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공부란?
폴란드가 특이한 점은 영어 실력에 있어서 세대 간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숫자와 같은 간단한 영어도 전혀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을 해가며 진땀을 빼게 되는 50대 이상의 폴란드 인들과는 달리 20-30대 젊은이들의 영어실력은 폴란드인이 맞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우연히 대화를 시작하게 된 20대쯤으로 보이는 그는 거침없이 영어를 구사했다. 서로 말이 오간 것은 불과 20분 남짓이었지만 어휘와 유창성은 준원어민 수준인 유럽 공통 언어 기준(CEFR: Commom European Framework of Reference for Language) C1 은 너끈이 되지 싶었다. 나는 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초면에도 염치 불고 질문을 하게 된다.
“너 영어 진짜 잘한다. 어디서 영어를 배웠니? 어떤 교재를 썼어?”
세계적 수준인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한 인터뷰에서 하루에 3-4시간 정도 연습에 할애한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나는 십 대 때 하루에 7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을 했는데 단순히 연습시간만을 놓고 보면 난 그보다 2배는 더 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 전혀 거리가 머니 내 입장에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무엇이 나와 그 간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듀크대학교 교수인 댄 히스 Dan Heath는 연습은 완벽하게 만든다는 신화에 반박한다. 우리가 매일 머리를 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향상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금방 납득이 가는 말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레모브도 소비한 시간의 양만큼 항상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하며, 계속하는 것으로는 반드시 잘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는 오히려 잘 못된 방법으로 반복하면 원하는 목표와 더 거리가 멀어지는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Make it Stick>에서도 저자인 브라운도 역시 공부한 절대적인 양과 그 성과는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무작정 공을 오래 잡고 있는다고 농구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며,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길이의 시간만큼 성적이 높은 것도 아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습시간은 나의 그것에 비해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있었기에 전혀 다른 결과를 냈음이 분명하다.
폴란드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영어실력이 급속도로 향상된 비결을 주목해 보기 시작했다. 영어 실력 향상은 단지 일부 개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 곳 폴란드에서 살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폴란드 젊은이들의 전반적인 영어 실력은 눈에 띄게 급상승했다. 동네에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만나는 20대 폴란드인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영어모드로 바꾸어서 응대한다. 나의 짧은 폴어실력을 나무라시는 동네 과일가게 할머니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풍경이다. 그야말로 같은 나라 다른 느낌임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게 되는 것이 폴란드이다. 이쯤 되면 이들의 향상은 국가차원에서 무언가 큰 변화가 있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폴란드의 과거와 현재: 폴란드는 2차 대전 이후에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은 나라로 꼽힌다. 국민들의 영어실력도 이 변화의 중요한 부분인 것은 사회적인 변화와 교육개혁이 한몫을 한다.
이들의 현재 영어실력을 과거와 구별되게 만든 원인이 뭘까? 폴란드의 영어 실력이 격상된 시기는 이 나라가 사회적인 변화와 이어 교육개혁은 단행한 시기와 맞물린다. 폴란드는 1990년에서야 공산주의와 폐쇄성을 벗고 개방적인 사회로 들어서게 된다. 더불어 1997년에는 교육 전반을 개혁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단 3년간의 간극을 사이로 피사 읽기와 수학 평가에서 선진국의 평균에도 미치지 않았던 수준에서 점수가 미국을 앞질렀다. 점수가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교육의 목표와 방법으로 인한 효과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임에는 분명하다. 영어 교육의 변화도 이 과정에 있었다. 우리나라 수능시험 격인 마투라 시험이 2005년 이후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뀐 이후 매우 가파른 향상을 보이고 있음은 내가 매일 이들을 만나며 느끼는 눈으로 귀로 확인되고 있다.
현재 국민의 70%가 영어를 할 수 있는 핀란드도 마찬가지이다. 핀란드도 80년대 초에는 문법 중심의 영어교육을 했다. 문법을 가르치고 자국어로 해석하는 식 Grammar Translation Method으로 영어를 가르치던 방법에서 의사소통 중심 방법 communicative method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폴란드와 핀란드의 변화는 결코 단순히 교재를 바꾸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들이 괄목할 만한 실력 향상의 이유는 바로 영어를 대하는 목적과 방법을 선회한 데 있었다.
영어가 유창한 A에게 내가 던졌던 질문인 ‘어느 학원 다녔어?’, ‘무슨 교재로 공부했니.’는 우문 중의 우문이었다. ‘무엇’을 물어보는 질문 대신 너는 영어를 왜, 그리고 ‘어떻게’ 늘렸니?라고 물어봤어야 했다. 비결은 ‘무엇’ 이 아닌 ‘어떻게’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했다면 우리도 못할 이유가 없다. 한국어와 영어와의 거리가 지구 반대편만큼이나 먼 것처럼 폴란드어와 핀란드어도 결코 영어와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떠한 교재나 자료 혹은 학원은 영어 향상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넘치는 정보와 자료를 활용할 방법이다. 지금은 영어를 배우기 최적의 시대이다. 미디어를 통해 교재와 자료는 너무도 쉽게 내 손 안에서 열어볼 수 있지 않은가. 홍수 같은 정보 속에서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내 영어실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세월을 아껴 하루빨리 영어를 누리게 될 지름길이다.
“나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영어가 안 되는 거니?”
