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의 세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자녀, 배우자, 동료, 친구, 어떤 관계로든 마주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복했던 17살 세실이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 세실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려는 사람이, 누구도 필요 없는 그녀 인생에 개입합니다.
폭풍이 휘몰아친 이 아이의 내면 바라보기를 통해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을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15년 전부터 홀로 지내오고 있는 세실의 아버지 레옹은 6개월마다 여자를 바꾸고 활력이 넘치고 호기심이 충만하고 싫증을 잘 내고 좀 경박하지만 사업적으로 유능하고 부유한,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세실은 2년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자신과 꼭 닮아있는 아버지를 아무 어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었고 아버지는 선하고 너그럽고 유쾌하고 세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실에게 쾌락과 행복을 좇는 취향은 유일하게 일관된 면이었고 저속하고 부도덕한 삶을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사랑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지만 빠르고 격렬한 일시적인 사랑에 매료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연애가 남긴 유일한 단점은 사랑에 과도하게 냉소적인 태도가 전부인 세실은, 아버지와의 자유로운 생활에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실은 뜨겁기 시작한 6월에 아버지, 아버지의 애인과 함께 지중해 해안가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복했던 그해 여름이었죠.
그렇게 평화롭고 기분 좋은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전합니다.
안이 남은 휴가를 함께 할 것이라는!
안은 세상을 떠난 가엾은 어머니의 옛 친구로 아버지와는 교류가 거의 없었지만, 2년 전 세실이 기숙학교를 나왔을 때 어찌할 줄을 몰랐던 아버지는 안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안은 일주일 만에 세실에게 세련되게 옷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그런 안은 언제나 세실에게 선망의 대상입니다.
안은 의연한 의지력과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드는 차분함이 풍겨 나오는 사람이었고, 세련되고 지적이고 신중한 사람들과 사귀었고 모든 무절제를 혐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세실과 레옹의 취향을 좀 경멸하는 것 같다고 느꼈었죠. 의상실을 하는 안과 홍보일을 하는 레몽이 사업상의 저녁 식사 때나 죽은 어머니를 추억할 때, 그리고 위압감을 느끼면서도 그녀 안을 몹시 선망하던 세실이 애써 자리를 만들 때만 교류하던 사이인데 휴가를 같이 보내러 온다니!
세실에 대한 책임감을 갖은 안과 함께하는 휴가는 이 평화로움이 깨질 것이라는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별장에 도착한 안은 아버지의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입술을 바르르 떱니다. 그녀는 너무 지적이고 자존심이 강하기에 아버지를 남자로서 좋아할 유형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 세실은 그런 안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안은 금세 평정심을 찾고 네 사람의 조금 불편한 휴가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불과 얼마 후 안과 레몽은 연인관계로 발전하여 레몽의 애인은 별장을 떠나고 급기야 둘은 결혼을 발표합니다.
세실은 결혼, 속박에 완강히 반대하던 아버지가 순식간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미 자신을 생각이 없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안이었기에 이 결혼은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고 독립성도 잃게 되리라는 것을 세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샴페인을 가지러 가는 아버지, 구역질이 나는 세실.
그러나 아버지의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오만하고 고고한 안과 결혼한다는 걸.
세실 역시 우월감과 자부심이 함께 솟구칩니다.
변하지 않는, 아버지를 꼭 닮은 자신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한 세실의 마음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렇듯 복잡하고 오묘합니다.
잃어버릴 자유와 독립성에 대한 충격과 동시에 우아하고 세련된 새엄마를 맞이하게 된다는 우월감과 자부심
세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바꾸어 버리려는 안.
세실의 식단부터 시작해서 공부를 강요하고 방에 가두기까지 하는, 그런 안의 강압적인 태도는 세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고 자아가 분열되는 느낌마저 갖게 합니다. 세실로서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안 앞에서의 세실은 언제나 처벌해 마땅하고 생각이 없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을 세실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타고난 본성은 다듬을 수 있을 뿐이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행복과 유쾌함, 태평함에 어울리게 태어난 내가 그녀로 인해 비난과 가책의 세계로 들어왔다.
어떻게 해서든 분발해서 아버지와 나, 우리의 지난 삶을 되찾아야 했다.
그 생활에는 생각할 자유, 잘못 생각할 자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을 자유,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하고 나를 자신으로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자아가 분열되는 듯했다.
<슬픔이여 안녕>
아버지의 옛 애인을 이용해 질투심을 유발하면 반드시 아버지가 반응하리라는 것을 세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실은 안을 때어놓으려는 계략을 꾸미고 그것은 적중합니다.
아버지의 본성도 변하지 않기에..
한낮 정부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에 치욕을 느낀 안은 스스로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맙니다. 그 도도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안이 자신을 놓아버립니다...
세실은 안이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에 둘 사이를 떼어놓음으로써 그저 자신의 자유를 찾고 싶었을 뿐인데, 안에게도 이 결혼은 인생을 건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안은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공격한 대상이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개체였음을.
그녀는 조금 내성적인 어린아이였다가 사춘기 소녀였다가 이윽고 여인이 되었을 터였다.
그녀는 마흔 살이었고 혼자였으며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자 했다.
그런데 내가... <슬픔이여 안녕>
치욕대신 죽음을 선택한 안으로 인해 17살 세실은 줄곧 떠나지 않는 그 갑갑하고 묵직한..
‘슬픔’을 인생에 맞이하게 됩니다.
안도 인생에 슬픔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알았더라면...
치욕을 견뎠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았을까요?
(저는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을 슬픔을 떠나보내는 '안녕'으로 보고 이해가 안 가서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여러 번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그 뒤로 번역본은 원제목을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답니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슬픔이여 안녕> 첫 문장
세실의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본성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실은 이 경험을 통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의 자유를 찾고자 행했던 일이 누군가에겐 회복할 수 없을 타격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전 그래서 인생의 슬픔을 알게 된 세실이 앞으로는 조금 성숙한 방법으로 자신을 지켜나가리라 믿고 싶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경험하고 선택한 결말을 통해 성장해야 하니까요.
프랑수아즈 사강이 열여덟 살에 썼다는 이 소설에서의 심리묘사는 한 사람의 복잡하고 다중적이고 미묘한 마음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나와 타인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눈도 조금은 깊어지지 않을까요?
소설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독자가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프랑수아즈 사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