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조각
코로나로 일상이 마비되었던 2020년 9월의 어느 날, J는 모두가 외출한 집에서 홀로 재택근무 중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던 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엄마!"
"OOO씨 따님이신가요? 119 구급대입니다. 어머니께서 방금 횡단보도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에 사고를 당하셨어요. 지금 OO대학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네????"
J의 입술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눈도 깜빡임을 멈췄다. 아버지 사고 소식을 접했던 1년 전 그날이 겹쳐졌다. '또다시 사고다!'
"괜찮으세요?" 찢어질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이런 절규에 익숙한 듯 구급대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다행히 의식은 있으시고 의사소통도 가능한 상태입니다. 다만, 좌측 다리에 심한 골절이 있어서 OO대학병원 응급실로 이동 중입니다."
J는 옷을 잡히는 대로 집어 입고 집을 나섰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울고 있을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빨리 어머니를 만나야 했다. "어머니 괜찮으실 거예요." 병원으로 향하던 길, 새 언니의 따뜻한 목소리가 조수석에서 들려왔다. "응, 언니. 괜찮으실 거예요. 엄마는 강하니까."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목이 딱딱하게 굳어 침도 삼킬 수 없었다. 그녀는 긴 호흡으로 긴장을 풀어냈다. 그렇게 OO대학병원 지하 주차장 입구에 진입했다. 그녀는 구불구불 깊어지는 나선형 경사로를 지나며, 복잡하게 얽힌 자신의 마음과 마주했다.
중증응급센터에 들어선 J는 사방을 훑으며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우측 끝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엄마!" 딸의 목소리에 힘 없이 늘어진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응, 왔구나. 많이 놀랐지?"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는 어머니의 가녀린 손을 잡았다. 그리곤 자연스레 다리로 시선을 옮기던 순간, 참혹한 모습에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다시 눈을 뜨자 중심을 잃고 흐물거리는 어머니의 다리가 보였다. 구급대원의 말대로 골절 상태가 심각했다. 허벅지 뼈는 부러져 있었고, 무릎과 종아리 뼈도 뒤틀리고 꺾여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웠던 건 살이 새까맣게 죽은 것처럼 보이는 발목이었다. 괴사의 크기가 그녀의 주먹만 했다.
"엄마, 괜찮아? 놀랐지? 어떡해..."
"괜찮아. 운이 좋았어. 봐봐. 한 다리만 다쳤잖아. 차가 두 번 지나갔는데, 다행히 한 다리 위로만 지나갔어. 두 다리 안 다친 게 얼마나 다행이니!"
되려 어머니는 딸의 떨리는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자식을 앞에 둔 강한 어머니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어머니는 보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이때 한 차량이 어머니를 보지 못한 채 우회전했고, 쓰러진 어머니의 허벅지 위를 지나갔다. 그러나 운전자는 이를 알지 못했다. 그저 뒷바퀴에 무언가 끼었다고 생각한 운전자는 후진을 했고, 이번엔 종아리와 발목을 밟고 지나갔다. 차의 시동은 행인들이 몰려든 후에야 멈춰졌다. 어머니는 이 모든 과정을 생생히 느꼈다. 그곳은 집으로부터 약 150m 떨어진 횡단보도였다. 매일 마주하던 공간에서 벌어진 처참한 사고가 한순간에 J 가족의 일상을 앗아갔다.
그날 밤, 어머니는 9층 정형외과 병동으로 옮겨졌다. J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의 시선이 사고 부위에 머무르지 않도록, 그녀는 어머니와 마주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주치의가 찾아왔다.
"OOO님은 현재 다발성 골절이라 여러 교수님들의 협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허벅지와 무릎, 종아리 골절은 수술이 가능한데요. 발목 골절은 괴사로 수술이 어려울 것 같아요. 최악의 경우 절단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상황을 보며 수술 일정을 정해보죠."
"절단이요? 피부 때문에 발목을 절단한다고요?"
"괴사 범위가 넓고 깊으면 감염의 가능성도 커지거든요.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 절단해야 할 수도 있어요."
이 말을 끝으로 주치의는 사라졌다. '절단?' 눈앞이 하얗게 번져왔다. 관자놀이의 맥박도 더욱 크게 울렸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번엔 전공의가 병실로 들어왔다. 그는 재빠르게 어머니의 왼쪽 다리를 정렬하더니, 도르래가 달린 긴 쇠 막대를 다리와 연결했다. 어머니의 다리를 지나 도르래를 통과한 끈은 10kg 이상의 무거운 추를 매달고 있었다. 고요하게 매달린 검은색 추는 어머니의 다리를 끝없이 잡아당겼다. 그녀는 조선시대 대장간에서나 볼 법한 투박하고 거친 쇳덩어리에 말문이 막혔다. 가녀린 다리에 걸린 견인추는 잔혹한 고문 도구 같았다. 견인추의 섬뜩함이 더는 과거의 온전한 다리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어머니의 일상도 견인추와 함께 저 멀리 사라져 갔다.
