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May 13. 2023

당신이 운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육아와 집안일로 종일 집에만 있다가, 밤 10시쯤 되어 아내에게 호수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얘기하고 산책을 나왔다. 동네 하천과 호수를 둘러서 걷는 코스는 밤이 되면 반려동물과 함께 나온 사람들, 러닝 크루, 학원 끝나고 이성 친구와 풋풋하게 걷고 있는 학생들, 손 꼭 잡고 나온 노부부 등 여러 모습들로 가득하다. 물론 나 같은 뚱땡이도 있다.


 한 여성이 걸어간다. 레깅스 위로 올려 신은 스포츠 양말과 워킹화, 윈드브레이커까지 갖춰 입고서 팔을 휘적이며 간다. 다이어트 매거진을 연재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개인사 개인의 영역이다. 어느새 그녀는 멀리 사라져 간다.


 한참을 천천히 걸었다. 농구 코트에는 한 뚱뚱한 남자아이가 혼자 농구 연습을 하고 있다. 스승이 없는 것 같다. 슛 할 때는 릴리즈가 너무 빠르고 손목의 스냅은 부족하다. 기초적인 드리블 연습도 안 된 것 같은데, 자꾸 비하인드 드리블이나 크로스 오버를 하려는 걸 보니, 멋있고 싶나 보다. 중학교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데, 한창 그럴 나이겠다 싶어 안쓰럽다. 






 나도 중학생 때 농구 코트에 혼자 나와 연습을 하던 때가 있었다. 농구를 너무 잘하고 싶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운동장을 1.2km 뛰고, 20분 정도 드리블 연습을 하고, 슈팅 200개를 채우고 집에 갔다. 매일 그렇게 살다 보니, 또래 아이들보다는 농구를 꽤 하는 편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만난 키 큰 친구들, 점프하는 탄력이 넘치는 친구들, 타고난 스피드로 드리블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선수할 것도 아니고, 나처럼 혼자 시간 내서 노력한 친구들은 없었다. 그냥 잘하는 친구들이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재능의 차이일까, 신체의 차이일까, 내가 다른 노력을 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키 큰 친구들의 블로킹을 피하려면 점프력을 더 높여야 했고, 매일같이 학교 끝나고 혼자 점프슛, 페이드어웨이슛을 연습했다. 학교 CA 활동으로 하던 농구부 시합 도중, 무릎에 격렬한 통증을 느끼고 교체된 후에,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무릎이 왜 아플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구조적으로 당연한 결과였다. 내 다리는 약간 X자로 되어 있는 외반슬, 하중을 지탱하기에는 굉장히 불리한 구조다. 몸무게가 가볍지도 않은 내가 계속 점프 연습만 하니, 무릎은 견디질 못했고, 그렇게 나는 점점 CA에서도 주전으로 뛰는 일이 적어졌다. 


 다리를 일자로 펴고 싶었다. 무릎 사이에 책을 넣고 발목과 허벅지에는 밴드를 감아서, 아픈데도 무작정 참고 있어보기도 했다.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에, 유아가 아니고서는 일리자로프 수술이라는 대수술을 하지 않는 이상 교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절망했었다. 그냥 나는 평생 이 못생기고 부족한 다리로 살아야 하는구나.






 스스로 발견한 단점은 나를 계속 갉아먹었다. 언제나 함께하진 않아도, 불현듯 나를 엄습하는 내 몸에 대한 불만족은, 내 몸의 단점을 지속적으로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X자 다리인 사람이 발이 바깥쪽으로 약간 돌아가면, 즉 팔자걸음이 되면, 곧은 다리가 된다.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발 끝이 일자일 때 무릎이 안쪽으로 향한다면, 발끝을 팔자로 벌리면 무릎은 정면을 보게 된다. 이런 식으로 X자 다리인 사람들 중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팔자걸음이 된 사람들이 많다.


 팔자걸음은 걸을 때 발바닥 아치와 아킬레스건의 개입이 적다.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X자 다리에 팔자걸음을 걷고, 발바닥 아치는 걸을 때 무너져있으며, 아킬레스건은 짧다. 일자 다리인 사람보다 종아리의 내측에 하중이 많이 걸리다 보니, 다리통은 지속적으로 굵어진다, 이미 내 몸은 손 쓸 수 없이 못난 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무엇일까. 억울하다. 내가 나의 모습을 인식한 시점에 이미 나는 이 상태였다. 몸통이 굵어서 팔 운동을 아무리 해도 몸통보다 작으니, 몸이 엄청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두께감은 평면감을 구축해서, 원래 넓이만큼 넓어 보이지도 않는다. 미의 기준은 왜 캡틴 아메리카나 토르, 줄리엔 강 같은 몸매일까. 다들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나보고 노력이 부족하고 의지가 부족하다고 한다.






 내가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더 인체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게 된 계기는, 이런 몸에 대한 불만인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내용들을 공부하고 탐구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나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런 몸인 것에 내 잘못도 분명히 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방식과 잘못된 양으로 먹은 게 있다. 하지만 내 탓이 아닌 부분도 명확하다. 내가 받은 DNA와 미토콘드리아, 의식도 없던 시절 먹었던 분유와 우유,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소아 비만 유무, 유아기에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아킬레스건 구축, 음식에 대한 자기 통제 교육의 강도, 생활 속의 운동 습관 등등,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내가 고통받아야 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인가.


 여기가 출발점이었다. 내 탓인 부분과 아닌 것을 나눠보자. 내가 잘못한 것부터 하나씩 고쳐보자. 내가 잘못한 것을 다 고치고 더 나은 사람이 된 다 하더라도, 사회의 기준에서 나는 절대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 결국 내가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남보다 나은 내가 되고자 함이 아닌 것이다.


 내가 운동을 한다고, 살을 뺀다고 연예인처럼 멋있어질 리 만무하다. 결국 조금 더 나은 아저씨일 뿐이다. 그거면 됐다. 내가 이기지 못할 가상의 상태를 상상하며 싸울 필요는 없다. 매일 하루씩 더 늙어가는 우리 삶에서, 어제의 나를 이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승리가 있을까. 목표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스스로의 모습에 두는 것. 이것이 내가 찾은 답이었다. 운동한다고 내 다리가 매끈하고 멋진 일자가 되지 않을 거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웃긴 팔자걸음에, 팔은 짧아 보이고 몸은 두껍겠지만, 내일의 나는 좀 더 날씬할 것이고, 혈압과 혈당은 낮아질 것이며, 숨소리는 조금 더 작아질 것이다. 이제는 바뀌지 않을 부분에 쓸데없는 노력을 퍼부으며 절망하지 않는다. 노력해서 나아질 수 있는 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어제보다 나아진, 적어도 어제의 나에게 지지 않은 것에 만족하며 운동한다. 






 내 앞을 걸어가던 여성이, 호수변을 빠른 걸음으로 걷던 한 뚱뚱한 학생이, 농구를 하던 그 남자아이가, 내일 나아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운동하는 이유가 저 멀리 있지 않기를. 잡지 못할 허상을 쫓아가다 실패하고, 그 탓을 본인에게 돌리지 않기를. 주어진 삶에서 더 건강해진 하루를 달성할 수 있음에 만족하면서, 내일도 건강한 마음으로 호수변에서 마주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육아를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