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현실이 되는 행복한 세상
재물이나 이권 같은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을 의도치 않게 얻었을 때, 그걸 횡재라고 한다. 횡재는 나의 수고 없이 득이 되는 것을 얻는 일이기 때문에 기회가 온다면 굳이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은 한 번쯤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 꿈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도 많다.
길에서 누군가 떨어뜨린 10억 원이 든 가방을 발견했다면 슬쩍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범죄자가 길에 떨어뜨린, 그래서 주인을 찾아 줄 필요가 없고 문제가 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가방 안의 10억 원과 로또 당첨금 10억 원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로또 당첨금을 선택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횡재란 좋은 거지만, 합법적인 횡재가 더 좋기 때문이다.
또한 로또 당첨금 10억 원과 자신이 직접 선택한 저평가 우량주에 투자해서 발생한 수익금 10억 원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주식 투자 수익금 10억 원을 선택할 것이다. 합법적인 횡재 중에서도 자신의 결정과 노력이 투입된 횡재가 더 좋기 때문이다.
그건 인간이 본능과 함께 이성도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기왕이면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가 용인하는 범주 안에서 갖고자 한다. 그걸 '떳떳하다.'고 표현한다. 또한 인간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여가 개입된 결과물을 선호한다. 그걸 '보람이 있다.'고 표현한다. 자신의 존재감, 즉 성취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주식 투자 수익금은 횡재가 아닐 수 있다. 당사자가 여러 종목들을 열심히 공부하고 분석하고, 또한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주식 투자 수익금 10억 원과 내가 그린 그림이 팔린 금액 10억 원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여기서부터는 조금 다른 상황이 된다. 둘 다 합법적이고 나의 결정과 노력이 영향을 미쳐서 성취감을 주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갈릴 것이다. 기업 분석을 좋아하는 투자가라면 전자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예술가라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나의 기여가 개입된 수준의 성취가 아닌, 내게 만족을 주고 행복을 주는, 성취 중에서도 최고의 성취다.
이런 비교도 가능하다. 하루 일해서 10억 원을 버는 일과 한 달 일해서 10억 원을 버는 일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누구나 다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또한 한 달 일해서 1억을 버는 일과 역시 한 달 일해서 10억을 버는 일 중에서 고르라면, 누구나 다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이건 효율성의 문제이고,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직업의 분화, 어쩌면 계층의 분화가 일어나는 지점이다.
그런가 하면, 최첨단 기술을 선도하면서 세계에서 유일한 제품을 만드는 빅테크 기업의 오너라면, 그는 하루 종일 어떻게 더 기술 혁신을 이뤄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인류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 것인가에 골몰할 것이므로, 횡재 따위엔 관심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미 가진 재산이 수십조 원이고 하루에도 수백억 원씩 재산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하겠지만 역시 그것에도 별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높은 학력과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잠깐의 두뇌 활동으로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작은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목공으로 책상과 의자를 만들며 땀 흘린 만큼만 수입을 얻는 이도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성취를 추구한다. 내가 원하는 성취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횡재를 원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성취가 이뤄질 수만 있다면 횡재 따위엔 관심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그림이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거래되는 화가, 인류 문명의 최선봉에서 AI, 바이오, 우주 등의 분야를 주도하는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의 오너, 고액 연봉을 마다하고 농사짓는 목수가 로또를 살 일은 없다.
언젠가 유아기의 아이들 3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신기할 정도로 각자 좋아하는 것들이 달랐다.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개미든, 파리든, 나비든 곤충이라면 뭐든 좋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벌레는 싫다며 기겁을 했지만 말이다. 별이 좋다는 아이도 있었다. 어른들도 잘 모르는 별자리 이름들을 꾀고 있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다.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바이오나 우주항공, 피부과·성형외과·안과를 생각했을 리는 없다. 각자 꿈을 이야기할 때는 거침이 없었고 눈은 한없이 반짝였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 누구든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만으로 충분해서 따로 생업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래서 누구도 횡재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회는 없다. 있다면 유토피아일 것이다. 세상은 만인만색이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 저마다 다르고, 꿈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생활을 위해 타협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비록 유토피아일지라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사회가 있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가 있다. 그리고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회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충분히 경험하고, 자신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충분히 공부하고, 그리고 충분히 꿈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