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157
1. 홍세화 작가는 <생각의 좌표>에서 "자기성숙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개인으로서 내세울 장점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속한 집단인 국가, 민족, 종교, 지역, 혈연, 출신 학교를 내세운다"고 지적합니다. 굳이 다른 인용문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학연, 지연, 혈연을 중요시하는 연고주의는 언제나 타파되어야 할 것, 벗어나야 할 것, 극복해야 할 것으로 설명되고 저도 동의합니다.
2. 러셀 로버츠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에서 "상업적 세계에는 가혹하고 냉혹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 그럼에도 내가 그들을 믿는 것은 오로지 평판에 대한 걱정, 거래를 반복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사기와 절도에 대한 법적 제재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 "교역은 신뢰 없이 존재할 수 없는데, 모르는 사람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오늘날 전 지구적 교역망은 달러, 연방준비은행, 기업의 토템적 상표와 같은 허구의 실체들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부족사회에서 두 낯선 사람이 서로 교역을 하고 싶다면, 공통의 신, 공통의 신화적 조상이나 토템 동물에게 호소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문유석 작가는 <쾌락독서>에서 "실은 인간들은 대부분 경이적일 만큼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정말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인간이란 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왜 옆방 살인범은 징역 15년 받았는데 나는 17년이냐며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칠 수 있는 존재다"고 말하기도 하죠. 즉, 저는 "홉스(Hobbes)가 설파했듯이 인간 사회는 정글의 원칙에 따른 포식자와 피포식자들 간의 죽고 살기의 무서운 먹이 사슬이어서, 인간은 무질서하고 무자비한 투쟁의 긴장과 공포로부터 한순간이라도 빠져나올 수 없다" (『논어』의 논리 : 철학적 재구성, 박이문, 문학과 지성사)는 관점에 동의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연, 지연, 혈연을 따지는 것'은 믿을 만한 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보조지표이자 고육지책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 사이 엮인 게 있는데', '그 사람도 나를 배신한다면 잃을 게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1+2. 실력이 아닌 '학연, 지연, 혈연'을 활용하여 '한 몫' 챙기거나 '한 자리' 차지하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며 허용되어서도 안 될 거예요. 하지만 일을 맡길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봐야 할 때 생판 남보다는 서로 엮여 있는 것이 많을수록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할 가능성이 줄어들 거라 생각해 학연, 지연, 혈연을 고려하는 것이 꼭 불합리하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을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Employee Referral 제도 즉,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고자 할 때 이미 재직중인 직원의 추천을 받는 것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생각이 기저에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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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현상도 어느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학연, 지연, 혈연을 따지는 연고주의도 그런 현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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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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