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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Jan 15. 2024

수심(水心), 감정의 해방과 강물의 속삭임

'수심'에 담긴 소중한 만남


늘 그렇듯이 필자는 동료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찾았던 막국수 집에서 우연히 그들의 발기 모임을 마주하게 된다. 수요일이었고, 대략 대여섯 명 정도의 대부분 다 친숙한 얼굴들이었다. 


“무슨 모임이야?” 

의례적인 수인사와 함께 묻는 필자의 물음에, 

“수심회”

친구는 대뜸 밑도 끝도 없이 다소 건조하게 대답한다. 

“수심회가 무슨 뜻이야?”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이 이상한 용어에 호기심이 생겨, 친구와 악수를 하며 재차 물었다. 

"수요일에 점심 먹는 모임이야!"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을 하며, “너도 가입해” 라며 친구는 필자에게 가입을 권유하였다. 


당시 그들의 모임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수심”이라는 두 글자에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던 필자와는 달리, 너무 쉽고 너무 간단하고 평범한 일상적인 답변과 함께 가입을 권유받은 것이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당시 필자의 머릿속으로 아주 잠시 스쳤던 것은 김삿갓의 한시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 산심수심객수심(山深水深客愁深)“이었다. 전혀 거리가 먼, 쓸모없는 심각한 수준의 상상력이었다. “수심”이란 두 글자에 생각지 못한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필자의 생각은 여지없이 흩어져 막국수집 마당에 곤두박질친 셈이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그들이 단순한 "수심(水心)"이라는 표현을 통해 얼마나 훌륭하게 그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 에세이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소중히 다듬어온 "수심(水心)"이라는 두 글자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깊이 탐구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그려가는 이야기이다. 


그날 우연히 점심시간에 그들과의 조우는 그들과 일찍이 인연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였는데, 당시 필자는 너무나도 많은 크고 작은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고 본사와 현장, 발주처를 오가며 관리를 하는 직무상 출장이 잦아 점심 먹는 모임에까지 참여할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결국은 핑계이겠지만 말이다. 말 그대로 공사다망(?)하게 살던 시절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통찰력과 혜안이 부족했던 필자가 굴러들어 온 복을 제 발로 걷어 찬 셈이었다. 


사실, 그날 이후 수심회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공사다망(?)한 관계로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졌는데, 우연한 기회가 그들과의 인연을 다시 연결해 주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쁜 일상에 묻혀 무심코 지나치거나 소홀히 하는 것들 중에는 소중한 경험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일상에 쫓겨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을 모를 뿐, 그 속에서 더 큰 의미와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깨달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최근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삶의 명제와 같은 것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그 두 글자 “수심”에 소중한 만남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 전혀 상상도 못 했던 당시의 에피소드이다. 


수요일에 모여 점심을 먹는 일상적인 일들이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순간순간 작은 조각들이 모여 이미 커다란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는 수심회원은 서른한 명이다. 이 중 이들을 제외하고 수심회를 논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감 막강한 여사친은 여덟 명이다. 한 때는 조선일보 마라톤 등 전국의 마라톤 경주에 참여하여 힘차게 달렸던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지닌 여사친들이다. 그녀들의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모습은 수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그녀들만의 독특한 존재로 수심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그 존재감이 특별하고 막강한 것이다. 


필자에게 창립 당시 가입을 권유한 친구와 뒤늦게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어 준 친구는 안타깝게도 현재 회원이 아니다. 어떤 모임이든 들고 나는 회원이 있기 마련인데, 수심회 또한 20년간 들고 난 회원들이 당연히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필자에게 “수심회”를 설명해 주었던 창립 회원 중 한 명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의 친구는 무심한 세월이 몇 년이 흐르고 나서 뒤늦게나마 그들과의 만남에 계기가 되어 준 친구이다.   





인간은 때때로 감정의 바다에 잠겨 있던 작은 감정들을 끌어내어 보다 큰 파도로 만들어 내곤 합니다. 그 작은 감정들은 숨어 있을 때는 미미한 존재였을지도 모르지만, 입 밖으로 나올 때는 마치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버리곤 합니다. 이는 감정의 자유로운 발현,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설렘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론 그렇게 감정이 커져 나가는 순간, 아주 작은 조각들이 조금씩 커져가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부풀려지면 그 풍선이 터질까 봐 조마조마 해지기도 합니다. 그 조마조마한 마음 때문에 때론 이성적인 마음의 통제를 벗어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감정의 파도는 차분하고 냉정한 이성의 통제를 받으면서 더욱 강렬해지고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명해진 감정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됩니다. 마치 강물에 몸을 싣고 흘러가듯, 감정의 흐름에 풀려나가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감정의 풍선이 터지면서 우리는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며, 그때 우리의 마음은 강물처럼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순간이 됩니다.


이런 감정의 해방은 때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과의 소통을 통해 더 깊은 이해와 성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강물의 속삭임 같은 아주 작은 순간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삶에 새로운 흐름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순간들입니다. 따라서 부지불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 감정의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풀어나가며, 마음의 강물을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가면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된 일이지만, 수심회 친구들은 그동안 그런 작지만 소중한 감정들을 그저 평범한, 수요일에 모여 점심을 먹는 일상적인 공간에 차곡차곡 저장해 왔습니다. 그렇게 모인 작은 감정의 조각들, 서로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순간의 소중한 조각들은 해가 거듭될수록 자연스럽게 큰 파도가 되어 오롯이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치 설렘의 순간이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맡기는 것과 같은 것처럼 그들의 공간이 서서히 흐르는 강물이 된 셈이지요. 


수심(水心), 필자에게 이 두 글자는 함께했던 아름다운 순간과 행복한 기억으로 정의되었습니다. 때로는 따뜻함과 즐거움, 때로는 웃음 속에 감춰진 소소한 작은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소소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어떻게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지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고,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사유를 하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건져 올린 감정의 해방과 강물의 속삭임으로 그들과의 동행을 그려 나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계속)



가족여행 일정으로 하루 먼저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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