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숙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늘 목소리가 컸고, 카운터에 오기 전부터 가게 안을 울리는 수다가 시작되곤 했다.
"사장님~ 오늘 날씨 좋죠? 아유, 근데 덥긴 덥다~ 나이 드니까 땀도 많이 나고, 얼굴은 자꾸 화끈거리고~ 이게 다 갱년기라니까요!"
도윤은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을 받았다. 오현숙은 언제나처럼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이 아닌 머그잔에 달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 있겠다는 뜻이다.
그녀의 입담은 커피가 식을 때쯤 더 활발해졌다.
"우리 딸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부 1등급 받았잖아요~ 아휴, 이게 그냥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나도 어릴 땐 좀 공부했는데, 피는 못 속이는 거 있죠?"
도윤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컵을 닦았다. 속으로는 ‘오늘도 시작이군’ 싶었지만, 표정은 조용했다.
오현숙은 자랑을 하다가도, 불쑥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근데 있죠, 요즘 애가 너무 예민해요. 한마디 하면 눈을 확 뒤집어요. 내가 누굴 위해 밥을 하고 살림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갱년기도 힘든데 딸까지 그러니까 진짜 속 터진다니까요."
그녀의 말은 자랑과 한숨이 뒤섞여 있었다.
“남편은요? 대화는 좀 하세요?”
도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평소라면 질문을 잘 던지지 않는 그였지만, 오현숙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에이, 그 인간이랑은 말 섞을 기력도 없어요. 맨날 TV만 보고, 내가 뭐라고 하면 귀찮다는 표정이나 짓고! 내가 허공에다 말하는 느낌이라니까요."
한참을 떠들다 그녀는 갑자기 컵을 내려놓으며 작게 말했다.
"그래도 여기 오면 좀 나아요. 적어도 내가 말하면 듣는 사람이 있잖아요. 사장님은 말은 없지만, 귀는 열려 있는 사람 같아요."
도윤은 그 말에 처음으로 눈을 맞추며 웃었다.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죠. 가끔은 그게 더 큰 위로가 될 때도 있고요."
오현숙은 그제야 얼굴을 풀고 커피를 마지막 한 모금 남기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여기 오면… 혼자 떠든 거 같으면서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져요. 참 신기하네."
도윤은 조용히 카운터 너머에서 말했다.
"언제든 말씀하세요. 저야 뭐, 항상 여기 있으니까요."
그 말에 오현숙은 피식 웃었다.
"그래요, 사장님. 다음엔 우리 딸 대학 붙으면 떡이라도 돌리러 올게요."
그렇게 웃으며 가게를 나가는 오현숙의 뒷모습은 소란스럽지만 따뜻했고, 어쩌면 그 소란 덕분에 가게의 공기가 한결 덜 외로워졌다.
며칠 뒤, 오현숙은 다시 커피숍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아휴, 사장님~ 요즘 우리 아파트 값 오른 거 아세요? 아니, 작년까지만 해도 사람들 관심도 없던 동네인데, 갑자기 재건축 얘기 돌면서 막 매매가가 들썩들썩해요~ 어쩐지 부동산에서 연락이 자꾸 오더라니."
도윤은 익숙한 듯 미소 지으며 커피를 내렸다. 오현숙은 이미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요, 제가 미국 주식 좀 샀잖아요. 작년에 테슬라, 애플 그런 거 조금씩 샀어요. 근데 요즘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니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올린다 어쩐다 하더니, 그 영향인지 뭔지 주가가 푹 빠졌어요. 내가 괜히 해외 주식 건드렸다니까~"
도윤은 커피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공부 많이 하셨네요. 미국 주식하시는 분들 대단하신 것 같아요."
오현숙은 으쓱하며 웃었다.
"에이~ 요즘엔 아줌마들도 다 해요. 유튜브 보면서 공부하다 보면 괜히 내가 애들보다 더 똑똑해진 기분이 든다니까."
그 말에 도윤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활기 뒤에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딸 입시, 갱년기, 남편과의 거리감, 흔들리는 노후 자산.
그녀는 늘 밝게 떠들었지만, 그 안에는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날도 그녀는 한참을 떠들다, 문득 커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장님, 제가 이렇게 떠들어대면 피곤하시죠? 근데 이상하게 여기만 오면 말이 자꾸 나와요. 다른데 선 이렇게 말할 데가 없거든요."
도윤은 조용히 컵을 닦으며 대답했다.
"저는 오히려 좋습니다. 여긴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그 말에 오현숙은 작게 웃으며 컵을 들었다.
"그래요, 다음엔 ETF 얘기나 해드릴게요. 요즘엔 그게 대세라면서요?"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더 슬로우’에 평소보다 높은 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현숙이었다. 평소에도 말 많기로 소문난 그녀는 오늘따라 동네 친구 두어 명을 데리고 와, 창가 자리를 차지했다.
도윤은 익숙한 그 목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내렸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때론 소리를 듣는 직업 같기도 했다. 특히 오현숙의 수다는 도윤에게 배경음처럼 흐르는 일상의 일부였다.
“아니 진짜, 다들 미국 주식 한다길래 나도 한 번 해본 거야. 테슬라가 그렇게 좋다 그래서 샀는데, 웬걸? 그 다음날부터 곤두박질치는 거 있지. 왜 나는 꼭 사면 떨어질까?”
옆에 앉은 친구가 위로한다며 웃었다.
“그래도 장기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장기는 무슨 장기야. 내 계좌 볼 때마다 속이 쓰려 죽겠는데.”
그러더니 곧이어 주제가 바뀌었다.
“그리고 다이어트 말인데 말이야… 진짜 나이 드니까 살이 안 빠져. 예전엔 이틀만 굶어도 얼굴이 확 달라졌는데, 요즘은 열흘 굶어도 그냥 그 얼굴이야.”
도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조용히 설거지를 했다. 현숙의 목소리는 커피숍을 ‘살아있게’ 만드는 소음 같았다.
“그나저나 우리 아파트, 요즘 재건축 추진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집 보러 많이 오는 거 같던데 거래는 거의 없나 봐. 강 건너는 그렇게 올랐다던데, 거기다 집을 샀어야 했어. 맨날 내가 너무 일찍 들어갔다는 소리만 들어. 이번에 재건축만 잘 되면 좀 오르려나 모르겠네. 근데 어느 세월에 재건축이 되겠어.”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커피 향기와 섞여 공간을 채웠다. 도윤은 창밖을 잠시 보다가 생각했다.
‘사람 사는 얘기라는 게 결국 다 이런 거지.’
고민, 아쉬움, 불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웃음까지. 도윤은 커피잔을 닦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참… 잘 살고 계시네, 현숙 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