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운 붉은 옷 갈아입고
하늘 향해 솟구친 꽃
한때는 어사화의 영광이요
높은 담장 안 양반집 뜰을 홀로 밝혔다
시들어도 시듦마져 당당히 툭,
떨어져 내리는 자태는
고고한 자존심처럼 빛났으니
허나 그 화려한 그림자 아래
잊힌 궁녀의 눈물 스며 있고
닿을 수 없는 사랑의 독이
붉은 꽃잎 깊숙이 배어 있었네
세상의 찬사 속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임 기다리다
애달피 진 혼의 흔적 아롱졌으니
이제 담장 넘어서 피어나
누구의 눈에나 닿는 꽃이 되었어도
그 고귀한 슬픔은 변치 않아
한여름을 붉은 울음으로 물들이네
명예로웠으나 외로웠던 삶,
아름답게 스러져 역설을 새기며
오늘도 묵묵히 지고 피는
그림자 품은 능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