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은 연쇄 살인마를 처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정의 구현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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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매번 주차하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대놔 귀찮게 했고, 술 한잔 마시고 곤히 잠들었는데 전화로 깨웠고, 살인 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쓰게 했다는 점이 그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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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카시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트럼보에서도 비슷한 캐릭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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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상 보존을 위한 영화 연맹'에서 한 성인영화 제작사 대표를 찾아가 연맹의 이념에 맞지 않는 작가 트럼보를 더 이상 고용하지 말라고 통보합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영화 업계에서 일을 못하게 될 거라는 협박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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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제작사 대표는 야구 배트를 휘두르며 썩 꺼지라고 응수합니다. 연맹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배우 고용을 못하게 되면 winos나 hookers를 고용하면 되며,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을 읽을 줄 모르니 언론에서 본인을 어떻게 지칭하든 상관없다면서요. "I am in this for the money and the pussy"라는 대사를 봤을 때 그 역시 정의, 부당에 대한 저항 등의 가치보다는 자신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작가를 내치라는 말에 반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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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람의 마동석과 트럼보의 성인 영화 제작자는 본인의 생각, 기준이 확실히 정립된 사람이며 단순하고 일관되게 살아왔을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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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때그때 외부 원칙에 기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예측 가능한 사람, 음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면 너무 좋게 표현한 것일까요?
1. 푸코가 보기에 근대인은 종속적 주체입니다. ... 외부에 있는 거대한 이념의 체계를 받아들여서 스스로 내면화한 후에, 그것을 자신의 원칙이나 기준으로 삼은 것에 불과합니다. 내면화되어 있지만 외부에서 강제된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종속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 푸코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이와 다르게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주체여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석, 소나무)
2. 푸코가 말하는 능동적 주체는 어떤 외적인 가치나 원리에 기대어 살지 않아요. 자신에게 다가오는 외적 가치를 독립적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도덕규범을 스스로 만들지요. 푸코는 이런 능동적 주체로 재탄생시키려는 과정에서 '자기 배려'라는 말을 제시합니다. 자기 배려는 자기 이외에는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기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 자신만을 지향하는 것이죠. ... 이렇게 해야만 주체는 외적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의 역동성을 오직 자기 내면으로부터만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진정한 자율적 주체로 재탄생하는 것이지요. 비로소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는 겁니다. (1번과 같은 책)
3. 선거철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마세요. 선거만 끝나면 끝이에요. 또,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랄지 "무거운 사명감을 안고 역사와 민족 앞에 섰습니다"랄지 이런 말은 더 믿지 마세요. 대신에, "나는 우선 이 한 몸이나 잘 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믿어 볼 만합니다. ... 노자가 "자신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일"이라고 한 것은, 단순한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아니라 천하의 넓이만큼 자신을 자율적 주체 혹은 능동적 주체로 먼저 성숙시킨다는 표현일 뿐입니다. ... '우리'에 갇혀 있던 '나'를 비로소 해방된 존재로 살 수 있게 해주지요. 독립적 주체로 재탄생시켜 준다니까요! (1번과 같은 책)
다만, 본인의 기준대로 살기 위해 즉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선 비빌 언덕이 필요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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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은 육체적 능력이었을 테고, 트럼보의 영화 제작사 대표는 winos & hookers와 본인의 영화를 좋아하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관객들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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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경제력은 가장 강력한 비빌 언덕 중 하나일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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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비빌 언덕 만들기는 #PSH독서브런치046 '자기결정권에 대하여 - 선택지 만들기'의 주제와 연결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