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선증후군(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5)
하준이가 퇴원을 했다. 태어난 후 3주가 넘는 시간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하준이에겐 첫 햇빛이었을 것이다.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울려대는 텅 빈 아파트로 하준이를 데리고 왔다. 그간 조금의 가구와 가재도구들을 사놓긴 했지만, 여전히 세 식구가 살기엔 부족한 점 투성이었다. 특히 이 집은 창문틈새와 문 밑의 틈으로 시린 바람이 끊임없이 침입을 했다. 목조로 지은 오래된 아파트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얻었던 이 아파트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감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예로, 몇몇 창문은 아귀가 맞지 않았고, 현관문 아래에는 엄지손가락 하나가 거뜬히 들어갈만한 틈이 있었다. 온풍으로 난방을 해도 공기만 건조해질 뿐 바깥에서 찬 공기가 틈을 타고 들어와 실내를 한 번 휘젓고 가면 다시 추워졌다. 반가운 손님일리 없건만, 눈치가 없는 건지 바람은 끈질기게 들어왔다.
이를 막기 위해 급하게 Home Depot(미국의 주택 개조 및 유지보수를 위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가서 문풍지와 암막커튼 등을 사 왔다. 이제 막 부모의 품으로 온 우리 아이에게 온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를 전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문 주변과 창틀 주위를 문풍지로 감싸고, 커튼 봉과 두터운 커튼을 달았다. 방은 한결 더 어두워졌어도 바람은 덜 들어왔다. 조금 두텁게 입고 이불 안에 들어가면 제법 살만한 온도가 되었다.
마땅한 탁자가 없어서 하준이의 기저귀 박스와 물티슈박스로 간이 테이블을 만들어 육아용품을 올려놓았다. 침대 틀도 없이 우리가 쓸 매트리스를 방 한켠에 두고 그 옆에 아기용 매트리스를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하준이를 뉘었다. 뭘 더 채우려고 해도 가진 게 없었다. 가진 게 없으면 몸으로 해야 했다. 우리는 자주 함께 누웠고, 함께 이불을 덮었고, 온기를 나누었고, 손을 잡고 의지했다. 매일 저녁 나와 아내는 하준이를 안고 기도했다. 때론 짧게, 때론 오래도록. 때론 흐느끼며, 때론 크게 울며. 때론 원망하며, 때론 감사하며. 하준이는 우리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방 하나 거실 하나였던 그 작은 아파트에서, 우린 더 작은 원을 그리며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사진들을 간혹 보면, 그러한 시절을 버티고 견뎌낸 나와 우리의 시간들에 마음이 시큰거린다.
하준이의 첫 소아과 예약을 잡아야 했다. 우리가 살던 에모리 대학 근처는 Decatur라는 지역으로 에모리 대학 병원을 제외하면 그리 병원 인프라가 좋은 곳이 아니었다. 나는 가능한 모든 소아과를 다 찾았고, 평을 다 살펴봤다. 동네 소아과 서너 곳이 물망에 올랐다. 그리고 전화를 시작했다. 어느 병원이든 전화를 하면 새로운 환자인지 아니면 기존 환자인지를 먼저 묻는다. 새로운 환자라고 이야기를 하면, 잠깐의 호구조사가 시작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몇 살인지, 누구의 소개로 전화를 하는 건지, 보험은 있는지, 그리고 혹시 자신들이 알아야 할 다른 의료적 증상은 있는지. 그때마다 나는 최대한 짧게 하준이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하준이의 병명을 이야기하는 순간 난관이 발생했다.
처음으로 전화한 소아과는 아예 KID Syndrome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담당 의사들에게 확인해 본 후 연락 준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감감무소식이었다. 두 번째 병원은 다행히도 이런저런 일 끝에 담당의사와 직접 통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우리 아이가 KID Syndrome을 지니고 있다고 하자 난색을 표했다. 자신이 제대로 하준이를 봐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전문적인 치료나 관리는 다른 스페셜리스트들이 있고, 소아과 계통만 봐주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의사는 자신이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케이스라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걱정이 들었다. 아무래도 하준이의 병이 희귀 질환인만큼, 이와 같은 증상을 처음 보는 소아과의사들이 많을 텐데, 매번 거절을 당하면 어떡하나. 다른 과의 진료를 받을 때도 이런 거절들을 거쳐야 하는 건가. 한국처럼 큰 대학병원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는 건가.
