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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Mar 28. 2020

커피의 쓸모란

3월의 단어 『커피』, 공교롭게도님의 글

한달에 하나의 단어를 선정해 각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3월, 공교롭게도님의 글쓰기







커피라는 작물과 음료, 그리고 이로 파생된 생산양식이나 문화양식은 꽤나 흥미로운 연구주제다. 이를 방증하듯 커피라는 상품의 유통과 이를 소비하는 문화에 대한 책들도 이미 많다. 여기에서조차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너무 따분할뿐더러 이게 개인적인 글쓰기인 만큼 나의 이야기를 해본다.





나는 원체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자기들만 커피를 홀짝이며 아이에게 커피는 해롭다고 했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나는 커피를 멀리했었다. 사실 그윽한 향에 이끌려 한입 대본 적은 있었지만 소스라치게 맛이 없어서 그 뒤로는 입도 대지 않았다.



그 시절 커피의 맛을 만든 건 8할이 프리마였을 것이다, 2할은 설탕이고. 아마 고등학생 때부터였을 것이다, 커피를 종종 마시게 된 것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커피는 여전히 기능적인 음식이다. 나에게 커피란 음료라기보다는 약제이며, 음용보다는 복용이 어울리며, 달콤쌉싸름한 맛보다는 탁월한 각성효과 때문에 손이 가게 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고등학생 때는 참 잠이 부족했다. 쉬는시간 틈틈이 엎드려자곤 했는데, 흐리멍덩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는 커피가 필요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 하는 것처럼 자고 일어나서 커피를 처음으로 한모금 먹어보았다. 그리고 효과는 강력했다. 이후 몇번의 실험을 거쳐 커피 활용의 최적화를 발견하게 된다. 커피의 각성효과를 극대화하는 '골든타임'이 있었다. 자고 일어나서 3분 안에 마셔야 한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각성효과는 사실상 없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하얀거탑'에는 장준혁이 쪽잠을 자고 일어나 얼음물로 세수한 뒤 진한 커피를 마시는 장면도 나온다. 잡설은 넣어두고, 좋든싫든 커피를 혓바닥 위에서 굴린지 족히 10년은 됐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취향이 생기기도 했다. 예전에는 라떼만 마셨는데 요즘은 아메리카노와 라떼 반반쯤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맛으로는 시큼하거나 가벼운 커피보다는 쌉싸름하고 무거운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다. 커피를 원체 즐기지 않는다는 문두의 선언이 무색하게도 심지어 요즘은 샷을 추가해서 마셔댄다.




그리고 커피를 마신다면 나는 커피를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혼자 마시지 않는다. 말하자면, 커피란 '밀실'보다는 '광장'의 음료인 셈이다. 커피를 마신다면 반드시 대화상대가 있으며, 설령 혼자 마신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카페에 나가서 마신다. 사교의 매개이자 은둔의 방지랄까. 낮은 천장과 단색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혼자 오래있으면 마음에 병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도서관에 가기도 하는데, 도서관도 지겨울 때가 있다.


그렇다면 카페로 발길을 향하게 되는데 이 카페는 참 흥미로운 공간이다. 일종의 플랫폼이랄까.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이 사람 저 사람 드나들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카페가 저잣거리는 아니니 개인적인 업무나 공부도 처리할 수 있는 분위기는 된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 종종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 가기도 한다. 적당히 시끄럽고 창이 커 밝은, 그리고 커피가 맛있는 카페로 간다.





앞서 '광장'의 음료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야릇하게 말하자면 커피는 '관음'의 음료이기도 하다. 기실 집밖에 나와 마셔대는 것치고 그러지 않은 것이 있겠냐마는 커피는 조금 유별난 느낌이다. 노골적으로 사람 구경하러 카페에 간다는 것이다. 흘깃 이 사람 저 사람 곁눈질하고 솔깃 이 말 저 말에 귀기울인다.



일정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값을 치르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동류감 또는 이질감에 무릎을 치며 미소짓게 된다는 의미에서 카페가 동물원과 무엇이 다를까.시선은 비단 카페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카페에 가면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데, 그럼 창밖의 행인들이 보인다. 일이든 글이든 막히면 잠깐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본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일이 많다.




창 안의 내가 동물원의 동물인가, 창 밖의 행인이 동물원의 동물인가.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람과 단절된 채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사람구경은 언제나 흥미로운 심심풀이다. 판옵티콘이 아닌 이상 역으로 '창 밖을 구경하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상상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일이다. 이 모든 게 다 커피 덕분이라면 비약이려나. 




Written By. 공교롭게도






독서모임, 우리들의 인문학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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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인문학 시간, 글쓰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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