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부끄럽기도 하고 말씀을 드려도 될지 무척 망설여집니다"
"네, 그런 망설여지는 기분 잘 압니다. 하지만 아예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셨다면 여기에 오시지도 않았겠죠. 이미 50% 이상은 말을 하고 싶고 또 해야만 한다는 걸 본인이 더 잘 아시니까 여기에 오신 거예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겁니다"
"네 그렇죠. 저도 더 이상 이걸 가슴속에 품고 있는데 너무 힘듭니다.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고 너무 좋았는데 누구에게 공개하려고 하니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고 고민이 됩니다. 사실 이런 걸로 기분 좋고 쾌감을 느껴도 되는 건지 스스로에게 잘 판단이 안 서다라고요."
"중요한 건 쾌감을 느끼셨다는 사실인 거지요. 그 감정에 대해 도덕적인 잣대를 가져다 판단하기에 앞서 즐거움과 쾌감을 느끼셨다는 팩트 그 자체가 먼저 중요한 겁니다. 만약 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이 곳을 떠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분명 그 일로 인해서 즐거움과 쾌감을 느꼈습니다. 아마 추운 겨울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겨울에 이런 일이 제게 생긴 것도 어떻게 보면 운영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운명을 믿지 않았고 운명도 스스로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나이의 저는 운명을 거스르는 게 더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자, 말씀해 보시죠. 어느 시점부터 즐거움의 정도가 강렬해졌나요? 처음부터 였나요? 시작부터 성공을 예감하고 성공을 예감하자 즐거움이 강해지기 시작했습니까?"
"아니오, 처음 그 일이 생겼을 때는 성공할 것이라 생각 못했습니다. 사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또 생겼을까 저의 불운을 원망하고 탓했었지요. 그 두루마리 휴지가 물에 젖고 나서 바로 버리려고 했지만 회사일로 바쁜 나날이 계속되면서 그 존재를 잊고 방치했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러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 저는 우연히 그 두루마리 휴지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여전히 젖어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건조한 겨울이니까 금방 마르지 않을까? 그러면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뭐 그냥 수돗물에 젖었던 거라 더러운 상태도 아니었어요"
"네, 그러면 그 후에 언제 즐거움과 쾌감이 최고조에 다다랐었나요?"
" 그로부터 3~4일은 더 시간이 지났어요. 매일 한 번씩 두루마리 휴지의 마른 정도를 체크했는데 생각보다는 금방 마르지 않았어요. 하지만 분명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있었죠. 겨울이라 날씨도 계속 건조했고요. 결국 며칠이 지나고 아침에 그걸 만지는 순간 너무도 바싹 말라 있었어요. 그때의 기분과 감동이란 정말 훌륭했어요. 정말 빳빳하고 바싹 말라 있었거든요. 물에 젖었던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요. 그 후 조심스럽게 한 커플을 벗겨서 쓰는데 너무 잘 닦이자 그때 즐거움과 쾌감이 최고조였던 것 같아요"
"아 그랬군요. 그런데 왜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려웠던 거죠?"
"글쎼요. 사람들이 특히 가족들이 구두쇠라고 생각하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깟 휴지 그냥 버리고 새로 하나 사면되지 왜 그렇게 궁상이냐고 비난을 받을까 봐 겁이 났어요. 하지만 저는 나무로 만든 두루마리 휴지를 버릴뻔한 상황에서 다시 살려 나면서 제 자신이 뿌듯했고 무엇보다 최근 제 자신에게 약속한 대로 작은 것에 기뻐하고 감하자는 소확행 정신에 부함 한 것 같아 더 기뻤어요"
"그러면 된 거죠. 그런데 혹시 다른 사람들이 이런 내용을 알고 뭐 별것도 아닌걸 이렇게 거창하게 얘기하냐고 실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나요?"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이제 나이를 먹고 무언가 표현하지 않고 쌓이는 스트레스가 더 두려웠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머지 일들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