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137
1. 영화 <아가씨>에서 숙희(김태리 분)는 후지와라 백작(하정우 분)과 히데코(김민희 분)가 설계한 함정에 완벽히 빠집니다. 이모부인 코우즈키(조진웅 분)에게서 벗어나길 바라는 히데코와 히데코의 엄청난 재산을 탐내는 후지와라 백작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조선인 하녀 한 명(숙희)을 섭외해 히데코 이름으로 정신 병원에 넣고 둘은 재산과 자유를 얻어 떠나고자 했던 것이죠. 그리고 숙희는 '속이기 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후지와라 백작이 섭외한 것으로 보입니다. #PSH독서브런치034 [상대방을 쉽게 단정 짓지 말아야 하는 이유 - 영화 아가씨]에서 말했듯 숙희는 본인이 틀릴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즉, 숙희는 본인이 히데코를 속이고 있다고 단정짓고 그 외의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이죠. 본인이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본인의 관점을 지지해주는 증거만을 수집하는, 어쩌면 저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의 모습이 숙희의 처지와 겹쳐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2. 숙희는 히데코를 결과적으로 속이려는 목적에서 접근했지만, 히데코를 대하는 사소한 순간들에서만큼은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리고 히데코도 이에 감정적으로 동요했고요. 이를테면 글을 읽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 히데코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히데코의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위로해주는 장면, 순수한 마음으로 여러 스킬(!)을 알려주는 장면 등에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표현이 언제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아가씨>에서 숙희의 진심은 히데코에게 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2. 하지만 코우즈키를 속여 귀족 행세를 완벽히 해낸 후지와라 백작과 산전수전 다 겪은 히데코가 설계한 함정에서 숙희가 '본인이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 하더라도 빠져나오기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아요. 영화를 여러 번 뜯어봐도 '숙희가 본인이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한 순간'은 없었습니다. 저택의 하녀들이 숙희의 신발 한 짝을 가져갔다가 갑자기 돌려주며 사과한 장면이 있긴 했지만, 이 사건을 겪고 '내가 히데코에게 속고 있는 건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결국 본인의 행동이 히데코를 감정적으로 동요시켰던 것은 '우연'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필이면 히데코가 숙희의 순진한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고, 숙희의 위로에서 진심으로 위로받았으며, 숙희와 속궁합(!)이 맞았던 우연이 있었기 때문에 숙희가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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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독서브런치063 [나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서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보다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더 크게 영향받는 것은 아닐지 썼습니다. 그리고 #PSH독서브런치039 [불안에 대하여 (알랭 드 보통)]에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1)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2)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도리를 다 하고 결과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뿐이 아닐까 하고 썼어요. 즉, 영화 <아가씨>에서 숙희를 보며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은 1) 내가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나의 관점을 지지해주지 않는 증거도 적극적으로 수집하기 2) 그래도 속아넘어갔다면 담담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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