우리에게 공부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는 공부의 정의를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글로 된 내용을 암기하는 일로 국한된 경우가 많다. 공부라는 단어가 쓰이는 맥락을 보면 시험공부, 수능 공부와 같이 특정 지필 시험을 목적으로 암기하여 점수를 얻는 일로 쓰이는 경우가 다수이다. 우리에게 공부란 시험에서 고득점 하기 위한 과정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공부하면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열정을 가진 이들이 바로 한국인이다. 웨일스 출신 영국 고등학생들이 한국 교육을 체험하는 과정을 담은 기사가 BBC와 중앙일보를 통해 보도된 적이 있었다.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앉아서 읽고 외우기를 반복하는 한국 학생들의 어마 무시한 공부 스케줄에 난색을 표하는 영국의 십 대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우리처럼 공부하는 이들은 아마 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공부 집중 코스인 중고등학교를 거치고 나면, 암기와 시험성적으로 공부의 개념이 수렴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캐나다 출신 영어교사인 리사 Lisa Vinish 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을 토대로 쓴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을 사랑한다며 시작된 글에서 저자는 높은 문맹률의 가난한 나라에서 단 두 세대만에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의 성장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본다. 반면, 한국에는 공부 studying 와 진정한 배움 actual learning 사이의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지적하는데, 특히 영어교육이 이 대표적인 예임을 꼽는다.
공립학교와 학원 모두에서 교사 경험이 있는 리사는 한국 영어교육의 가장 큰 장애물로 잘못된 학습 방법 HOW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대다수의 한국의 영어교육기관의 교육 목표는 문법을 위한 단순 암기와 한국식의 반복 학습이라고 지적했다. 암기와 반복은 모든 학습의 기본이지만, 의사소통 연습을 완전히 배제한 채 문법만을 강조하는 방식은 결코 효과적일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시험에서의 고득점을 배움의 목표로 한정하기에, 시험지용 내용과 내가 알고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지식 간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음을 목격했다고 밝힌다.
시험지 전용 지식의 최대 피해자는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 실력이다. 한국의 교육열은 오바마도 언급할 정도로 보기 드문 수준을 자랑한다. 스웨덴 기반의 언어교육정보기관인 EF Education First 에 의하면, 한국인은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2만 시간을 투자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통계청 정보에서도 연간 사교육 투자액은 미화 3천 달러에 이른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열정과 시간 투자에 비해서 그 결과는 고개가 갸웃거리게 된다. EF 영어능력 평가 자료에서 한국은 80개 국가 중 30위로 중간 수준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1만 시간 정도라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도 남을 학습 시간인데 우리가 투자한 2만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한국인들은 외우라고 주어진 내용을 암기하는데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 리사의 기사 내용을 읽으며 가슴이 쓰렸다. 물론 개인차가 있지만 한국인들에게 공부는 시험 문제를 정답을 맞혀서 원하는 점수를 얻는 수단으로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유명 대학에 입학을 위한 고득점 받기로 한정되어 있는 한국식 공부로는 영어를 늘릴 수가 없다. 우리의 영어실력은 머리가 나쁜 탓도, 나이가 많은 탓도, 재능이 없는 탓도 아니다. 영어를 시험지용으로 한국식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영어를 늘리려면 이제까지 우리가 젖어있는 '공부'의 정의와 방법을 완전히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써먹는 지식을 습득하지 않는 '배움 없는 영어공부'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반면 폴란드의 영어능력은 2011년 중간 수준에서 2015년에는 11위인 최상급으로 약진했다. 갑자기 이들의 지능지수가 상승한 것도, 없던 재능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가 없다. 폴란드인들이 국가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동기 WHY 와 방법 HOW 의 방향을 달리 한 결과이다.
영어를 늘리려면 우선 '공부'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시험지 모두 쏟아놓고 빈 마음으로 나오는 시험지를 위한 암기가 아닌 소통을 위한 영어가 목표라면 더욱 그러하다. 특히나 언어 학습은 절차적 기억이 요구되는 영역이므로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해왔던 단순 암기식 '공부' 방식을 통해서는 영어를 듣고 말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점수 만점과 실제 도로에서 능숙하게 차를 몰 수 있는 것과는 별개인 것 같이 말이다. 소통을 위한 영어를 원한다면 시험지를 위한 공부에서 나를 위한 로 배움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우리가 영어가 도저히 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한국식으로 '공부'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공부라는 표현보다는 언어를 배우고 훈련하여 익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 참고문헌:
P.Brown, H.Roediger & M. McDaniel(2014). Make it Stick. Belknap Harvard
D.Lemov, E.Woolway & K.Yezzi(2012). Practice Perfect. Jossey-Bass
BBC(29.11.2016). School Swap: Korea Style
http://www.bbc.co.uk/programmes/b0840267
Lisa Vinish(16.06.2014). Go Overseas.
https://www.gooverseas.com/blog/are-korean-students-really-learning-english
EF English Proficiency Index
KBS 스페셜 <당신이 영어를 못하는 진짜 이유>
아만다 리플리, 김희정 역(2014).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부키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는 한국인의 영어 독립을 꿈꾸며 글을 연재합니다. 근거 없는 '카더라' 통신보다는 이론과 경험이 뒷받침된 내용으로 '알면 세월을 아껴주는 방법'을 공유합니다.
당신의 영어 독립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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