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골드코스트 호타미술관)
엄마는 자주 귀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엄마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많이 들어서 그렇거나 아니면 매일 수영해서 귀에 물이 들어가 아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엄마는 24시간 나랑 붙어있어 귀에서 피가 흐른다며 아프다고 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엄마는 자꾸 피가 난다고 하니 사실 엄마가 귀가 아니라 정신이 다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제발 말 좀 그만하라며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내가 볼 때 엄마한테 귀가 두 개인 이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인 것 같은데 말이다.
한 번은 엄마와 단 둘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데 엄마가 수영하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수영장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거다. 나는 아무 소리 안 들리는데?라고 말하고 다시 잠수를 하며 놀았다.
그런데 엄마가 수영만 하기 시작하면 인어공주 같기도 하고 돌고래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물속에서 계속 환청이 들린다던 엄마는 어느 날 돌고래의 소리를 찾겠다고 물안경을 사서 수영을 하러 갔다. 그리고 이내 범인이 밝혀졌다. 돌고래는 바로 나였다. 엄마가 수영할 때면 나는 물속에서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이야기하곤 했는데 누워서 둥둥 떠다니기만 했던 엄마는 내가 물속에서도 말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건 내게도 충격이었다. 엄마는 늘 내가 백 명이 있어도 진짜인 날 찾을 수 있고 옹알이만 해도 내 말은 다 알아들을 수 있다더니 영 엉터리였다.
어쩐지 아무리 말해도 대답이 없더라니.
골드코스트에 있는 호타미술관 유난히 다른 미술관보다 더 조용하지만 활기찬 곳이다. 작품은 많지 않지만
모든 방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작품을 설명해 주겠다고 다가오고, 투어가 필요한지 궁금한 점은 없는지 등을 물어보는 통에 자유롭게 토론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멋진 뷰로도 유명하다. 골드코스트 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미술관 앞 잔잔한 호수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사람들 너머로 멋지게 해가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와 엄마는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기분 좋게 호타 미술관을 나왔다. 그런데 버스를 타려고 보니 나의 교통카드가 없었다.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어제 막 사서 갓 충전 빵빵하게 한 교통카드를 말이다. 미술관 어디에다 흘린 건지 나는 안절부절이었다. 벌써 몇 번째 잃어버린 교통카드다.
친절한 자원봉사자들이 내 교통카드를 찾아주려고 노력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엄마는 요새 귀가 안 좋으셔서 그런지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소리를 벅벅 질러가며 말씀하셨다.
"또 잃어버리지 말랬지!! 네가 길거리에 흘린 돈이 대체 얼마야? 어? 정신 안 차려?"
난 엄마한테 그렇게 소리 지르다 경찰한테 붙잡혀 간다고 걱정이 되어 말씀드렸다. 그런데 엄마는 내 말에 경찰이 잡아가라는 듯 더 크게 소리 질렀다.
난 엄마께 카드를 잃어버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홱 돌아섰다. 한참을 뙤약볕에서 걸어가야 하니 각오하고 걸으라고 하셨다. 나는 조용히 엄마 뒤를 따랐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침묵이 싫어 아무 말이라도 꺼냈다. 아까 자원봉사자 언니들과 영어로 이야기한 것들 따위와 좋아하는 요거트를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는 등등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화를 냈다.
"엄마라고 부르지 마. 엄마에 ‘엄’자도 꺼내지 마! 제발 좀! 그만"
엄마는 내가 예의 없는 걸 제일 싫어하신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다시 말씀드렸다.
"어머니, 제가 아까 어머니가 카드를 찾고 있을 때 자원봉사자 언니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뭐라고 나눴냐면요~ "
어머니는 오 마이갓이라며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난 어머니가 무서워졌다. 내가 또 예의 없이 말한 게 있을까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흠. 모르겠는데 일단 ‘요’ 자를 한번 더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요~ 제가요~ 아까요~잃어버렸을 때요~”
말하다 보니 꼭 대구 친구가 말하는 것 같은 억양이 되었다. 어머니는 이제 미치겠다며 실성한 듯 깔깔 웃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진짜 어디 아픈 거야? 말을 계속해 말어?’
고민하고 있는 내게 엄마는 중2가 되어도 지금처럼 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셨다. 내 덕분에 여행이 참 재밌다고 하셨다.
3학년 때 반장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마에게 여쭈었다. 엄마는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친구들이 하는 말을 끝까지 잘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만년 부반장만 네 번 한 엄마말을 믿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맨날 집에서 아빠와 서로 엄마에게 말하겠다고 싸우는데 끙.'
그래도 일단 노력해 보기로 했다. 한국 가면 아빠이야기도 많이 들어주고 친구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줘야지. 대신 내 이야기는 엄마가 많이 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영혼을 담아서 진심으로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새해에는 굿 리스너가 되자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