다음날 새벽 5시, 병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들이 빠르게 환자 상황을 살피고 다시 문을 닫았다. 좁고 딱딱한 보조 침대에 누워있던 J는 3시간 전을 떠올렸다. "선생님, 수면제 좀 주시겠어요? 엄마가 도저히 못 주무실 것 같아요." 놀란 그녀를 다독이던 어머니 역시 절단이라는 단어 앞에 무너졌다. 그녀는 일어나 어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강하게 잡힌 미간 주름과 악문 탓에 불거져 나온 양 턱, 밤새 통증과 싸우느라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순간, 귓바퀴 통증이 느껴졌다. 그제야 그녀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코로나 8개월 차,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지만 병실에선 일상을 넘어 또 다른 피부가 되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매만지고 어머니의 다리를 천천히 살폈다. 어둠 속에서도 무지막지한 추는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다음날 밤, 여전히 수술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른 침대의 환자들은 수술을 마치고 빠르게 빠져나갔다. 병실은 또 다른 환자들로 북적였다. 간호사가 갑자기 J를 찾았다. 혈액검사 결과 적혈구 수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급하게 수혈을 했고, 다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적혈구 수치는 쉬이 개선되지 않았다. 몇 차례 수혈에도 나아지지 않자, 의료진은 장내 출혈을 의심했다. '이번엔 장내 출혈? 하...' 그녀의 불안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가뭄 든 논바닥처럼 입안도 쩍쩍 갈라졌다. 하지만 어머니 앞에선 웃음을 잃지 않아야 했다. 그녀는 어머니 손을 꼭 잡은 채 여섯 살 아이처럼 재잘거렸다. 다행히 적혈구 수치는 곧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잠이 들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불안의 한 요소가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 이유만으로 그녀는 평온함을 맛봤다.
사고 후 4일이 지난 아침, 갑작스레 수술 일정이 정해졌다. 당일이었다. 여전히 발목 상태에 대해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간호사에게도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염증이 잡혔으니 수술을 하는 거겠지!' 병원엔 어머니 말고도 아픈 이가 많았다. 혹여 재촉했다가 의료진의 심기를 건드려 치료에 불이익이 생기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 J는 대신 오른손 검지에 낀 묵주 반지를 끊임없이 돌렸다. 그때, 수술실 이송요원이 병실에 도착했다. 두 모녀는 손을 꼭 잡은 채 병실을 나섰다. "엄마, 잘 될 거야. 알지? 엄마는 강한 사람이니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엄마 잘하고 올 테니까 너무 마음 졸이지 마!" 어머니는 짐짓 강한 미소를 보이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세 시간 후, J는 여전히 수술실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나올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부풀어 올랐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고, 다리의 진동 역시 멈추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OOO님이 현재 회복실로 이동 중입니다.' 메시지 하나에 온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정말... 감사합니다.' 울먹이던 그녀가 처음으로 웃었다. 하지만 감사함을 온전히 누릴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수술 회복에 필요한 아이스 매트와 팩, 각종 의료물품을 구매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병원 문을 나섰다. 그때였다. 따뜻한 햇살이 그녀 얼굴 위로 쏟아졌다. 오랜만에 마주한 신선한 공기도 그녀를 반겼다. '아... 좋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때 오른쪽 시야에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전용카트 의자에 걸터앉은 아주머니는, 나른한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리며 세상의 모든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하품이었다. 무심한 그 하품이 그녀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언젠가 나도 나른하게 하품하는 날이 올까? 그런 일상이 내게도 올까?'
J는 순간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부러웠다. 얼마 전까진 그녀도 늘어지게 하품하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꼈다. 그땐 무탈함이 주는 평온을 행복의 요소로 느끼지 못했다. '참, 어리석었네!' 그녀는 또 한 번 자신의 미성숙함과 마주했다. 며칠 사이 그녀의 세상은 변했다. 그녀는 곧 간호 휴직을 신청할 예정이었다. 미숙아로 태어나 약하디 약한 어머니를 손수 돌봐드리고 싶었다. 긴 재활 과정을 단단히 이겨내실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이제 그녀가 알던 일상은 사라질 것이었다. 5일간 경험한 낯설고 고된 세상이 그녀의 일상이 될 차례였다. 예상보다 거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간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곧 그녀도 나른하게 하품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2020년 9월의 어느 날, 의료용품점을 향해 내딛던 확신의 발걸음은, 그렇게 J의 찰나의 조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