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083
신학자 틸리히는 신앙을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라고 정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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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수한 교리를 믿지 않아도, 한 인간이 자기의 삶과 우주 전체 혹은 존재 전체와의 궁극적 관계에 관여할 때, 그는 이미 종교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궁극적 의미를 찾고 그런 것을 믿을 때 그는 넓은 의미에서의 종교인"이라 말합니다.
(노장 사상, 박이문, 문학과 지성사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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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보면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종교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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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금 세부적인 측면에서도, 인생의 작은 순간들마다 (특히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 누군가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고, 나름의 설명을 붙이는 과정도 종교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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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관심', '궁극적 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어려움이 왜 찾아왔고, 미래에 어떻게 이어질지 생각하고 납득하는 과정이 종교에서 제공하는 설명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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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말한 'Connecting the dots'도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1. 종교는 자칫하면 항상 작고 무작위적이고 사적인 순간으로만 남을 수 있는 일에 규모와 일관성과 사회적인 힘을 준다. 그리고 우리 내면의 차원 ... 에 내용을 제공한다. 종교는 단순히 몇 권의 시집이나 에세이집에 우리의 감정을 위탁하지는 않는다. 소란스러운 세상에서는 책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 종교란 다름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종교는 하느님을, 딴 세계를, 영생을, 천당을, 지옥을 말로 꾸민다. 이렇게 해서 종교는 이성의 빛을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까지 확장시키려는 욕망의 표현이 된다. (왜 인간은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하는가 : 이타주의에 대한 철학적 성찰, 박이문, 소나무)
3. 종교의 발생을 사회적 필요에서 찾으려는 뒤르켐의 학설도 있지만, 그보다도 인간의 심리적 필요에서 찾아봄이 더 납득이 간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이론은 후자의 대표적인 실례가 된다. 니체는 종교가 약자들이 지배계급에 대항하고 복수하며 동시에 자신의 불행한 상태를 위안하는 수단으로 발명된 상상물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편 프로이트는 고통으로 가득 차고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될 인간이 자신의 절망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위안의 수단으로 발명한, 내세에 대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박이문, 지와 사랑)
4. 우리가 각자의 모든 감정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는 상당히 현명하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절망, 욕망, 질투, 병적인 자만 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 얼마나 혼란스럽고도 굴욕적인지를 종교를 잘 안다. 우리가 어머니를 향해서 어머니 때문에 화가 난다고, 또는 자신의 자녀를 향해서 너 때문에 질투가 난다고, 또는 배우자감을 향해서 당신과의 결혼은 기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고 말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종교는 잘 이해한다. 따라서 종교는 우리에게 특별한 날들을 부여하며, 우리는 그날들의 위장망 아래에서 각자의 위험한 감정을 처리할 수 있다. 종교는 낭독할 대사와 부를 노래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그 도중에 우리 영혼의 불안한 영역 너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청미래)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과학이 더 발달할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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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종교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은 누구나 설명이 필요한 인생의 여러 부분들을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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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순간을 납득하기 위해 그리고 전체 인생의 의미를 납득하기 위해 종교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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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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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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