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재훈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했다. 사무실에 아직 사람이 없을 때,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기 전, 잠깐 책상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변화는 뭘까.’
그는 한동안 쓰지 않던 개인 다이어리를 꺼내고, 첫 장에 짧게 썼다.
“내 시간을 되찾는 연습.”
그리고 그날부터 점심시간만큼은 회사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기로 결심했다. 메일 알림을 꺼두고, 커피를 한 잔 들고, 폰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점심시간, 그는 다짐한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료 한 명이 물었다.
“점심 식사하러 가세요?”
“아뇨, 그냥 좀 걸으려고요. 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조금 쌀쌀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걸으며 그는 메모장 앱을 열고 짧은 글을 썼다.
“불안을 없애진 못해도, 같이 걷는 건 가능하다. 오늘의 불안도, 같이 걷자.”
며칠 뒤, 그는 작은 결정을 하나 더 내렸다. 퇴근 후 30분 정도 회사 근처 스터디 카페에 들러 업계 트렌드 관련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언젠가의 이직’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점검하고 숨 돌리는 시간이었다. 그는 그걸 ‘이직 준비’라는 이름 대신 ‘나 다시 찾기 프로젝트’라고 폴더명을 바꿨다.
일은 여전히 많았고, 회의는 피곤했다. 하지만 하루 중 짧은 시간만큼은 그가 자신을 다시 주어로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은, 도윤이 내어준 커피 한 잔의 여백 속에서, ‘아직’이라는 시간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더 슬로우’의 커피는 단지 맛있는 음료가 아니라, 그에게는 삶을 다시 조율할 수 있는 박자였고, 잠시 멈춰 생각해도 괜찮다는 허락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다. 변화는 거창하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냥, 커피 한 잔의 속도로 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