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의 여름을 완주해보자.
- 제목: <첫 여름, 완주>
- 저자: 김금희
- 장르: 장편소설
- 분량: 224쪽
- 독서 기간: 2025년 5월 11일 - 5월 13일 (종이책), 5월 29일 - 6월 3일 (오디오북)
- 별점: ⭐️⭐️⭐️⭐️⭐️
- 한 줄 평: 우리 각자의 여름을 완주해보자.
- 읽게 된 계기: 이제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임없이 김금희 작가님이라고 답한다. <나의 폴라 일지> 북토크에서 약간 귀뜸해주시기도 했던 신작이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예약 구매해 읽었다.
아래의 내용부터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책 속 문장
수미 엄마는 어루만지듯 사진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함께 수미 얼굴을 보고 있던 열매는 얼마 전 동창들이 야유하듯 전한 말을 근황 소식으로 바꾸어 들려주었다. 여의도에서 본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어디 직장을 구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순간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흘러갔지만 수미 엄마는 표정을 감췄다. 기쁨이나 즐거움, 안도와 낙관 같은 것 대신 산산함, 피로감, 불안, 불편, 침묵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처럼 재빨리. p.110
양미는 자전거 옆에 서 있었고 표정은 그림자처럼 텅 비어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스위치를 꺼 버리는 건 상처받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방어 기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쳐내 버린 감정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었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p.162-163
양미는 고개를 한쪽 편으로 돌리며 쳇, 하고 코웃음을 쳤지만 표정은 일그러졌고 울고 있었다. 중얼중얼 불평하면서 연신 얼굴을 닦고 있었다. 절망하고 있었다, 억울해하고 있었다, 힘들어도 일어나는 감정을 감정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피하지 않고 슬퍼하고 있었다. p.163-164
열매: 방금 뭐예요? 정전기 같은 건가?
어저귀: 굳이 설명한다면 친교적 조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
어저귀는 숲의 모든 것들은 친교 속에 존재한다고 했다. 나무만 해도 뿌리와 뿌리가 맞닿고 흙 속의 곰팡이가 연결선을 만들면서 안부를 전하고 서로 위급한 신호를 보내고 영양분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자기 몸에서 태어난 어린 묘목을 돌보며 오래된 지혜를 나누어 주는데 숲의 동물들도 그런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이렇게 세상 모든 존재들이 우주 속에서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지만 인간은 오래전 이탈해 자기들만의 방식을 선택했고 지금이 그 결과라고 했다. 다만 몇몇 인간들은 그런 관계를 시초에 가깝게 유지한 채 존재하는데 어저귀도 그중 하나였다. p.157
손열매: 할아부지, 나 사랑을 잃었네.
....
할아버지: 사랑? 아 사랑은 잃는 게 아니여. 내가 내 맘속에 지어 놓은 걸 어떻게 잃어? p.212
- 줄거리
열매는 말을 잘 못하게 된다. 룸메이트였던 수미가 돈을 빌리고 사라진 다음부터. 열매는 그제야 수미의 본가, 완평 완주마을에 방문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열매는 돈을 돌려받기는 커녕 수미네 엄마의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건강한 밥을 먹고, 어저귀를 만나고, 마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열매는 찬찬히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다른 사람들을 보듬는다. 모르는 새 자신의 여름을 완주할 용기를 얻는다.
- 느낀 점
김금희 작가님의 소설 속 인물들의 결정은 요즘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돈을 빌리고 잠적한 사람이 '빌런'이자 '손절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말 못할 그들의 여지를 이해해나가는, 어쩌면 고통스러울지 모르는 과정을 기꺼이 통과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 인물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 자신을 희생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안전하게 자신의 감정을 분출해본 적 없는 십대 소녀, 자식을 잃고 마을을 떠나려 하는 엄마, 예약된 검사에 가지 못하는 환자, 또 숲의 친교적 조력을 느낄 수 있는 기이한 인물까지. 등장 인물들은 함께 걸으며 서로의 삶을 통해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에 이른다. 꿈을 응원하는 전남친,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기꺼이 나서는 마을 주민, 불이 지나간 뒤에 들려오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까지. 어쩌면 작가는 지극히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현실 너머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게 아닐까. 이게 다가 아니라고. 우리는 그 너머를 믿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