그래도 난 소아과에 전화를 해야 했다. 한 군데 더 퇴짜를 맞은 다음, 마지막으로 전화한 곳은 내가 최후의 최후까지 남겨놓으려던 곳이었다. 온라인에 나와있던 그 소아과의 평이 너무나도 안 좋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환아들과 부모님들이 그 병원의 대기시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나서 의사를 만나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예약시간이 의미가 없는 곳이라고. 평소 시간의 효율적 사용을 추구하던 나에게 이곳은 정말이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화를 해야 했다.
리셉션에서 전화를 받아서 간단한 이야기 후 전화를 의사에게 넘겨주겠다 했다.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어쩌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간의 이야기를 또 압축해서 설명하고, 하준이의 병명이 KID Syndrome인데 소아진료를 봐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웬걸, 자신이 어린선증후군 환자를 담당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하준이의 진료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의외로 이야기가 잘 풀려서 난 이틀 뒤 오후 시간으로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두어 번의 거절 이후 잡게 된 예약이라 맥이 탁 풀렸다.
그렇게 해서 이틀 뒤에 찾아간 소아과, Milestone Pediatrics는 온라인에서의 평가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구글에서 평가는 썩 좋지 않다) 사람은 북적거리고 로비는 정돈이 안되어 있었다. 대기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체크인 이후, 1시간 이상은 족히 기다렸던 거 같다. 카시트 바구니에 누워 있는 하준이는 어리둥절해서 멀뚱멀뚱 눈을 돌렸다. 가끔 우리 품에 오고 싶어 찡찡거리며 보채기도 했다. 나와 아내마저 지쳐갈 때쯤에야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고, 곧 따라 들어온 의사를 볼 수 있었다. Dr. Okuwabi라는 흑인 여의사였다. 환하게 웃으며 우릴 맞이해 주었다. 의사는 하준이를 들어 여기저기를 살핀 후 간단히 진료를 마치고, KID Syndrome 외의 다른 발달과정은 모두 다 정상이라는 소견을 받았다. 간호사가 미리 측정해 둔 몸무게, 키, 머리둘레 등 모든 것이 정상범주에 있었다. 이런 자그마한 긍정적인 소식도 어찌나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지.
의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만 다음에 시간이 나면, 자신이 예전에 봐줬던 어린선증후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진료기록을 다른 의사들과 공유하기 위해 어떤 양식에 서명을 좀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여차저차 모든 절차를 마치고 주차장에 나와 다시 차에 탔는 데 나와 아내 둘 다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몸을 던져놨던 거 같다. 하준이가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퇴원 후 해야 했던 일 중 가장 중요한 첫 단추를 겨우 마친 것이었다. 그렇다고 실질적으로 뭘 크게 한 건 없는데 뭐 했다고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진이 빠졌다. 고작 소아과 하나 예약 잡고 다녀온 것 뿐인데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이 일이 왜 그리 이리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새삼스레 영어로 전화통화를 많이 했다고 해서 힘든 건 아니었을 것이다. 두통은 좀 있었겠지만. 딱히 병원 로비가 붐비고 대기시간이 길어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그 시간은 지루했고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가질만한 일이었지만, 그것으로 나의 이 힘듦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거절'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지만, 난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잠깐 맛본 거 같았다. 하준이가 이겨내야 할 '거절'들 말이다. 혹자는 고작 저런 동네병원의 응대에 무슨 거절감까지 느끼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과잉반응한다고 말이다. 글쎄,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준이가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겼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나의 사고는 그렇게 관대해지지 않는다. 무슨 스위치가 고장 난 거 마냥.
어쩌면 하준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은 남들보다 조금은 더 좁은 통로일 수도 있다. 특이하다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이런 희귀한 질병을 (그들이)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을 받고 시작할 수도 있다. 병원과 의사들이야 자신들의 능력범주와 책임회피 때문에 나름 정중하게 거절한 것일 테다. 하지만, 세상에는 의사들의 거절들보다 좀 더 차가운 거절도 있고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낼 만큼 지독한 거절들도 있을 것이다.
하준이가 어린 지금은 내가 뚫어주고 내가 대신 거절을 느끼고 내가 대신 좌절하겠지만, 그런 날은 꼭 올 것이다. 내가 그날을 바라는 게 아니라,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는 만큼 잔인하다는 걸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제발 이 아이의 정신과 마음이 단단하길. 그리고 난 최대한 오랫동안 그 거절들을 미리 막아줄 수 있길.
그리 생각해 보니 제법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이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이 있다면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거절도 익숙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