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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H Nov 14. 2022

학창 시절이 가장 좋은 때일까? - 응답하라 1988

#PSH독서브런치198

사진 = 스포츠동아 기사("‘응팔’ 이일화, 혜리 입시상담 후 ‘수연’ 아닌 “덕선아”")


1.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습니다. "얘들아, 지금은 힘들어도 니들 나중에 나이 들고 애 낳고 살다 보면, 이때가 제~일 좋았다 싶을 거다. ... 지금은 무슨 말인지 모를 거다. 지금이 얼마나 좋은 땐지. 지금 니들이 어떻게 알겠니. 공부해라." 강세형 작가는 『나를, 의심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비밀과 거짓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각자의 다른 삶과 다른 사정이 생겼고, 그사이 우리에겐 각자의 비밀과 자격지심과 허세와 거짓말이 생겼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해도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생겼다." 김훈 작가는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서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적이다"라고 쓰기도 했어요. 이렇게 본다면 돈을 벌어야 하고, 친한 친구에게도 비밀과 거짓말을 가져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어른보다 학창 시절이 더 나은 시절처럼 보이며 이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2. 하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1) 논리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2) 감정적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3) 때때로 학생 인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생각해요.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며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현실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 현실은 줄거리가 없다. 어떤 일들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 아름다운 별똥별이라고 생각하고 쳐다보던 무언가가 거대한 운석으로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 대단한 일처럼 생각하고 긴장했지만 별일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즉, 학창 시절이 가장 좋은 시절일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을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 내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무의미합니다. 학창 시절이 이후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그 당시에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쓴 "역사가는 사실의 일시적 선택과 일시적 해석으로(이 해석에 입각하여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일시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출발하는 것이다. 일이 진척됨에 따라 해석도, 사실의 선택과 정리도, 그 상호작용을 통하여 거의 무의식적인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는 글을 보면, 인생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담임 선생님의 '학창 시절이 제일 좋은 시절'이라는 판단 또한 잠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거예요. 다만 담임 선생님의 말을 통해 학생들이 '내가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이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학창 시절을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면 그 말이 논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와 상관없이 순기능을 할 수 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2. 우리가 인생에서 지향해야 할 바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늘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다수에게 담임 선생님과 같은 말은 일종의 회피 공간이 될 수 있어요. 게리 콕스는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에서 "엄연한 진실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가장 흔한 자기기만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자기기만은 고의적인 무지다"고 했습니다. 즉, 담임 선생님의 말은 '학창 시절보다 더 행복한 날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엄연한 진실을 고의적으로 가려주는 효과적인 말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자기기만, 즉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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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쉼과 위로,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게리 콕스 또한 같은 책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해요. "자기기만은 견딜 수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대응 전략이다. 인간 현실의 가혹한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차용하는 고의적인 무지에는 일종의 지혜가 담겼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요크셔 속담처럼 “올바른 쪽으로 우둔한 사람은 현명하다”고 할까." 어쩌면 담임 선생님은 이 모든 내용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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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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