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를 보신건지 몇 주 전 초음파 보러 왔던 나를 기억하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인사해 주셨다.
"어서 오세요.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셨죠?"
"네. 선생님. 근데 잘 지내지는 못한 것 같아요."
"왜요? 또 인터넷 보고 그런 거 아니에요? 에이~ 그런 거 보지 말라니까~"
"선생님...(글썽글썽) 열무가 아픈 거 같아요."
(이전 병원에서 들고 온 진료기록들을 보며)
"어!? 일단 (초음파실로) 들어가 봅시다."
"음... 걱정되는 상황이긴 하네요. 태아수종은 아니에요. 태아수종은 태아 내부에 물이 2군데 이상 차야하는데, 열무는 우주복을 입은 것처럼 외부로만 물이 차 보이죠? 이 경우는 낭성히그로마라고 합니다. 우주복을 입은 것만큼 부어 있다는 거예요. 목투명대는 5.8mm네요. 일단 융모막 검사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설명은 나가서 할게요. 초음파를 보면서 해야 할 질문 있어요?"
늘 웃어 보이던 선생님의 얼굴에서도 이때만큼은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열무는 2주 전보다 2배는 더 부어있었고, 이제는 배 부분만이 아닌 전신을 둘러싼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대로 열무를 보는 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질문이라도 해서 시간을 끌고 싶었지만 나의 최선은 이것밖에 안되었다.
"심장은 잘 뛰나요?"
"네. 박동수도 정상이고 심장은 잘 뛰고 있습니다."
눈물이 계속 차올라 열무의 모습이 자꾸만 뿌옇게 보였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
"초음파 보면서 해야 할 이야기는 아니니까 나가서 이야기할까요?"
진료실.
"일단 이게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명확히 해두고 싶어요.
그리고 현 상황에서 열무 엄마, 아빠가 열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이 표를 보시면 목투명대가 5.7mm이면 이쪽에 속합니다. 염색체 이상일 경우가 50.5%이고 뱃속에서 자연유산될 경우는 10%입니다. 염색체 이상이 아니더라도 심장 등 기형일 확률은 24.2%이고 건강하게 태어날 확률은 30%입니다.
근데 이 표는 단지 NT두께(목투명대)만 두꺼운 태아들을 나타낸 지표예요. 열무처럼 낭성히그로마는 이 표(다른 표)를 더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설명)...... 그래서 융모막 검사는 불가피해 보이고요. 이 경우는 미세결실 검사도 필요합니다.
이 검사는 염색체 검사이고, 열무가 왜 아픈지 이유를 알 수도 있어요. (설명)...... 융모막 검사는 (설명)...... 유산의 확률이 있지만(설명)...... 비용도 비쌉니다.(설명)......"
(비용은 180만 원에 가까웠다.)
설명을 들으며 쉴 새 없이 울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휴지를 뽑아 주셨다.
"지금 우리 열무는 태어날 확률 30%, 건강하게 태어날 확률 13% 정도 된다는 말씀이시죠? 치료의 목적이 아닌 진단의 목적인 거고 이 검사로 낭성히그로마의 원인이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거네요?
혹시 다음에 왔을 때 차도가 있어 보이면 아기가 괜찮아지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걸까요?"
열무가 건강하게 태어날 확률은 이 표에서 보이는 30%의 확률 속에서도 또 일부에 불과했고 그 확률은 13% 정도였다.
"네. 그렇지만 다음에 왔을 때 차도가 있어 보인다고 해서 괜찮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운증후군도 이 증상이 있다가 가라앉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명심하셔야 할 점은 확률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예요. 검사는 당연히 하는 게 맞아요. 어쨌든 결정은 열무 엄마, 아빠가 하시는 거니까 진료실 밖에서 잘 생각해 보시고 결정해 주세요."
검사를 목적으로 왔지만 수치로 설명을 들으니 더욱 혼란스러웠고 눈물만 났다. 이 검사를 통해 진단명이 나와도 견디기 힘들 것 같았고, 이를 통해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게 된다면 그 또한 다른 기형을 의심하고 검사하느라 피가 마르는 여정이 될 터라 두려웠다. 머릿속에는 정리되지 못한 온갖 생각들이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뱃속에서 열무가 없어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우리 열무는 13%의 확률에 있을 거야. 그리고 조금 아프다면 치료하면 돼.'
'만약 다운증후군이라던가, 염색체의 문제로 많이 아프게 태어난다면 아이와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남편에게 검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겠냐고도 했다가 금세 또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 나는 이런 나를 참으로 바라보는 게 가장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기형아를 낳아 잘 키우는 훌륭한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그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해보기도 했지만 매번 '끝까지 모르고 낳았으면 모르겠지만 미리 알면서도 임신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답변이 도출되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라고했다.)
눈앞에 건강하지 못할 87%의 확률을 맞닥뜨리니 결국 이기적인 생각도 하게 되었고, 생각조차 죄스러워 울부짖으며 열무에게 못된 엄마라서 너무 미안하다고 수없이 빌고 또 자책할 뿐이었다.
애초에 나에게 훌륭함까지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그 자질은 훌륭한 것과는 다르다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얘기해 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이런 나를 마주하는 게 힘들긴 했다.
검사라는 당연한 결정 앞에서 아주 큰 무게 추를 스스로 안고 불안에 떨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우리는 아직 중대한 무엇을 결정할 만큼 아는 것이 없고, 자기가 하는 추측들 또한 현재는 뇌피셜에 불과해.
자기가 검사를 못하겠다고 하면 나는 그 의사에 따르겠지만, 그래도 열무가 어디가 왜 아픈지는 우리가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기도 잘 생각해 봐줘."
T남편의 이성적 사고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F와이프의 감정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