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162
※ 저의 글은 주로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종교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종교와 신의 진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시도 자체가 신의 존재를 배제한 인간 집단으로서의 종교를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분에게는 불편한 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읽기 전 이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1. 이전의 글에서 저는 종교가 1) "자칫하면 항상 작고 무작위적이고 사적인 순간으로만 남을 수 있는 일에 규모와 일관성과 사회적인 힘을" 줄 수 있다는 측면 즉, 종교가 과거 사건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과 감정적 위안을 제공해준다는 측면과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 해결이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이 문제는 결국 해결될 것이다'는 강한 종교적 믿음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쓴 적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주로 감정적 측면을 다루고 있다면 이번 글에서는 이성적 측면에서 바라본 종교의 역할, 기능, 필요성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2.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착한 인류>에서 "종교는 신체와 정신 건강을 향상시킨 것으로 보인다"며 연구 결과 "교회 출석이 핵심적인 이유"라 말합니다. "사회적인 연결이 면역계를 강화할 수 있고", "교회는 ... 헌신의 공유를 만들어낸다"고 해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집단의식, 종교음악, 합창 같은 매우 강력한 유대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종교적 행위들을 강조했다"고 하죠. 저는 이 글을 보고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에서 읽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영장류 중에서 광범위한 상호 관계를 몇 년, 수십 년, 혹은 평생 동안 이어가는 종은 사람이 유일한 것처럼 보인다. 큰 동물을 사냥해 얻은 고기는 사냥꾼 혼자 소비하기에는 너무 많다. 게다가 사냥의 성공률은 변동성이 크다. 이번 주에 사냥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다음 주에는 실패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은 사냥에서 얻은 식량을 나누는 데 도움을 준다. 사냥꾼이 당장 소비할 수 없는 고기를 남에게 나누어주는 비용은 낮은데, 혼자서 고기를 다 먹을 수도 없고 남은 고기는 금방 상하고 말기 때문이다. 반면에 고기를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그 호의를 되돌려준다면, 편익은 아주 클 수 있다. 사냥꾼은 실질적으로 잉여 고기를 친구와 이웃의 몸에 '저장'할 수 있다. - 식량 공급 가설" 저는 이렇듯 서로의 몸에 식량을 '저장'하는 삶의 방식이 종교에서 체험한 '헌신의 공유, 강력한 유대의 경험'을 통해 지속되고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습이 그 집단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면 그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요.
1+2. 어떤 사회 현상을 바라볼 때 그 현상으로 이익을 얻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을 구분해보았을 때 그 현상의 본질이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종교 또한 종교를 가짐으로써 가지는 분명한 이득이 있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라 보고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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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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