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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 회고록 Dec 17. 2023

6.25 전쟁

할아버지 회고록 10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 



 내 나이 19세(49년). 그해 여름도 지나고 가을 추수 때가 되었다. 추수가 끝나니 봄에 갖다 먹은 식량을 갚고 소작료와 농지세가 나가니 우리 식구 겨울식량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 도리가 없다 그대로 살수밖에. 그러한 가운데 49년도 지나갔고 50년을 맞았다. 이 봄을 어떻게 살아날까 걱정이다. 시골농촌은 풋보리 나기까지의 기간을 제일 무서워했다. 정월쯤에는 논밭에 심은 보리가 싹(순)이 돋아나와 반뼘가량 된다. 노소아낙네들은 그 돋아난 보리싹을 베어다가 국을 끓여 먹거나 죽(粥)을 쑤어먹는다. 풋보리가 나오면 보리목을 잘라다 가마솥에 삶아 말려서 절구 해서 밥을 해 먹거나 죽을 쑤어먹기도 했다. 겨우 보릿고개를 넘기고 보리의 햇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보리밥이 그렇게도 싫었다(지금은 보리밥은 특식이나 별미로 식당에서 팔고 있지만). 차라리 밀로 된 수제비나 밀개떡이 더 좋았다. 그때쯤 농촌에서는 농번기라 한창 바쁠 때다. 눈코뜰 사이없이 바쁠 때 갑자기 예상도 못했던 북의 남침으로 남북간의 전쟁이 발발했다.


 소위 6.25 사변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30분을 기해 38선을 돌파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전날이 주말인 토요일이라 전후방 할 것 없이 장병들은 외출 중에 있었고 육군본부에서는 장교구락부 개관기념파티(Party)가 열렸고 대부분의 고급장교들이 술에 취해있었다. 38선 경비는 허술한 데다 무기마저 재래식 경무기만 가지고 있었으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침략의 주요 원인은 ①미군철수 ②중공군의 내란승리(국부 군의 전락) ③미 태평양 방위권 내에서 한국제외(일본까지로 기선을 자름). 사전계획된 남침이었다(그러나 그들은 북침이라고 억지를 쓰고 있음). 그들의 계획은 8월 15일에 부산 대구에서 8.15 경축행사를 하겠다고 장담했다.


 인민군은 남진을 계속했고 아군은 후퇴를 거듭, 대구일부와 부산을 제외하고 완전 적화되고 말았다. 장흥과 강진읍은 행정치안은 그들의 장악하에 들어갔고 우리 작천면도 그들의 장악 안에, 지방 좌익분자들이 치안행정을 장악했다. 면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치안분주소가 경찰지서(경찰서가 없는 지역, 주로 읍ㆍ면 지역 경찰서장의 소관 업무를 나누어 맡아보는 기관)에 설치되고 분주소장에는 외척으로 친척뻘 되는 서 씨가 부임했다. 그리고 그 세력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장, 반장도 그들이 지명했다. 가난하고 무식한 그들이라 시키는 대로 열성을 다했을 것이다. 농토 많이 가진 자의 것을 압류,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곤 했으니 가난한 자는 좋아했다. 누구네 어느 곳 농토가 저 들것이 되니 금방 부자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할당이 됐다. 이것이 과연 현실인가. 이미 추수 때가 되었으니 다음 해부터는 우리가 모심고 농사짓게 됐다. 그런데 매일 밤이 되면 동네회관에 모이란다. 학습을 한다는 것이다. 모이지 않으면 반동분자로 찍힌다. 자아비판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인민재판인지 인민회의인지를 매일밤에 하다시피 한다. 위원장이라는 자가 불순자를 색출, 인민재판인지 심문인지 하고서 죄목을 나열, 판결을 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묻는다. 「옳소」하면 끝이다. 어디로 끌고 가서 어떻게 처형하는지 모른다. 날이 갈수록 무서워진다. 부모와 자식 간 형제간에도 고발한다. 혈육 간의 인연도 끊어진다. 서로가 감시자가 된다. 무서운 세상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나. 항상 공포 속에 있어야 한다.


 우익세력에 있었던 지주들은 무조건 그들의 적이다. 사소한 감정이 있던 사람도 그들의 고발대상자다. 아무 소리 못하고 죽어있어야 했다. 추수 때가 되니 현물세를 매기러 면 인민위원회 직원이 나와서 알곡을 산출하러 나왔다. 알곡을 센다. 그리고 전체수확예산량을 산출한다. 거기에서 25%가 현물 세다.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이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인가. 점점 더 무서워진다. 세상이 말세구나. 그렇다고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누군가 나를 감시하는 것만 같다. 호남지방은 그들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했다. 우리 작천면은 인민군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지방좌익분자들에 의해서 행정치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행정관리직과 경찰관 그리고 지방계급에 있던 사람들은 좌익분자의 반대세력들이다. 사소한 감정 그리고 그들의 눈밖에 난 자들은 그들의 적이 된다. 일단 낙인이 찍히면 인민재판에 회부된다. 죄목을 조작 처형시킨다. 실탄이 아깝다고 대검, 죽창 등으로 처형,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린다. 훗날 시체를 찾지 못한 예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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