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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평 Jul 27. 2020

이 아이는 자라서

똥 눌 때 아이폰을 봅니다 

나는 세 아이의 이모, 두 아이의 고모다. 

다섯 아이 모두에게 고른 사랑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엄마도 자식 모두에게 고른 사랑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또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러니 하물며 조카아이들이야..


똥 눌 때 신문을 보던 이 아이는 내가 대놓고 예뻐하는 조카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내내 한집에 살기도 했지만 

먹이고, 재우고, 똥 기저귀 갈고, 씻기고, 가르치고, 잔소리하고...

그렇게 내가 반은 키웠다고 자신한다. 


한글은 뗐고, 아직 지가 눈 똥은 닦기 어려워한 나이 때쯤이었을 게다. 

어린이집은 졸업하고 유치원에 다닐 무렵, 

어디선가 이런 신문을 받아와서는 변기에 척 앉아 읽는 게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나는 그 앞에 척 앉아 똥 누는 아이를 찍었다. 

그때는 만두 먹다 가서 똥 누이고 다시 와서 만두 먹던, 그렇게 비위 좋은 시절이었지. 


신문 보던 아이는 이제 자라서 아이폰을 본다. 

이 사진을 보여줬더니 '헐' 이후 별말이 없다. '나 아닌데?' 이런 반응이랄까. 


내 키와 몸무게를 훌쩍 넘어섰고, 

가끔 아니 자주 우주의 말을 하곤 해서 지 엄마를 기함케 만들기도 하는, 

흔하고 무서운 중2 청소년으로 자랐다. 


어버이 날, 어린이 날 다 있는데 왜 이모의 날은 없냐며, 이모의 날을 만들어 주기도 했던

내가 길 하나 건너에 있는 집으로 분가(?)하던 날, 펑펑 울던 

그 예쁜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싶지만... 

그게 세월이니까. 


내 기억엔 없지만 나도 이모 손에 자랐던 때가 있었다고 들었다. 

연년생인 동생이 생기면서 외가에 몇 달간 보내졌고, 당시 결혼도 안 한 둘째 이모가 날 돌봤다고 했다. 

이제 그만 집에 데려가려고 엄마가 날 찾아 왔을 땐, 

우리 엄마가 아니라며 그렇게 울며불며 안 간다고 떼를 써서 엄마 속을 후벼 팠다고, 엄마가 말했다. 

그 이야길 들으며 나는 엄마의 속상함보다 그 어린애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으면,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그 둘째 이모는 이제 딸, 아들을 짝지어 내보냈고 가끔 딸아이의 딸을 봐준다고 했다. 

그때 이모가 돌보던 조카는 자라다 못해 이제 늙어가고 있다. 

가끔 가족행사에서 둘째 이모를 만날 때 뭔가 남다름이 느껴졌던 건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 어린 날들의 시간 때문이 아닐까. 

나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품고했던 그 시간들. 


똥 눌 때 신문 보던 이 아이도 다 자라서 나처럼 '난 기억 안 나.' 그렇게 쌩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슬퍼하거나 서운해하진 말아야지. 

내가 그런 것처럼,  뭔지는 모르지만 심장에 새겨진 남다른 뭔가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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