쓸 때도 항상 머그컵에 찻잎을 띄워 놓고 씁니다. 생각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라고 말이지요.


이 글을 쓰면서, 소파에 앉아서 머그잔에 든 차를 마시며 먼 곳을 응시하시던 아버지의 동영상을 틀어 보았습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지만 나에게는 오늘과도 같은 시간이고 영원히 감사하고 사랑하는 시간들입니다.


아버지의 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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